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의 시선>
오늘은 오랜만에 책 한 권 소개하고자 한다. 바로 <율의 시선>이라는 소설이다. 제17회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인데, 이 문학상을 통해서 <완득이>, <위저드 베이커리>같은 걸출한 작품들이 많이 나왔으니 곧 이 소설도 완성도가 있다는 이야기 아닐까?
책은 두껍지도 않고 읽기 어렵지도 않지만, 가볍지 않은 내용을 다루고 있다. 바로 우리 안에 존재하는 ‘무관심’ 또는 ‘무감각’이라는 주제이다. 주인공 안율은 평범한 중학생 아이인데 항상 시선이 땅바닥으로 향하고 있다. 사람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는 것이다. 율이가 어렸을 때 받은 트라우마 때문에 주변 친구들과 정상적인 관계를 맺지 못 한다. 그 트라우마라는 것은 바로 눈 앞에서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죽은 사건인데, 그때의 충격으로 인해 사람들로부터 상처를 받지 않으려고 마음을 무감각한 상태로 유지하고 있다. 율은 사랑하는 엄마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강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감정을 죽이고, 타인을 버리고, 오직 나의 이득만을 위해서...
그런 율이 변화하기 시작하는 것은 바로 ‘이도해’라는 친구를 만나고 나서 부터다. 이도해는 자신의 이름이 싫다고 하면서 자신을 ‘북극성’이라고 불러 달라고 한다. 그리고 자신이 지구 출신이 아닌 외계에서 왔다는 이상한 이야기를 한다. 평소 자신을 비정상이라고 생각했던 율은 자신과 어딘지 닮은 ‘비정상’적인 이도해를 만나 그 아이와 친해지게 된다. 이도해는 율 주변에 있는 다른 친구들처럼 가식적이지 않고 꾸밈없이 자신을 드러내는 아이였다. 율이 자신의 상처 때문에 우울해하면서 아버지의 죽음이 자신 때문이라고 자책하는 순간에, 이도해는 이렇게 말해준다. ‘...다른 사람들의 말에 휘둘리지 마. 타인의 기준은 상대적인 거야. 정말 중요한 건 너지. 절대적인 건 너 자신 뿐이야. 그러니까 너를 봐. 네 마음을 봐.’
그런데 사실 알고보면 이도해도 결코 좋은 환경에서 자란 친구가 아니다. 이도해는 한동안 실종되었다가 쓰레기장에서 발견되는데 그건 바로 엄마가 도해를 집에서 내쫓았기 때문이다. 도해의 엄마는 아버지와 헤어진 후에 도해를 방치하고 집도 쓰레기집으로 만들 정도로 삶을 포기한 사람이다. 이도해도 주정뱅이 엄마 밑에서 폭행을 당하는 삶을 살아간 것이었다. 그래서 도해는 자신의 비참한 삶을 잊기 위해 자신을 북극성이라고 불러달라고 한거고 자신이 외계에서 왔다고 계속 주장한 것이다.
이도해의 사정을 알게 된 율은 주변 사람에게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자신의 태도를 후회하면서 엄마와 함께 도해의 쓰레기집을 청소하게 된다. 그것이 그간 이도해에게 소홀했던 자신의 죗값을 치루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이도해는 어느 순간 홀연히 사라진다. 도해는 어디로 갔을까? 영영 사라져 버린 것일까? 소설의 결말까지 다 이야기할 수는 없으니 줄거리는 여기까지. 하지만 해피엔딩이라는 사실 정도는 알려줘야 겠다.
율은 이도해를 만나기 전까지는 사람들을 믿지 않았고 친구를 만나도 감정적인 선을 긋고 일정 수준 이상으로 친해지려고 하지 않았다. 상처받기 싫다는 마음에 마음의 문을 닫고 무감각하게 삶을 살아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옳바른 삶이 아니라는 것을 율은 친구를 통해 깨달은 것이다. 친구 또한 힘든 삶을 살고 있었지만 그런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었고.
혹시 주변 사람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받은 독자가 있을까? 그래서 절망한 나머지 사람 과의 관계는 단지 자신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관계라고 생각하는 독자가 있을까? 그런 생각 때문에 자신이라는 한계를 넘어서 다른 사람의 처지까지 생각하는 것은 너무 오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독자도 혹시 있을까?
소설에서도 율이 다른 친구에게 왜 이도해에게 아무도 도움의 손길을 주지 않았을까 물어보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사실 둘은 정답을 알고 있었다. 바로 나 사는 것만으로도 힘드니까. 방관자가 당사자보다는 편하니까. 삶의 방관자가 되어서 살아가는 삶은 편할지도 모른다. 아무런 상처를 받을 필요도 없고. 어쩌면 우리는 세상 살아가는 것이 힘들어서 타인을 돌아보는 여유가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이 대목에서 최근에 본 영화 하나가 생각난다. 칸 영화제에서도 극찬을 받은 <존 오브 인터레스트(The Zone of Interest)>라는 영화다. 번역하면 ‘관심 영역’ 정도일텐데... 영화는 독일군 장교의 사택 하나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장교의 아내는 아이들과 함께 행복한 일상을 살아가면서 손수 가꾼 아름다운 정원에서 천국과 같은 삶을 살고 있다. 문제는 이 사택 주위에 장벽이 쳐져 있는데 그 뒤에는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있는 것이다. 영화는 단 한 번도 유대인들이 학살 당하는 장면을 보여주지 않는다. 하지만 평화로운 일상을 보여주는 내내 영화에서는 고함과 비명소리, 시체를 태우는 것으로 추정되는 검은 연기가 계속 피어오른다. 바로 옆에서 사람들이 수백명씩 죽어나가는데도 독일 장교 부부는 사택을 두고 다른 곳으로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는 사소한 걱정 때문에 고민한다.
영화는 비록 2차 세계 대전 때 유대인 수용소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영화감독은 지금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바로 이스라엘과 가자지구의 전투, 우크라이나 전쟁도 주변에서 일어나는 고통이지만 우리가 그냥 외면하고 있는 현실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에는 신경쓰지 않고 그냥 하루하루 나의 고통없는 생활만 신경쓰고 있는지 모른다. 영화는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병폐는 타인을 돌아보지 않는 ‘무관심’,‘무감각’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과연 나 혼자만 문제없이, 고통없이 사는 것이 옳은 삶일까? 소설도 그렇고 영화도 같은 질문을 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영역을 이제는 넓혀야 할 때라고 말하고 있다. 땅만 보면서 살면 한정된 시야 때문에 주변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놓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하늘에 소망을 두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조금은 다르게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나의 관심 영역을 넓혀서 주변의 사람들도 돌아보는 크리스천들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