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돌이켜보면 어느 시대에나 잘못된 군중심리가 세상을 망치곤 했는데, 선동가들을 비판없이 맹목적으로 추종했던 백성들이 문제였다.
성경을 자세히 들여다 보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게 한 주체가 누구인가? 로마군인가 아니면 유태인인가?
결론은 둘 다 아니다. 예수를 죽음으로 내몬 존재는 바로 선동에 부화뇌동한 군중이다. 소수의 선동가들이 그럴듯한 거짓과 꿀 바른 혀로 사람들을 선동하며 사람들은 그들의 말에 놀아난다. 예수 대신에 살인자며 폭동주범인 바라바를 살리라고 총독을 향해 외치던 군중이 바로 그 사람들이다.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히틀러는 당시 독일에선 불세출의 영웅이요 지도자였다. 미치광이 히틀러의 말 한마디에 국민은 환호하고 눈물을 흘렸는데 이것은 프로파간다의 천재였던 히틀러 정부의 선전상 요제프 괴벨스의 작품이었다.
괴벨스는 이렇게 주장했다. "좋은 통치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좋은 프로파간다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 둘은 서로 떼어놓을 수 없다"
여기서 그 프로파간다의 핵심은 선동이며, 선동의 목적은 군중을 흥분상태로 몰아 기획된 사고와 행동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중국에서 근대에 들어 가장 불행한 사건을 들라면 아마 문화혁명일 것이다. 광분한 군중심리가 사회를 지배했고 폭력이 난무했으며 진시황이 분서갱유를 지시한 그날처럼 거리에선 소중한 책들이 불타고 있었다. 그 흥분하고 미친 군중은 위정자가 자신의 뜻대로 세상을 갖고 놀기 좋도록 만들어 주었다. 반대 세력이라 점찍은 수천만명을 인민재판이란 이름으로 아무 죄의식없이 쉽게 처형했으니 길거리엔 시체가 쌓이고 또 쌓였다. 군중심리는 이토록 무서운 것이다.
시간이 흘러 흥분해 날뛰던 군중이 정신차리고 제 자리로 돌아오면 모든 상황이 정상으로 돌아갈듯 보이지만 자신들이 망가뜨린 세상을 다시 예전의 그 모습으로 되돌리려면 많은 희생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곧 깨닫게 된다. 그땐 후회하기에 너무 늦었다는 것! 이것이 우리가 잘못된 군중심리를 경계해야 할 가장 큰 이유이다.
사람들의 뒤에서 기획된 군중심리를 유도하는 자들은 보통 하이에나 머리를 가진 사악한 존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