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라는 단어가 낯설지는 않는가? 이런 영화들은 일반 극장에서 많은 대중을 만나는 상업영화들과는 달리, 수익을 내지는 않아도 감독 자신이 원하는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영화들이다. 보통 영상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은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온갖 자극적인 내용을 담아서 콘텐츠를 만든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선 대규모의 자본이 들어가고, 그 비용을 환수하고 투자자에게 이익을 돌려주려면 어쩔 수 없이 관객이 최대한 많이 보는 내용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보니 온갖 양념은 다 넣은 음식처럼 맛있지만 어쩌면 건강에는 해로울 수 있는? 그런 작품들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에 비해서 독립영화는 어쩌면 담백한 영화라고도 할 수 있겠다. 많은 제작비를 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뭔가 싱거울 수도 있는 작품들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 대신 감독이 타인의 눈치를 보거나 타협하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독립영화에서는 사회고발적인 내용도 많이 나타나기도 한다. 물론, 소소한 일상을 다룬 유쾌한 영화도 있다. 독립영화가 무조건 다 심각한 영화라는 것도 선입견이아닐 수 없다.
요즘에는 극장들이 상업영화에만 상영관을 내주고 있다보니 상대적으로 독립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이 적은 편이다. 여름에 개봉하는 블록버스터를 생각해보면, 관객을 한꺼번에 많이 모으려고 멀티플렉스 상영관의 대부분을 할애해 준다. 그래서 다양한 영화를 보고 싶어하는 관객들을 위한 전용관도 지역에 속속 생기고 있다. 혹시 주변에 이런 전용관이 있다면 시간이 내서 한 번 가봤으면 좋겠다.
서론이 너무 길었다. 어쨌든 내가 오늘 소개하고 싶은 영화는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이다. 이 감독은 이전에 <드라이브 마이 카>라는 무라카미 하루키 원작 작품의 감독으로도 유명하다.
<악은...>은 어떤 영화일까? 그리고 제목의 뜻은 무엇일까? 영화는 106분 정도인데, 이 시간의 대부분은 그저 도쿄 근처의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발생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타쿠미’라는 남자는 장작을 패는 등 마을의 소소한 일거리를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에게는 ‘하나’라는 이름의 딸 아이가 있다. 이곳은 계곡에서 물을 길어서 그 물로 우동을 만들 정도로 자연이 깨끗한 고장이다.
문제는 그 마을에 글램핑장을 설치하려는 도시인들이 오고부터 발생한다. 그들은 마을에 글램핑장을 짓고 싶어하는데 그러면 거기서 나오는 폐기물이 마을 주민들의 식수에 들어갈 수 밖에 없다. 이 사실을 알고 주민들은 글램핑장 건축에 반대하게 된다. 글램핑장 사업을 설명하려고 온 이들(타카하시와 마유즈미)에게 타쿠미는 현재 이 지역은 자연과 인간이 균형을 이루며 살고 있는데 이 균형이 깨지면 안된다고 하면서, 건립계획을 다시 수정하라고 요청한다.
그런데 마을에는 이들 뿐 아니라 사슴을 사냥하는 사냥꾼들도 있었다. 사냥꾼의 총소리에 놀란 타카하시는 글램핑장을 걱정하며 사슴이 사람도 공격하냐는 질문을 하는데, 이에 타쿠미는 사슴이 총상을 입지 않은 이상은 사람을 공격하는 일은 절대로 없다고 대답한다.
영화는 타쿠미의 딸 하나가 행방불명되면서 천천히 마무리를 향해 달려간다. 온 마을 사람들이 하나를 찾아다닌다. 나는 하나가 사냥꾼의 총에 맞아 죽은 것은 아닐까 하고 내내 걱정을 하면서 영화를 봤다. 다행히 그런 결말은 아니었지만. 그런데... (여기 이후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아빠인 타쿠미는 타카하시와 함께 넓은 들판에 서 있는 하나를 발견한다. 하나는 총상을 입은 사슴 한 마리와 서로 마주 보고 있는 대치 상태였다. 그런 하나를 구하기 위해 다카하시가 달려가는데, 타쿠미는 그를 잡아채더니 느닷없이 그의 목을 조르기 시작한다. 그가 죽은 걸 확인한 타쿠미는 코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하나에게 달려간다. 타쿠미는 다친 하나를 안고 산 속으로 들어가면서 영화는 끝(정황상 다행히 다카하시는 죽지는 않은 것 같다).
이 영화가 의미하는 바는 도대체 뭘까? 마지막 6분의 결말에 대해서 여러 사람이 해석을 내놓고 있다. 심지어 ‘타쿠미와 하나 두 부녀가 사실 사슴이었다’라는 해석도 존재한다(?). 나의 의견은 이렇다. 마지막 장면은 ‘자연’과 ‘도시’라는 두 세계의 균형이 깨지면서 서로 충돌하는 장면이라고. 타쿠미(자연)는 글램핑장을 세워 마을을 훼손하려는 타카하시(도시)를 공격하고, 반대로 인간(도시)에 의해 부상당한 사슴(자연)은 하나(굳이 따지자면, 도시)를 공격하는 것이다. 극 중반까지는 자연과 도시가 서로 대화하면서 풀어가는 분위기가 조성이 되었는데 막판에 분위기가 바뀌어서 나도 좀 당황스러웠다.
나는 위의 관계가 어쩌면 ‘교회’와 ‘세상’의 관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봤다. 둘의 관계도 이 세상 가운데 각자의 세계 안에서 균형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이 균형이 깨지는 순간은 어느 한 쪽이 다른 한 쪽으로 다가가는 순간이다. 주로 교회가 전도를 위해 세상으로 나아가는데, 그 방법은 폭력적이어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교회가 복음을 전하면서, 또는 기독교 가치관을 지키면서 보여주는 단호한 모습이 간혹 세상 사람들에게는 상처를 주는 것 같다. 교회에서 아직도 은연중 세상을 향해 정죄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을 보면서, 사실은 교회는 세상을 악하게 생각하고 있구나.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도 이런데 교회 밖의 사람은 과연 어떻게 느낄까? 이제 교회가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으로 나아가는 방식에도 조금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젊은 세대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는 교회 안의 정죄와 강퍅한 마음때문 아닐까 반성하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며 영화를 봤지만, 다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지 모르겠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잔잔하게 흐르다가 마지막 결말에 와서는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든다. 아, 영화의 제목은 왜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일까?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자연과 도시, 어느 한 쪽이 악하다는 이분법이 아니라, 두 세계 모두 나름의 존재 이유가 있기에 붙여진 제목일까?
<악은...>은 80회 베니스국제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작품이니 기회가 되면 한 번 관람을 해보고 영화의 의미와 제목이 뜻하는 바는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 봤으면 좋겠다.
영화에서는 멋진 풍광이 펼쳐진다. 이 웅덩이도 하나의 실종과 관계 있을까봐 무척 긴장하면서 본 기억이 난다...(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