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첫날 체크인까지 9시간 반
도쿄 여행 첫날, 오후 2시 비행기를 탄 나와 친구는 그날 밤 11시 30분이 되어서야 숙소 체크인에 성공하게 된다. 소요시간은 무려 9시간 반. 체크인이 험난할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그 예상을 뛰어넘는 무시무시한 여정이었다.
원흉은 나리타 공항과 이케부쿠로 숙소의 케미가 영 좋지 않았다는 것. 여행 전 숙소 위치를 고민할 당시 도쿄의 지역별 분위기를 정리한 블로그를 보게 됐다. 신주쿠는 시끄럽고, 딴 데는 어떻고, 그중 이케부쿠로가 조용하고 값도 저렴하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처음 들어보는 곳이었지만 찾아보니 가정집이 많은 동네였고 도쿄 교통의 중심인 JR선으로 접근이 가능한 곳이었다. 몇 년 전 오사카 여행에서 가정집 숙소에서의 기억이 좋았던 나는 냉큼 이케부쿠로 숙소를 예약했다.
그리고 여행 직전 다시 교통편을 찾던 나는 코로나 이후 JR선이 이케부쿠로역까지 운행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그러자 예상 이동 시간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결국 여행 첫날, 우리는 나리타 공항에 내려 나리타 익스프레스를 타고 신주쿠까지 가서 저녁을 먹은 뒤 다시 지하철 두 번을 더 갈아탄 끝에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착 시간은 11시 30분. 잘 알아보지 않고 숙소를 예약한 대가를 혹독히 치른 날이었다.
살짝 외곽으로 치우친 이케부쿠로의 지리상 도쿄 시내 어딜 가든 신주쿠로의 30분 이동이 필수였다. 신주쿠가 이렇게까지 교통의 요지라고 왜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을까. (사실 신주쿠가 시끄럽고 번잡하다고 패스한 건 나다) 알고 보니 예전에 도쿄에서 1년 정도 산 친구도 이케부쿠로에 살았다고 한다. 관광객은 잘 오지도 않는, 찐 현지인들 뿐인 동네였던 것이다. (가정집이 좋다고 예약한 것도 나다…)
그렇다고 이케부쿠로가 마냥 불편하기만 했냐면, 그건 아니었다. 글을 쓰는 지금도 이케부쿠로를 떠올리면 좋았던 기억이 따라온다.
캐리어를 끌고 숙소를 찾아가던 첫날 일본 영화에서나 보던 선로가 나타났다. 경보음이 울리고 빨간 불이 켜지며 통행금지선이 내려오고 바로 앞으로 전철이 지나갔다. 피곤한 것도 잊고 신이 나서 영상을 찍었다. 숙소 근처를 가로지르는 히가시나가사키역의 긴 선로를 우리는 매일 아침밤 건너며 눈앞에서 전철이 지나가는 것을 구경했다. 가장 일본 특유의 감성이 잘 느껴지는 곳 중 하나였다.
늦은 밤 이케부쿠로 거리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아주 조용했다. 대신 어느 집을 지나갈 무렵 목욕비누 향기가 훅 끼쳤다. 여기 어딘가에선 사람들이 잘 준비를 하고 있겠구나. 그걸로 조금 무서웠던 기분이 나아졌다.
둘째 날 도쿄에는 비가 내렸다. 움츠려든 채 한 손으로는 우산을 들고 역까지 열심히 걷는 와중에 이케부쿠로 거리 여기저기를 찍었다. 집들은 대체로 네모반듯하고 정갈했고 아기자기한 화분이나 소품들로 꾸며져 있었다.
대부분 가정집이었지만 군데군데 늦은 밤까지 불이 켜진 이자카야가 많았다. 도쿄를 떠나기 전 한 번은 꼭 이케부쿠로에서 이자카야를 가자고 약속했고, 마지막 밤 숙소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이자카야를 찾았다. 괜히 한 번 걷고 들어가 보고 싶은 도어커튼이 있는 로컬 맛집이었다. 우리가 이번 도쿄 여행에서 간 곳 중 처음으로 영어 메뉴판이 없는 곳이었다.
일본 드라마의 한 장면에 들어온다면 이런 기분일까? 막 퇴근하고 삼삼오오 모인 것 같은 직장인들이 금세 테이블을 가득 채웠다. 바깥 길거리는 아무도 없는 것처럼 고요하더니, 가게 안은 시끌벅적했다. 영어 메뉴판이 없어 고민하던 우리는 구글 리뷰에서 가장 인기가 좋아 보이는 새우튀김 그라탕과 닭꼬치를 주문했다. 전날 갔던 시부야의 논베이 요코초 같은 번화한 이자카야에서는 느끼지 못한 감성이 나왔다.
실수긴 하나 첫 도쿄여행에서 묵게 된 이케부쿠로는 반듯하고 아기자기한 일본의 감성을 느끼기 좋은 동네였다. 물론 다시 도쿄로 간다면 신주쿠로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