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테크 전쟁>
과연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이야기’라는 것을 빼놓을 수 있을까? 우린 항상 재미있는 이야기에 목말라 하고 있다. 요즘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원시인들도 모닥불에 둘러앉아 자신의 모험담을 이야기했을 정도로, 사람들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고, 또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한다.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도 많은 것이 물론 책을 내고 유명해지고 싶은 마음도 있겠지만, 그 전에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사람이 많다는 증거 아닐까. 오죽하면 ‘호모 나랜스(이야기하는 사람/Homo Narrans)’라는 말도 있을까.
이렇듯 ‘스토리’는 우리 삶과 뗄 수 없는 것인데, 이번에 우리 주변에 있는 스토리를 제대로 다룬 <스토리테크 전쟁>이라는 책을 읽고 그 감상을 나누고자 한다. 요즘 대기업들은 스토리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스토리가 가장 강력하게 ‘집중’을 일으키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흡인력 있는 이야기에 빠져있는 동안 우리는 그 미디어 안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게 되고, 그것이 곧 기업들에게는 광고 등의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책 제목처럼 기업들은 제한적인 인간의 시간을 어떻게든 자신 쪽으로 할당받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
책에서는 스토리로 거대한 산업을 이룬 기업들의 형태를 크게 네 가지로 나누고 있다. 그 첫번째가 전통의 강자인 ‘헐리우드 모델’이다. 디즈니나 유니버설 스튜디오, 20세기 폭스와 같은 대형 영화사들이 블록버스터라는 대형 영화를 만들고 흥행에 따른 수익을 가져가는 전형적인 모델이다.
그 다음으로 등장한 것은 ‘실리콘밸리 모델’이다. 이 모델의 대표주자는 넷플릭스인데, 잘 아는 것처럼 넷플릭스는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로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전세계 어떤 환경에서라도 스트리밍이 잘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전송 및 영상 기술이 많이 발달했다고 한다.
세번째는 우리가 잘 아는 ‘유튜브’,‘틱톡’,‘숏츠’와 같은 미디어다. 요즘 사람들이 유튜브나 숏츠를 보는 시간이 1시간이 넘는다고 한다. 유튜브는 프리미엄 서비스에서는 광고를 없앴지만, 상대적으로 저렴한 서비스에서는 꼭 광고를 보고 넘어가도록 설계하고 있다.
마지막으로는 ‘애플’, ‘아마존’ 그리고 ‘쿠팡’도 이런 스토리 전쟁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이들 기업은 스토리 사업 자체로 수익을 내기 보다는 자사의 하드웨어나 서비스를 이용해야지 볼 수 있는 콘텐츠를 제공해서, 고객으로 하여금 다시 고가의 하드웨어를 사게 만드는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어쨌든 지금 인간의 시간을 얻기 위해서 최고의 재미를 선사하는 콘텐츠를 만들고, 한 번 들어온 고객을 계속 붙잡아두면서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 요즘 대기업들이 머리를 싸매고 전략을 수립하면서 노력하는 일이라고 한다. 그래서 위에서 말한 기업들끼리 서로 연합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가히 전쟁이라고 불릴 만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지 않은가?
위와 같이 전쟁과 같은 상황에서 요즘 전세계적으로 각광을 받는 것이 ‘K-스토리’ 모델이라고 한다. 한국이 스토리 산업에서 큰 강점을 가지는 것은 바로 웹툰과 웹소설이라는 원천 스토리 생태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단 많은 이들이 본다는 것은 재미가 보장되어 있다는 이야기고, 그러면 드라마와 영화로 만들었을 때 실패할 가능성이 낮아진다는 이야기가 된다. 웹툰 서비스가 이제 한국을 넘어 일본, 미국 등 전세계로 전파된 상황이기 때문에 전세계 사람들의 반응을 확인하기가 쉬워졌다고 한다. 그래서 한 제작사 대표는 “콘텐츠는 새롭지 않으면 대중의 사랑을 받을 수 없는데, 한국이 웹툰 종주국이라는 점은 (영상) 스토리를 만드는 사람에게는 축복”이라는 말도 했다. 이렇게 창의적인 스토리가 바탕이 되어서인지, <오징어게임>을 시작으로 <무빙> 같이 OTT 흥행의 주역이 되는 작품들도 여럿 나타나고 있다.
그러니까 결국 ‘K-스토리’ 모델은 인기있는 웹툰과 웹소설 원작이 있으면 이것을 드라마 제작사가 판권을 구입하고 드라마나 영화로 제작한 후에 스트리밍 서비스(플랫폼)에 콘텐츠를 공급하는 형태다. 콘텐츠가 흥행하면 지적재산권(IP)을 통해서 또 다른 콘텐츠(음원, 캐릭터, 굿즈 등)를 만들어 내서 수익을 다각화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네이버 ‘나도 도전 만화가’처럼 신규 만화가나 웹소설 작가가 진입할 수 있는 채널이 많은 편이어서 원천스토리는 끊임없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된다.
문제는 수많은 원천스토리 중에 어떤 것이 영상화의 선택을 받을 것이냐인데, 우리가 지금까지 여러번 이야기 해온 것처럼 대중의 선택을 받을 스토리는 무언가 상식을 벗어나고 자극적인 것이 될 소지가 크다. 앞서 말한 <무빙>을 예로 들자면 강풀 작가의 웹툰을 원작으로 하고 있지만, 내용에 폭력적인 장면이 많다. 앞서 말한 <오징어게임>, <스위트홈>, <마스크걸> 등 OTT용 한국 드라마를 생각하면 자극적인 작품이 많다. 단 시간 안에 재미를 줘야하는 웹툰과 웹소설의 속성이 드라마・영화에 고스란히 전해진게 아닐까.
마지막으로 이 책은 또 하나의 큰 전쟁이 다가오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인간과 인공지능의 지독한 갈등이라고 한다. 인공지능이 발달하면서 창작의 분야에도 인공지능 기술이 접목되고 있는데, 이 경우 어디까지를 순수한 창작물로 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고 있다. 또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 만들어 낸 창작물의 저작권은 과연 어떻게 인정해 주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도 점차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더 큰 문제는 저작권 문제가 아니라 그 내용에 있다고 생각한다. 인공지능은 기존의 데이터들을 잘 취합해서 새로운 자료를 만드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기존 OTT 콘텐츠 스토리를 학습한 인공지능이 더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내용의 스토리를 만들어 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오늘 스토리로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요즘의 기업들은 ‘어텐션’이 높은 스토리를 기반으로 많은 투자를 하고 있고, 미디어 기술도 발달하고 있다. 그리고 고객을 붙잡기 위해 자극적인 스토리가 많아지고 있는데 이는 인공지능이 발전하면서 더 가속화될 수 있다. 뭐 이 정도일 것 같다.
우리에게 주어진 한정된 시간을 차지하기 위한 기업들의 분투를 보면서, 한번쯤은 나의 시간은 누가 주도권을 쥐고 있는지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진정 내가 내 시간의 주인인가 아니면 세상의 많은 재미들이 주인인가 그리고 재미를 추구하는 삶을 살 것인지 아니면 나만의 가치를 창출하며 창조적인 삶을 살 것인가... 점차로 자극을 향해서 달려가는 세상을 뒤로 하고 진정 가치 있는 일에 시간을 투자하며 살아가기로 결단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