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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사막 Sep 02. 2020

한국으로 돌아가며

한국으로 이사를 준비하며 1

외국 생활을 접는다.

타지에 풀어놓은 시간들을 간수하며

행복했지만 불행했던 일상에게 안녕을 고한다.


한국에서 이곳에 이사 왔을 때도 정성 들여 장만했던 신혼살림들을 뿔뿔이 나눠주었는데.

반토막난 살림살이를 보고 있자니 왠지 서러워.

나, 유목민처럼 떠돌이 생활에 마냥 소유욕 없이 산 줄 알았었니?

이빨 나간 밥그릇 하나에도 내가 살아낸 세월을 담았었던 오브제가 되어버렸음을

이제 알았니?


남편이 어디선가 얻어온 상자 안에 자기 물건 하나라도 빠뜨릴까 부지런히 담고 있는 나의 아들,

껌종이 하나도 버리지 못하는 네가 참으로 이해되는 오늘이다.

네가 낙서한 종이 한 장에도 너만의 시간이 담긴 것이기에 그러겠지.

그동안 몰래 니 물건 갖다 버려 미안하다.

어차피 물건들은 전부 우리 손에서 떠나 몰살될 것이었는데.


이 집과 이별할 준비를 하고 있자니 일이 손에 잡히질 않는다.

아들이 낙서해 놓은 거실장과

테이프 자국이 지워지지 않은 책상,

균형이 맞지 않아 흔들거리는 식탁마저도 아름다워 보이네.

눈에 밟힌다는 말이 이런 것일까?  

아마도 여기저기 묻어있는 나의 시간들 때문에.


나는 내가 부지런해서 아이를 잘 돌보고 남편과 화목하면 온전히 행복할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진짜 행복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의 삶을 나누며 살 때 느끼는 것이었다.

가족이 아플 때, 집안에 경사가 있을 때, 나에게 힘든 일이 있을 때, 명절 때, 해가 바뀌는 연말에, 생일 때, 아이가 학교에 들어갈 때, 남편이 승진했을 때, 병원에 입원했을 때_

기쁨도 슬픔도 가족들과 나눠야 사람답게 사는 삶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분명히 돈이 다가 아니었다.

아이에게 풍요한 환경이 전부가 아니었다.

나는 내 아들이 공부를 잘하고 돈을 잘 버는 직장에 다니는 것에 초점을 맞추며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

사람과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자신의 삶을 나누며 행복하게 살기를 절실히 원한다.


이 복잡한 이사를 끝내면,

엄마 아빠에게 달려가 보고 싶었다고 아무 일 없었던 듯 말해보고 싶다.

형제들과 나의 긴 여행 이야기를 도란도란해보고 싶다.

그 따뜻한 온기 속에 나를 담그고 서러운 마음을 녹여내고 싶다.

내 아이가 외동이지만 이 세상에서 혼자가 아님을 깨닫게 해주고 싶다.

남편과 떡볶이 한 접시 나눠 먹으며 한국이 최고라고 한바탕 웃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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