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미네이터>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로 유명한 SF작가 아서 C. 클라크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고도로 발전한 과학기술은 마법과 구분할 방법이 없다’. 현대의 우리가 당연하게 이용하고 있는 기술들을 원시인들이 보면 어떻게 생각할까? 마법을 넘어 어쩌면 신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스타트렉: 다크니스>라는 영화를 보면 초반에 행성의 화산 폭발을 막으려고 파견된 엔터프라이즈호가 바다 속에 숨어 있다가 불가피한 사정으로 함체를 드러내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를 본 미개부족이 땅바닥에 우주선 모양을 그리며 신으로 숭배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래서 영화 시리즈 내에서는 우주선이 미개인들과 접촉하는 것을 강력하게 금지하고 있다.
사족이 길었다. 그런데 사실 우리 주변에서 이뤄지는 과학발전이 경이롭다 못해 두려움을 자아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것은 이러다가는 기술이 인간 능력을 뛰어넘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다. 그 두려움을 가장 구체적으로 보여준 영화가 <터미네이터>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유명 미래학자인 레이 커즈와일은 기술이 인간을 초월하는 순간이 곧 온다고 예견하며, 그 시점을 ‘특이점’(singularity)이라고 부르고 있다. 여기서 ‘특이점’이라는 것은 과학용어로 수학에서 ‘0’에 한없이 가까워지면서 함수 값이 갑자기 양과 음으로 바뀌는 지점을 나타내기도 하고, 물리학에선 블랙홀의 부피가 ‘0’이고 밀도가 무한대에 이르는 순간을 말하기도 한다. 시간과 공간 등 모든 물리법칙이 붕괴되는 지점이다.
그러나 책에서 말하는 특이점은 ‘기술의 진보를 인간이 더 이상 따라잡을 수 없게 되는 시기’를 의미한다. 또한 ‘가속적으로 발전하던 과학이 폭발적 성장의 단계로 도약함으로써 완전히 새로운 문명을 낳는 시점’이기도 하다. 커즈와일에 의하면 이 시점은 2045년이다. 풍문으로 들은 바는 1948년생인 그가 온갖 영양제를 먹으며 건강관리를 하면서 이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는 것이다. 한편, 필자가 단어사전을 통해 찾은 바로는 영단어 ‘singularity’는 ‘단일성’, ‘특이성’, ‘이상함’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레이 커즈와일이 이러한 개념을 최초로 내놓았을 때가 2005년이었는데, 그 당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사람들도 찬반으로 나뉘어 ‘미래시대의 전도사’라는 찬사부터 ‘두려움을 조장한 특이점 장사꾼’이라는 혹평을 내놓았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특이점’이라는 용어가 지금도 계속 유효하게 살아있으면서 그 가능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최근 ‘특이점’이 다시 이슈로 떠오른 것은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이 ‘특이점’을 언급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은퇴시점을 10년 정도 더 연장하면서 자신이 일하고 있는 현 시대에서 특이점의 도래를 보고 싶다고 발언했다. 손 회장은 로봇공학에 괄목할만한 성과가 나온다고 예측하면서, 인공지능을 탑재한 로봇이 인터넷으로 연결되어 초지능으로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커즈와일도 최근에 개최된 한 행사에서 ‘2030년대에는 나노로봇을 뇌의 모세혈관에 이식해 인간의 신피질을 클라우드 속 인공 신피질에 연결, 사고를 확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클라우드 컴퓨팅을 통해 신피질을 확장한다면 1~2초 안에 1만 개 컴퓨터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여기서 위에서 언급한 ‘특이점(singularity)’의 사전적 의미에 주목한다. 바로 ‘단독성’ 또는 ‘단일성’인데, 이것이 필자에게는 과학기술과 인간의 결합으로 들린다. 그리고 그것을 통한 궁극적인 목표는 인간을 초월하여 신처럼 되는 것이다. 인간은 여러 가지 장벽들 때문에 신과 분리되어 있다. 그런데 과학기술 때문에 이러한 장벽들이 하나씩 허물어지고 있다. 과학기술이 인간을 뛰어넘는 순간은 다시 말하면 인간이 신과 같은 능력을 지니게 되는 순간이라 할 수 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라플라스라는 프랑스 수학자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원자의 현재 위치와 운동량을 파악해내는 지성이 존재한다면 그 존재는 물리학을 활용해 그러한 원자의 시간적 변화를 계산할 수 있기 때문에 과거와 현재의 모든 현상을 설명하고 미래까지 완전하게 예지가 가능하다’라고 주장했다. 이 존재에는 후에 ‘라플라스의 악마’라는 별명이 붙었다고 한다. 그런데 만약 슈퍼컴퓨터로 연결된 초지능이 등장해 이 문제를 해결한다면? 오직 신만이 아는 미래를 인간도 엿보게 될 수 있지 않을까? 몇 년 전 발견된 아인슈타인의 중력파가 그 가능성을 크게 하고 있다. 두 개의 블랙홀이 충돌 및 합성하면서 발생하는 것이 중력파인데, 이것이 발생하면 시공간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이 원리를 이용하면 시간 역시 변화시킬 수 있어 이론적으로는 타임머신 개발이 가능해진다.
다음은 영생의 문제다. 인간의 정신을 컴퓨터 하드드라이브에 저장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육체 또한 유전자 정보를 파악해서 똑같은 육체를 배양해 낸다고 한다면? 아무리 사망하더라도 새로운 육체에 정신을 이식하여 불멸의 삶을 살 수 있다. 물론 지금은 공상에 불과하다. 그러나 GNR(유전학, 나노기술, 로봇공학) 혁명이 일어나는 ‘특이점’ 이후에는 이런 미래가 가능하다는 것이 커즈와일의 주장이다. 인간이 죽지 않는다는 것은 신과 인간을 구분하는 유한성의 장벽이 사라진다는 의미이다. 그는 또한 여기에서 더 나아가 광속을 뛰어넘어 온 우주로 인류의 지능을 전파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위와 같은 세상이 도래한다면 그것은 ‘멋진 신세계’일까 아니면 실로 ‘무서운 세계’일까? 사람마다 의견이 다르겠지만, 필자는 여기서 ‘특이점’에 대한 두 가지 생각을 이야기하고 싶다. 첫 번째, ‘특이점’ 이론은 근본적으로 인본주의적 생각이라는 점이다. 저자 레이 커즈와일은 서문에서도 밝혔듯이, 인간의 창조력과 생각의 힘을 숭배한다. ‘어떠한 곤경에 처하더라도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있게 마련이고, 또 우리는 그 아이디어를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는 기본적으로 낙천주의자라고 한다. 그래서 발전하는 신기술이 인간과 융합하더라도 하나의 도구로서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 것이라고 장밋빛 미래를 예측한다. 이런 그의 생각에 절대자의 개념은 없다. 오로지 인간이 가진 힘으로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고 멋진 미래를 그릴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두 번째 생각은 인간이 미래를 예측하고 영생을 얻는다는 것이 과연 인간에게 유익한가라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그것이 정당한가라는 질문도 가능하다. 인간의 삶은 유한하고 제약이 있기에 전력을 다해서 살고 거기서 의미와 아름다움을 발견하지 않는가?
과학기술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 빠른 속도로 발전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특이점’이 우리 세대 중에 올지 아니면 다음 세대에 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특히 ChatGPT같은 생성형 인공지능이 이슈로 떠오르면서 그러한 시대가 생각보다 더 빨리 도래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