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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멋진 미래를 기억하기

<이토록 평범한 미래>

by mhni

김연수 작가의 <이토록 평범한 미래>(문학동네,2022)는 현재를 바라보는 독특한 시각을 이야기한다. 과거의 사건들이 쌓여서 현재의 나를 만든 것이 아니라, 현재의 나는 미래가 결정한다는 시각이다. 이상문학상 수상작('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을 어렵게 읽어서 그간 선입견이 있었는데, <이토록...>은 왜 작가가 명불허전인지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책의 첫 번째 단편인 '이토록 평범한 미래'에는 <재와 먼지>라는 구하기 어려운 소설 이야기가 나온다. 판타지 또는 SF스러운 그 소설에서는 한 연인이 등장하고, 이 둘은 세상의 종말 전에 동반자살하기로 결심하는데 그 이후로 자신들의 인생이 거꾸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그 흐름은 둘이 처음 만나는 순간까지로 이어지고 마침내 그 순간에 도달하자, 시간은 다시 원래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한다. 결론을 말하자면 둘은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알면서 두 번째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과거의 사건이 현재의 나를 이룬다는 것과 미래의 사건이 현재의 나를 이룬다는 것. 이 둘의 차이는 뭘까? 저자의 외삼촌은 그 차이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앞으로 두 사람이 결혼하기 때문에 지금 여기 함께 있다고 말하면 싱거운 얘기라며 웃고 말겠지만, 어린 시절에 엄마가 불행하게 죽은 일이 원인이 되어 두 사람이 이번 여름방학에 동반자살을 결심하게 됐다는 말에도 그럴 수 있을까요? 둘 다 생각일 뿐이지만 차이는 분명합니다.(29페이지)"


과거의 무수한 사건들이 나를 만들었다는 생각은 후회를 낳는다. '그 사건만 없었더라면 지금 내가 이렇지는 않을텐데'라는 후회와 분노의 감정에 휩싸이기 쉽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반대로 가장 좋은 게 가장 나중에 온다고 기대하는 삶은 현재를 어떻게 바꿔놓을까? 과거의 회한이 아닌 미래의 희망이 현재를 결정할 경우 큰 차이가 발생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단편소설이었다.


<재와 먼지>를 나에게 가져다 준 편집자 허진호 씨와의 대화 또한 관점의 변화가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다른 행동을 한번 해보세요. ... 아무런 이유없이 오늘부터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기로 결심한다거나. 아주 사소할지라도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살겠다고 결심하기만 하면 눈앞의 풍경이 바뀔 거에요." 진호씨가 말했다. 그건 무척이나 놀라운 말이었다(27페이지).
이미지 출처 : YES24

이러한 시각의 변화는 기독교적으로도 중요하다. 나를 매번 죄를 짓는 나약한 존재로 볼 것인가 아니면 언젠가는 예수님처럼 변화하여 영광스럽게 될 존재로 생각하는가? 어느 쪽이 더 어려움을 극복하고 현실을 충실히 살아갈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하려 하심이니라 /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로마서 8장 29, 30절)

<로마서2 :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의 구원>(국제제자훈련원, 2019)에서 옥한흠 목사님은 위 성경구절의 '아셨다','정하셨다','부르셨다','의롭게 하셨다','영화롭게 하셨다'가 전부 과거 동사임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186페이지). 그 이유는 이 모든 일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이미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진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다섯 단계 가운데 '영화롭게 하는 것'은 아직 도래하지 아니한 미래의 사건이지만, 사실 그것은 하나님이 창세 전에 미리 계획해 놓으신 일이다(187페이지).


지금은 어떤 어려움에 빠져 있는지 모르지만,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의 종국은 결국 '영화'라는 아름다운 단계에 이른다는 사실이다. 믿는 이는 나중에 천국에 간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말이기도 하다. 미래는 더 좋은 것이 온다는 확신으로 사는 삶. 하나님이 좋은 미래를 약속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삶. 이러한 관점을 가진 사람은 현재의 고난 또한 미래의 영화를 위한 하나의 과정과 단계로 생각할 것이다. 그것은 지금 나의 삶이 과거의 실수로 이루어졌다고 비난하는 삶과는 얼마나 다른 삶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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