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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사람끼리 배추적을 먹었다

비 오는 날 배추적

by 박은실

내 고향에서는 배추로 적을 부치지 않았다. 배추에 밀가루를 묻혀 지져내는 건 그냥 '전'이라고 명명했다. 혹은 흔한 단어로 '부침개'였다.

'적'은 소고기나 돼지고기를 두껍게 잘라 커다란 꽂이에 끼워 간장 양념을 발라 쪄낸 것이었다. 조상께 올리고 난 후, 산 사람이 먹을 땐 의당 잘라서 먹었다.

김서령의 고향 안동에서는 내가 아는 '전'을 '적'이라 불렀나 보다. 그것이 전이던 적이던 그리 중요한 건 아니다.

핵심은 맛이고 추억이고 문장이다.


몇 달 전에 읽었던 책으로 누구로부터 선물 받은 이었다.맛에 반하고 문장에 반했다.


66쪽

맛은 추억이다. 맛은 현재의 나를 돌연 다른 시점으로 공간 이동하게 만든다. 귀로 듣는 음악이 그렇고 코로 맡는 향기가 그렇듯!


좋은 문장이 고플 땜 김서령을 읽곤 했다.


문장이 이토록 구체적일 수 있다니!


엄마의 시절에 여인의 손은 고울 필요가 없었다. 아~ 엄마의 시절...!


호박이 여남은 덩이 숨어서 늙어갔다.



여름이 한풀 지쳐가는 계절이 얼마 남지 않았고, 또 얼마 후면 서늘한 바람이 문득 불어올 테지.

그날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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