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라밸 극과 극 회사 체험
지난 주 금요일, 퇴사를 통보했다. 생각보다 행복한 기분은 아니었지만 후련했다.
첫 번째 회사는 너무 힘들었다. 동료들도 좋았고 일도 재밌었지만 체력적으로 소모가 컸다. 작은 규모에 체계없는 중소기업. 문제점을 건의해도 나아질 수 없는 구조였다. 대표는 1시간 내내 퇴사를 말리며 나를 설득했다. 그 자리를 너무 뜨고 싶어 그러겠노라 말할 뻔할 걸 간신히 참았다. 7월에 퇴사를 통보했고 10월에 퇴사하게 됐다. 1년 6개월의 경력이 남았다.
연애를 할 때도 그렇지 않을까? 너무 성격이 불같은 남자친구와 문제가 생겼다면 다음엔 차분한 보살 타입의 남자를 찾게 될 것이다. 너무 화끈한(?) 회사에 몸도 마음도 지쳐버린 탓에 공고에 대놓고 워라밸을 보장하는 인하우스 중견기업에 지원했다.
3번의 면접을 거쳐 합격. 나와 같은 직무인 사람은 건물 내에 아무도 없었고 나는 9시간 동안 자리에 앉아 내 일을 끝내기만 하면 됐다. 6시에 조금이라도 꾸물대면 얼른 퇴근하라고 독촉하는 상사, 인사도 하지 않고 자리를 뜨는 동료. 매일 같은 시간에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오는 나를 보며 부모님은 기뻐하셨다. 퇴근 후 요가 학원에 다닐 수 있었고, 약속 자리에 친구를 기다리게 하며 사죄의 카톡을 보내지 않아도 됐다. 주말에 약속을 잡으며 '그때 가봐야 알 것 같다'는 말을 하지 않아도 됐다. 입사 첫 달, 아무 것도 나를 붙잡지 않는다는 해방감을 느끼며 정시 퇴근했다. 한국처럼 워라밸이 부족한 나라에서 몇 안 되는 '신의 직장'에 들어간 것이다. (*꿈의 직장과 신의 직장은 엄연히 다르다.)
그 행복이 무너지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더 퍼스트 현타는 들어간지 한 달만에 담당 업무가 바뀐 사건이었다. '지원 부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체감했다. 순 우리말로 '곁다리' 정도로 생각하면 되겠다. 그 곁다리 부서에서 나는 외눈박이 마을의 이방인이었다. 잘 하면 좋고, 아니면 말고인. 아무도 열심히 하지 않았다. 내가 뭘 해도 다 나를 칭찬했다. 뭘 해도 '이런 건 어디서 배웠냐'며 날 추켜세웠다. 고작 1-2년 경력의 내가 듣기에는 너무 과분했다. 조직에 대한 기대감만 낮아져갔다. 이곳에서 대체 어떤 성과와 포트폴리오를 가져갈 수 있을까?
퇴근 후 자기계발이라는 걸 해보려고 노력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정시 퇴근을 하더라도 체력적으로는 힘들었다. 집에 가면 무기력하게 누워있기만 했다. 운동도 잘 나가지 않게 됐다. 미친듯이 친구들과 약속을 잡고 해외여행도 다녀왔지만 회사에 돌아가면 또 무기력하게 9시간을 때웠다. 뇌가 썩는 기분이었다. 여기 오래 고여있으면, 이 다음에 성과를 입증해 이직할 수 있을까? 같은 회사를 나온 다른 동료들은 이름있고 성과좋은 회사에 이직해 커리어를 잘 쌓아가는 것 같았다. 가장 나른하고 무기력한 오후 3시, 자리에 앉아 답답함에 눈물을 뚝뚝 흘렸다. 어차피 높은 칸막이에 가려져 아무도 내가 우는 걸 모르니 상관없었다. 체력적으로 더 힘들었던 첫 회사에서 보다 더 자주 울음이 났다.
지난 주 금요일, 퇴사를 통보했다. 상사의 반응은 '그럴 줄 알았다'로 시작해 '이렇게 하면 퇴사를 안 하겠느냐'로 이어져 '알겠다'로 끝났다. 첫 회사 보다 훨씬 깔끔하고 나이스한 퇴사 조정이었다.
몇 주 후, 나는 두 번째 회사를 퇴사한다. 1년의 경력이 추가됐고. 워라밸이 너무 없었지만 재미있었던 첫 회사. 워라밸 하난 끝내줬지만 재미없었던 두 번째 회사. 극과 극인 회사를 거쳤다. 그때그때 나에게 필요한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번 경험이 없었다면 워라밸에 대한 환상이 아직 남아있었겠지.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게 뭔지 또 찾아나설 시간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