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각기동대>
과학문명을 다룬 영화중에 장밋빛 미래를 그리고 있는 작품은 그리 많지 않다. 사실 뭔가 긴장감이 있고 대립구조가 있어야 영화적인 재미가 있어서 그런 것 아닐까? 그래서 4차 산업혁명이나 인공지능을 다룬 영화들도 대부분 과학기술이 인간을 위협한다는 내용이 많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영화는 <공각기동대>다. 이 작품은 2017년 3월에 개봉한 영화로 <어벤저스> 블랙위도우로 유명한 스칼렛 요한슨이 출연한 작품이다. 그런데 필자는 최근에 개봉한 실사영화보다는 1995년에 만들어진 일본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 이야기를 하고 싶다. 사실 원작이 좀 더 풍성한 의미를 갖고 있고, 또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비주얼로 많은 이들의 찬사를 받았던 작품이기도 하다. 이 작품에 영향을 받은 다른 영화들도 상당히 많은데, <매트릭스>나 <제5원소> 같은 작품들이 바로 그런 영화들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원작이 인기가 많다보니 그 이후에 <공각기동대 S.A.C 2030, 2034, 2045>같은 시리즈들이 계속 만들어지고 OTT에서 방영되고 있다.
작품의 배경은 2029년으로 근미래인데, ‘공안9과’라는 특수조직에 속해있는 쿠사나기 모토코 소령이 최첨단 과학기술을 토대로 범죄자들과 싸운다는 내용이 주된 줄거리다. 일단 작품 속 세계관 중에서 가장 독특한 것이 바로 ‘전뇌(電腦, 전자두뇌)’ 개념인데, 이 전뇌라는 것은 인간의 두뇌를 컴퓨터처럼 만들어서 인터넷에 접속가능하게 만든 것이다. 인간의 의식이 전자화된다면 여러 가지 정보나 기억을 자유롭게 머릿속에 업로드하거나 또 다운로드 할 수 있게 될터이다. 예를 들어 영화 <매트릭스 1편>을 본 사람은 기억이 나겠지만 여주인공 트리니티가 헬기를 전혀 조종하지 못했는데 1초 만에 매뉴얼을 머릿속에 다운받아서 그 이후에 헬기를 자유자재로 조종하는 장면이 참 인상적이었다. 정말 미래에는 그게 가능하게 될까? 일단 그러면 세상의 모든 시험이 사라지고 뭔가 암기하는 일이 사라질테니 환상적이지 않을까?
그런데 여기서 새로운 문제가 발생한다. 만약 우리의 정신이 인터넷 상에서 공유가능한 데이터같이 처리된다면 무수한 내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생기지 않을까? 컴퓨터 데이터를 쉽게 USB나 외장하드에 옮기는 것과 같은 이야기다. <공각기동대>의 주인공 쿠사나기 소령에게는 이게 더 심각한 문제인게, 소령의 몸은 두뇌를 빼고는 거의 다 기계로 만들어져 있다. 만약 세상 어딘가에 기계의 몸만 있다면 자신의 의식이 복제되어 나와 똑같은 존재로 재탄생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럼 여러 가지 복사본 가운데서 원본이 실제의 나라고 어떻게 주장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렇게 될 때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인간을 구성하는 조건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을 <공각기동대>는 주장하고 있다.
<공각기동대>의 영어제목은 <Ghost in the shell>인데, 번역하자면 ‘껍데기 속의 혼(魂)’ 정도 될 것이다. 여기서 ‘껍데기’는 인간의 육체를 의미하고 한다. 근데 왠지 껍데기라고 하니까 부서지기 쉬운 느낌이 들지 않는가? 제목 자체에서도 뭔가 정체성이 흔들리는 불안한 느낌이 감돌고 있다. 모든 대중영화들이 제목에서 작품의 컨셉을 담고 있기 때문에 제목에서 세계관을 발견할 수 있으니 다른 작품을 볼 때도 주의깊게 살펴보도록 하자. 한마디 더 덧붙이자면, <공각기동대> 시리즈 중에 <S.A.C>가 있다고 위에서 이야기는데 여기서 ‘S.A.C’는 ‘Stand Alone Complex’라는 의미다. 일단 부제 자체의 의미는 ‘홀로서기 콤플렉스’정도 될텐데 수많은 복제물 가운데서 원본인 자신은 누구인가의 고민을 담은 제목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여기까지 길게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나는 이 작품이 요즘 이슈가 되는 4차 산업혁명을 잘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바로 작품이 ‘인간’과 ‘기계’의 융합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의 중요 키워드는 바로 ‘융합’이다. 예전에 어떤 에어컨 광고를 보면 ‘자문자답(自問自答, 스스로 묻고 대답하기)’라는 카피가 보이던데 바로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기계가 인공지능과 융합하여 스스로 주변환경을 감지하고 움직이는 스마트한 시대가 된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카피라고 생각한다.
다시 작품으로 돌아오자면, 쿠사나기 소령은 ‘인형사(puppet master)’라는 적과 마주하게 된다. 이 인형사는 인터넷에서 발생한 생명체로 자유자재로 돌아다니면서 인간의 정신을 해킹하는 등 범죄를 일으켰다. 그것은 사람에게 가짜 기억을 심어놓고 자신의 행동대원으로 삼는 수법이었다. 여기서도 생각해볼 문제는 사람의 의식이라는 것이 지웠다가 다시 쓸 수 있는 것이라면 진짜 본래의 자신은 누구인가 하는 문제다. 지금 존재하는 것이 진짜 나인가 아니면 가짜 기억이 덧씌워져서 살아가는 거짓된 나인가...
하여간 쿠사나기도 자신의 정체성에 혼돈을 느끼는 차였는데, 작품 말미에 인형사를 체포해서 여러 가지 심오한 대화를 하게 된다. 인형사는 쿠사나기에게 자신과 융합해서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나자고 제안하고 그녀는 이 제안을 수락하게 된다. 애니메이션의 결말은 새롭게 진화한 쿠사나기가 도시의 야경을 바라보며 “네트는 광대해”라고 이야기하는 것으로 끝난다. 이 장면은 쿠사나기가 세상으로 나가서 자신과 같은 존재를 수없이 만들어낼 것이라는 의미로도 보인다.
비록 작품의 분위기는 어둡지만 혹자는 인간과 기계의 융합을 통해 한 단계 더 진화하는 과정을 보여주기 때문에 해피엔딩이라는 의견도 있다. 원작 애니메이션의 마지막 박물관 전투 장면에서 진화의 계통도가 총탄에 의해 파괴되다가 마지막 단계인 ‘인간’에서 멈추는 것도 이런 의미를 뒷받침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는 눈부시게 발전한 첨단 과학기술이 신체 외부에 있다가 신체 내부로 융합하면서 여러 가지 문제를 만들어 낼 것으로 보인다. 이를테면 계속 이야기한 인간과 기계의 경계가 모호해진다던지 하는 문제 말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적극적으로 기계를 받아들여 새로운 형태의 인간으로 한단계 업그레이드해야한다는 주장도 나타날 수 있다. 지금도 인간과 현실세계는 그저 하나의 프로그램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을 정도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