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테이젼>
2023년 1월 30일자로 실내에서도 마스크를 벗을 수 있게 되었다. 코로나는 영구히 박멸되는대신 우리 주변에 늘상 있는 풍토병(엔데믹)화 되고 있다. 몇년 전만해도 감염자가 생기면 동선이 공개되고 소독을 진행하는 등 코로나에 대해 극도의 공포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제 그마저도 지난 일이 되었다. 그래도 현재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계속 감염자가 발생하고 있다. 그런데 혹시 코로나19를 통해서 우리가 기억해야하는 것도 덩달아 희미해져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예전에 개봉했던 전염병 관련 영화가 흥행에 역주행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컨테이젼>였다.
홍콩 출장을 다녀온 베스가 갑자기 발작을 일으키며 사망하고, 이를 시작으로 각국의 여러 사람들이 같은 증상으로 사망한다. 그 이후의 과정은 우리가 작년에 익히 보았던 장면과 유사하다. 전염의 최초 기원을 추적하는 역학조사, 변이를 일으키는 바이러스, 불안감 때문에 도처에서 발생하는 사재기와 약탈 등 10여년 전 영화가 묘사하는 팬더믹의 세계는 오늘날 우리가 겪은 세계와 놀랍도록 유사하다. 영화 속 이러한 혼란은 백신이 개발되며 일단락되고, 팬더믹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예전의 일상을 하나 둘 되찾아간다.
그런데 눈여겨보면 이 영화의 구성엔 독특한 면이 있다. 바로 ‘둘째 날(DAY2)’부터 시작한다는 점이다. 바로 베스가 미국으로 귀국하기 전 공항에서 기침을 하며 전화를 받는 장면이다. 이때부터 바이러스는 전 세계로 퍼져나간다. 그럼 ‘첫째 날(DAY1)’은 어디로 갔을까?
백신접종으로 사건이 종결된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첫째 날’을 보여주는데, 여기에 바이러스의 기원이 나온다. 울창한 숲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신종 바이러스를 가진 박쥐 떼가 이동을 하고, 이들이 먹던 먹이를 우연히 돼지가 먹고, 이 돼지가 요리되어 베스에게 서빙 되는 장면이다.
감독은 왜 영화를 바이러스 박멸이라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짓지 않고 바이러스의 기원을 영화의 맨 뒤에 배치했을까? 그것은 치료제가 나와 전염병이 종결되더라도 사람이 계속 자연을 파괴하며 개발을 멈추지 않는 한 새로운 전염병은 언제든지 출현할 수 있다는 의미 아닐까? 10년 전에 영화가 예언했듯이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 코로나19 등 새로운 전염병은 주기적으로 우리 앞에 나타났다.
국립과천과학관의 2023년 '바이러스의 고백(Go-Back)' 전시회에서는 인상적인 내용이 있었다. 수만년 동안 무생물 상채로 동면하고 있는 바이러스가 있는데, 지구 온난화로 동토층이 녹으면 잠들어 있던 미지의 바이러스가 활동을 재개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런 고대의 바이러스들은 현재 증식을 위한 숙주세포가 존재하지 않아 당장 문제가 될 가능성은 적지만, 우연한 사건에 의해 현재 포유류에서 증식 능력을 획득한다면 새로운 문제가 될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인간이 무차별적 개발과 성장을 멈추지 않으면 새로운 바이러스는 언제든 되돌아 올 수 있다(Go-Back).
인류가 계속 개발 위주의 삶을 계속할 경우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인간이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면 결국 30여년 뒤에는 기후재난과 반복되는 팬데믹으로 지구에서 살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2050 거주불능 지구>). 코로나 이후에도 자연과 절제된 접촉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한다면 ‘현명한 인간’이라는 뜻의 ‘호모 사피엔스’ 학명을 박탈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코로나 사피엔스>).
이처럼 코로나19 사태 이후에 나온 책들과 전문가들의 의견은 우리의 삶이 이전과는 다르게 변해야 계속 살아나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그래서 주변에서 새로운 삶의 기준인 ‘뉴 노멀(new normal)’이라는 말이 들려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추구할 새로운 삶의 기준은 무엇일까? 엔데믹 시대, 팬데믹을 기억하며 이전의 삶과는 다르게 살아야 할 부분은 무엇일까? 인류가 자연을 파헤치고 공장을 짓는 등의 무분별한 개발을 멈춰야하는 것처럼, 내가 가장 먼저 버려야 할 것을 뽑는다면 역시 내 안에 있는 여러 가지 욕심일 것이다. 남들이 가진 것은 나도 가져야 한다는 소유의 욕망, 모두가 가지고 있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사회에서 뒤쳐진다는 두려움 그리고 남들보다 뛰어나고자 하는 성공 중심의 삶. 자본주의 소비문화에 휩쓸려 온통 이러한 것들에만 매여서 살지는 않았는지 뒤돌아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