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hni May 01. 2024

이상한 사람의 필요성

<여행자의 필요>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봤다. 사실 보려던 영화는 따로 있었는데 조금 늦게 도착한 바람에 다음 타임 상영작을 보게 되었다. 그게 바로 홍 감독의 <여행자의 필요>다. 평이 좋아서 기대가 컸다. 역시 보고 나서는 이게 뭐지? 하는 기분이 들었지만. 왠지 홍 감독님은 정작 자신이 만들고 싶은대로 영화를 만드는데 주변 사람들이 여러가지 해석을 하며 상찬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때도 있다.


 겨우 의식을 붙잡고 본 <여행자의 필요>는 크게 3개의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처음 두 부분은 이리스(이자벨 위페르)가 두 명의 여성에게 프랑스어를 가르치는 부분이고, 나머지 한 부분은 이리스와 동거하는 인국에게 엄마가 갑자기 찾아오면서 일어나는 해프닝이다.

 (이후 글에는 스포일러가 들어있으니 영화를 보시고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리스는 이송의 피아노 연주를 듣고 그녀에게 어떤 감정이 드는지 묻는다. 이송은 연주를 하면서 행복했고 멜로디가 아름다웠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리스는 좀 더 내면의 감정이 무엇이었는지 묻고 이송은 생각대로 연주를 잘 못하는 것 같아서 짜증이 난다고 실토한다. 이리스는 작은 카드에 프랑스어로 '내 안에서 불만을 토로하는 이 낯선 이는 누구인가?'라는 문장을 적어주며 그 문장을 될 수 있는 한 많이 연습하라고 주문한다.


 그게 이리스가 프랑스어를 가르치는 방식이다. 그녀는 교과서도 사용하지 않고 어디서 제대로 프랑스어를 가르친 적도 없는 인물이다. 그저 인국이 시키는대로 자신의 방식대로 교습을 한 것인데 하루 두 탕을 뛰었더니 20만원이 수중에 들어왔다고 기뻐한다.


 두 번째의 강습 대상자는 원주다. 그녀는 피아노 대신 기타를 연주한다는 것을 빼놓고는 이송과 똑같은 패턴을 반복한다(이리스의 질문에 행복하다는 답변. 좀 더 내면을 보라는 질문에 자신에게 짜증난다는 답변). 두 인물이 판에 박힌 답변을 하는 장면은 어떻게 저렇게 두 명의 대답이 똑같을까 하는 의아함을 자아내는 장면이다.


 영화의 세번째 부분은 인국과 엄마 연희의 대화 장면이다. 연희는 이리스가 인국과 동거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아연실색한다. 그리고 어디서 왔고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는 사람을 데리고 오면 되냐고 화를 내고 결국 엄마가 잘 해주지 못해서 엄마 비슷한 연배의 여자를 집으로 데리고 왔냐고 소리치며 눈물을 흘린다. 인국은 이리스가 진정성이 있는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그녀를 변호한다.

 영화는 엄마가 돌아간 후 이리스를 찾아나선 인국이, 막걸리를 한 잔 걸치고 땅바닥에 누워 자고 있는 이리스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끝난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위에서 이야기한 이 세 명의 여성은 어쩌면 우리 안에 있는 전형성을 나타낸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마땅히 이렇게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규범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모범적인 삶이라고 칭찬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고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그렇게 사는 것만이 정답일까? 이리스의 질문은 그렇게 틀에 박힌 전형성에서 탈피하라는 주문이다. 남들이 생각하기에 정답이 아니라 정말 네가 생각하는 너의 감정이 무엇인지 파고드라는 주문.


 인국을 야단치는 연희의 모습에서도 한국 엄마의 전형성이 보인다. 엄마의 입장에서는 청년이 늙은 외국 여자를 데리고 함께 사는 모습을 어떻게 가만히 바라볼 수 있을 것인가. 엄마가 화를 내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어떻게보면 그것도 사회가 정해준 규범이라는 테두리에서 볼 때 그런 격한 반응이 나오는 것일 수도 있다. 인국은 그것을 뛰어넘어 이리스가 사실에 충실한 삶을 사는 좋은 사람이기 때문에 자신이 거처를 내주고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영화의 영어제목은 중의적인 표현이 아니지만, 한글 제목은 중의적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우리에게 왜 여행자(이방인)필요한가'이다. 낯선 시선으로 우리를 바라볼 수 있는 여행자는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깨부수기에 우리에게 필요하다.


 당시 종교인들의 편견을 깨뜨리며 동문서답(또는 우문현답)하던 예수님도 주류 종교인에게는 여행자요 이방인이요 낯선 이다. 그는 유대인들에게 여러가지 비유를 이야기하는 한 편, 그를 옭아매기 위한 질문에도 상상을 초월하는 답변으로 모든 이를 놀라게 한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는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을 알려주는 여행자에게 마음을 열고 그가 이야기하는 것이 무엇인지 경청하는 것은 아닐까? 낯선 여행자는 우리에게 이전에는 생각지도 못한 삶의 지혜와 비밀을 알려줄지도 모른다.


 

 

작가의 이전글 두 세상의 균형이 깨질 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