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버스 맨 뒷자리의 기억

누구나 경험해봤을 대중교통이야기

by 소심소망

아이팟과 이어폰은 필수품.

살며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익숙한 곳을 보며 가는 것은 바쁜 일상생활에서 잠깐 쉬어가는 여행같아서 나는 버스 타는 것을 좋아했다. 적어도 그 시간만큼은 공부를 하지도 않고 일을 하지도 않고 좋아하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창밖을 바라보며 말도안되는 상상을 하곤했으니까.


면접 본 회사의 합격 문자를 받는 상상이나,

좋아하는 친구와의 만남과 이별도

앞으로 어떻게 살건지 백만장자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허무맹랑한 상상을 하기도 했다.

까마득하긴 하지만 이어폰을 하나씩 나눠끼고 좋아하는 노래를 누군가와 함께 듣는다거나

내릴 정류장을 지나칠 정도로 친구와 즐겁게 이야기 하던 기억도

그리고, 남몰래 눈물을 닦던 기억도

술에 거하게 취해서 잠들어 종점까지 가본 기억도..

나는 그래서 버스가 좋았다.


적어도 버스에서는 누군가가 무얼해야한다고 이야기 하지 않으니까

너 지금 뭐하고 있니 라고 물어보지 않았으니까.

만약 내가 아파트 벤치에 앉아서 멍때리다가

지나가는 엄마 친구를 만났다면,

분명

" 집에 안들어가고 여기서 뭐하니" 라는 명령어를 입력하여 나를 기어이 집앞 까지 데리고 갈 것이 분명했고,

공원 벤치에 앉아있어도 지나가는 사람들이 신경쓰이는 극소심 주의라 편하게 멍때리기도 어려운데,


적어도, 버스에서만큼은 나에게 무언가를 하라고 아무도 이야기 하지 않았다.

특히 비오는 날 버스 타는걸 좋아했는데, 빗물이 창밖에 닿아 여러물줄기가 합해져 내려오는 것을 보면

누군가 같이 나를 위해 울어주는 것 같아 위로가 되기도 했다.


겨울에는 다리 아래 히터가 있는 자리를 좋아했는데, 수많은 실수에 꽁꽁언 발을 따뜻하게 녹여주면 그것 또한 위로가 되었다. 버스는 내 감정에 가장 솔직해질 수 있고 제일 정확하게 나와 대화할 수 있는 가장 초라하지만 가장 화려한 나만의 대중교통이었다.


가고싶었던 회사에 1차 면접 합격 결과를 확인한 순간

나는 버스에 있었다. 분홍빛 해가 지고있었고 내가 탄 버스는 서울역 앞을 지나고 있었다.

창문을 열고 소리를 지를 뻔했던 빛나던 그 순간 그 벅찬 기억이 온 세상이 나를 위해 돌아가고 있다는 말도 안되는상상이 아직도 기억난다. 미아처럼 길을 잃고 헤매던 그 취준생의 순간에 누군가 따뜻하게 나의 손을 잡아준것 같아서 눈물과 웃음이 공존했던 그 버스안의 장면이 십년 넘게 지났음에도 여전히 생생하다.


이젠, 버스를 잘 타지 못한다

시간예측이 어렵고 그렇게 때문에 시간관리를 못하게 되고,

20대에 아무생각없이 가도가도 끝없는 종점까지 가는건 낭만이 아니라 실수가 되버리는 삶이기에.

버스를 타는건, 이제 불편해졌다.


그래도 여전히 나는 버스가 좋다.

유난히 시달렸던 날, 감추거나 숨기지 않아도 되는 버스 맨 뒷자리에서

아득히 멀어져버린 그리운 내 시절들을 꺼내보고 싶다.

겁먹고, 여리고, 순수했던 그 시절이 너무 소중했음을

세월이 지나가보니 알아지더라.


잊지 못할 그 시절.




keyword
작가의 이전글버리지 못한 택배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