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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류지 Apr 13. 2024

나의 등굣길

생각의 기록

 이번 학기가 시작하고 나는 매일 등하교를 걸어서 하고 있다. 우리 집에서 학교까지는 30분에서 40분. 그렇게 매일을 열심히 걸으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 소중한 생각들을 그저 한날의 잊히는 순간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오래오래 간직하고파서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다.




2024.03.20 수요일


    아직 꽃이 피지 않은 이른 봄이다. 그래서 등굣길의 많은 나무들이 초록 옷을 입지 않고 가지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문득 하늘을 올려보다가 하늘색 바탕에 그려진 나무들의 가지들을 보았다. 가느다랗고 고운 손가락을 쫙 뻗은 여러 개의 아름다운 손의 합작 같았다. 이제 곧 꽃 이불을 덮으면 이 아름다운 손가락들을 예술을 보지 못하겠지. 그러니 이 소중한 아름다움을 한껏 들이마시자.




2024.03.22 금요일

   학교 가는 길에는 여러 가지가지들이 다소 위험하게 인도로 나와있는 구간이 있다. 얼마 전까지 나는 그곳을 지나치며 항상 '왜 저 위험하고 볼품도 없는 가지들을 그대로 놔두는 것일까'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여느 때처럼 빠른 걸음으로 학교를 가고 있었는데 순간 고개를 획 돌리니 그 가지에 노란 꽃망울이 작게 맺혀있었다. 알고 보니 개나리였던 것이다. 그 순간 나의 걸음이 느려졌고, 개나리에게 참 미안했다. 내가 미워했음에도 나에게 자신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며 행복을 전해주는 개나리를 보며, 이전에 몇몇 친구들에게 미웠던 감정이 들었던 나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개나리에게 인생을 배웠네.

막 세상에 나오기 시작한 개나리들. 그리고 며칠 후 거리를 맑고 빛나는 노란빛으로 채운 개나리



2024.03.26 화요일   

    이제는 정말 봄이 성큼 다가왔나 보다. 오늘은 노오란 개나리뿐만이 아니라 연자주빛의 예쁜 진달래도 만났다. 학교에 걸어가지 않는다면, 혹은 걸어가더라도 많이들 가는 지름길이 아닌 정문을 정직하게 지나는 길을 가지 않는다면 좀처럼 지나가지 않는 길에서 아주 예쁜 진달래가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이 진달래가 이번 봄에 처음 만난 사람이 나 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내심 뿌듯했다. 그저 바쁘게 가던 등굣길을 멈추고 잠시 꽃을 감상하며 마음의 평화를 찾은 아침이다. 난 내 등굣길이 참으로 좋다!

몰래 살짝 핀 진달래




2024.04.01 월요일

    4월의 첫날이자 새로운 한 주의 시작인 날이다. 주말에 친구를 만나서 잘 쉬었더니 월요일인 오늘 학교에 가는 것이 무척이나 싫었다. 하지만, 가야 한다. 그래서 그저 여느 때처럼 새벽 4시 40분에 일어나 일기를 썼다. 오늘은 새로운 책을 읽고 싶어서 예전에 읽다가 한 달가량은 펼치지 않았던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를 읽기 시작했다. 이전에 읽을 때는 솔직히 나에게 조금 어렵게 느껴져서 금방 책을 덮었던 것 같은데 왜인지 오늘 새벽에는 책이 술술 잘 읽혔고, 또 재미있었다. 요즘따라 참 많이도 걷는 나에게, 산책자 루소의 이야기는 정말이지 와닿았다. 그리고 열심히 운동을 하고 아침을 맛있게 먹고 집을 나왔다.

    셔틀을 타지 않은지 거의 3주가 되었다. 사실 걸어가는 것이 망설여질 때도 있다. 딱 오늘이 그랬다. 하지만, 날씨가 이렇게나 좋은데! 걸어가지 않는 것은 뭐랄까... 손해 보는 기분!

고개를 돌리기만 해도 감탄이 나오며 미소가 지어지는 길


 그래서 또 힘차게 씩씩하게 열심히 걸어갔다. 그런데, 내가 지나는 길마다 너무나 예쁜 봄의 꽃이 만개해 있었다. 주말 사이에 참 많이도 폈구나. 노오란 개나리와 밝은 분홍빛 자줏빛의 진달래가 섞여있는 모습이 정말 예뻤다. 셔틀을 탔으면 보지 못했을 이 광경. 아주 뿌듯해졌다. 또, 공기는 얼마나 맑고 좋은지! 오랜만에 미세먼지가 없는 서울 하늘은 무척이나 반갑고 소중했다. 숨을 있는 힘껏 깊게 들이마시고 내뱉으며 걸었다. 그리고 신비로운 느낌을 받았다.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마다, '나 오늘 잘 해낼 수 있다!' 하는 용기와 자신감이 한 방울씩, 아니 큼직한 한 움큼씩 내게 들어오는 것 같았다. 월요일의 아침을 그렇게 내가 스스로 행복하고 멋지게 만들었네. 나 멋지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소나무가 하늘색 도화지에서 멋지게 자신을 뽐내고 있다. 또 하얀 종모양 목련 꽃들이 한가득 눈 앞에 펼쳐진다.




2024.04.13 토요일

     오늘은 토요일. 학교에 가지 않는 날이다. 사실 지난 한 달 동안 주말에는 학교 가는 길의 중간까지 열심히 걷고 집으로 돌아오는 아침 루틴을 실천했다. 오늘도 열심히 걷고 왔다. 참 신기하게도 딱 그 중간 지점이 꽃이 참 예쁘게도 피어있다. 그런데 오늘 이번 봄 처음으로 '아.. 이제 꽃 잎이 떨어지고 잎이 나고 있구나.'라고 느꼈다. 하지만 전혀 아쉽지 않았다. 오늘의 풍경도 무척이나 예뻤고, 나는 이번 봄에 등하교 길에서 꽃구경을 실-컷 했어서일까. 지난 몇 주간 아름답디 아름다운 꽃을 피워주어 나를 행복으로 채워준, 그리고 소중한 추억을 선물해 준 나무들에게 그저 고마웠다. 잊지 못할 봄이다. 이제 여름이 다가와 다정한 연두색 옷을 입으면 맑디 맑은 하늘의 하늘색과 얼마나 예쁜 조화를 이룰까. 내일의 아침이, 앞으로의 아침이 무척이나 기다려진다!

학교가는 길의 중간지점에서 만난, 참 예쁘기도한 개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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