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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널존 Feb 19. 2021

무진 Mujin 10km

무진기행을 읽고

 

 최근 한 기사를 보았다. 김승옥 작가 1970년에 쓴 작품,  '50년 후, Dπ9 기자의 어느 날'이란 단편 소설이 현재의 모습과 매우 닮아있다는 내용이었다. 2020년을 배경으로 하여 미래를 상상한 이 소설에는 전기자동차, 자율주행자동차, 심지어 '귀요미'라는 신조어까지 예지한 그의 놀라운 능력을 볼 수 있다. 이 기사를 읽은 후 나는 오래간만에 그의 소설 중 내가 가장 아끼는 무진기행을 꺼내 읽었다.



이유없이 끌리는 책



  무진기행을 읽으면서 ‘몽환적’이라는 생각을 가장 많이 했다. 그리고 ‘허무하다’라는 생각을 그다음으로 많이 했다. 맑은 하늘보다는 자욱한 안개와 흐릿한 안개에 감춰진 비포장도로, 써늘한 바닷가가 머릿속으로 그려졌다.


 무진기행을 처음 접한 것은 고등학교 때 문학 지문을 통해서였다. 지문으로부터 왠지 모를 감명을 받은 고등학생의 나는 이 소설을 책으로 읽어보고 싶었고, 마침 집 책장에 꽂혀있는 무진기행을 발견했다. 그때부터 무진기행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 소설이 되었다. 


 사실 아직도 왜 이 책이 좋은지를 모르겠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소설의 배경을 그려보며 몰두하게 된다. 내심 ‘무진’이라는 공간을 부러워하며 갈구하는 내 욕망이 투영되는 듯하다. 





"버스가 산모퉁이를 돌아갈 때 나는 '무진 Mujin 10km'라는 이정비를 보았다."


 무진은 주인공에게 일탈의 공간이다. 그리고 실패와 새로운 결정의 순간을 함께하는 공간이다. 또한, 주인공이 어머니와 함께했던 유년기와 청소년기의 추억이 담긴 곳인 동시에, 자신과 타인 그리고 도시 자체를 혐오하는 공간이다. 소설의 첫 문장인 위 구절은 현실의 도피처인 무진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고 느꼈다.





 “나는 내게 주어진 한정된 책임 속에서만 살기로 약속했다.”


아내의 전보를 받고 상경을 준비하는 주인공이 스스로 다짐하는 구절이다. 무진에서의 일탈이라고 볼 수 있는 여교사 허인숙과의 나름의 밀애를 부끄러워하는 주인공의 속내를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누구나 일탈을 꿈꾸지만, 그것은 책임을 동반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본인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에서만의 인생을 살아가며, 위 구절은 일탈에 대한 용기를 접고 현실을 살아가는 그러한 현대인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느꼈다.





 “덜컹거리며 달리는 버스 속에 앉아서 나는, 어디쯤에선가, 길가에 세워진 하얀 팻말을 보았다. 거기에는 선명한 검은 글씨로 '당신은 무진읍을 떠나고 있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씌어 있었다. 나는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소설의 마지막 구절이다. 주인공은 본인의 일탈을 부끄럽게 생각하며 마지막으로 허인숙에게 쓴 편지를 찢어버린다. 그렇게 주인공은 무진을 떠나 서울로 향한다. 첫 구절과 상반되는 팻말을 보여주며 도시로 상경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는 말을 통해 무진에서의 2박 3일을 함축적으로 나타낸다.




나에게도 무진이 있는가?



  누구나 내재 된 욕망을 가지며 각자만의 일탈 방식을 지니며 살아간다. 아마 대다수는 그 수단으로 여행을 택할 것이다. 여행지는 일탈의 공간이며 현실에서는 안 되는 것을 실현해줄 수 있다는 기대감을 우리에게 준다. 하지만 현실로 돌아와 일상과 마주하면 그것은 허무함으로 다가온다. 무진기행을 읽으면 한 번의 여행을 다녀온 듯하다. 이것이 내가 이 소설을 아끼는 이유라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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