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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요브 Oct 24. 2020

무슨 수를 써서라도

whatever it takes

☼ 이 글은 영어공부를 해야 하는데 영- 하기가 싫고, 그래서 좋아하는 것들을 섞어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시작되었습니다. 가벼운 낙서와 함께 제가 남겨두고 싶은 소소한 이야기 혹은 그 문장이 마음에 들었던 이유에 대해 풀어냅니다. 그러니까 영어공부를 목적으로 쓰는 글이지만 영어보다 한글이 더 많은 글입니다.


 


세상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뤄내고 싶은 일들이 있으셨나요?

네, 저는 있었습니다. 바로 '수영'입니다. 사면이 바다인 섬에서 자랐음에도 수영을 못했었습니다. 바닷물에도 가라앉는 어마어마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죠. 어릴 때, 조류에 갇혀 울며 나온 기억도 있는 데다 바닷물에 몸을 담그고 나오면 햇볕에 소금물이 말라 따끔거리는, 찝찌름하면서 버석거리는 감각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수영을 못한다는 사실이 그다지 삶에 장애물이 되지 않았습니다. 가끔 '섬사람'이 수영도 못하냐며 놀려대곤 했지만, 뭐 그게 별 대수랍니까.


문제는 생에 처음으로 떠난 유럽여행에서였습니다. 이탈리아 피란체에 멋진 숙소를 예약했습니다. 지하에 풀장이 있는 곳이었죠! 겨울 여행이라 변변한 수영복도 챙기지 않고 떠난 여행이었지만, 다들 가벼운 평상복 차림으로도 재미있게 노는 자유로운 곳이었습니다. 낯설지만 쭈볏대며 옷가지와 타월 등을 챙겨 지하로 내려갔습니다. 사람들이 제멋대로 놀고 있는 모습에 마음이 곧 풀어졌고, 저도 뛰어들었습니다. 아. 아하. 그러니까 미쳐 생각하지 못했던 겁니다. 그들의 평균 신장이 173cm이라는 것을. 나는 한국의 평균 키 163cm. 그 10cm의 차이를. 멀리 서는 그냥 어깨춤에 오는가 보다 라고 생각했는데 왜 수면이 제 정수리에 오는 것인지요. 숨을 쉬기 위해선 계속 바닥을 치고 점프해야만 했습니다. 그들과 게임을 같이 하려고 해도 잠겨있는 게 반, 껑충 떠있는 게 반인 상황. 아쉬운 마음을 안고 물밖으로 나와야만 했습니다. 아, 하고 만다 수영.


여행에 돌아온 후, 정말로 제일 먼저 한 것은 수영강습을 끊는 일이었습니다. 안된다. 내가 똑같은 숙소비를 지불하고 그 서비스들을 다 이용할 수 없다니. 이렇게 억울할 수가!! 부들부들. 그리고 3개월 동안은 계속 락스 향이 나는 수영장에서 발장구치기, 멈추기, 일어서기, 숨쉬기, 발장구치기, 팔젓기, 멈추기, 일어서기, 숨쉬기를 반복했습니다. 어느 정도 물에 떠서 앞으로는 나아갔지만, 숨을 쉬기 위해선 어김없이 멈춰 서서 물 위로 올라와야 했습니다. 자유형을 하지만 한 라인을 갈 때까지 숨을 쉴 수 없어 사실 전 잠영을 하는 것과 다름없었습니다. 3개월이 지나도 영 늘지 않아 여의도 조오련이라는 선배에게 요청해 주말에 같이 큰 시립 수영장도 갔었습니다. 아니, 팔을 더 붙이고, 그래 허리 힘 빼고!, 태릉촌 못지않은 트레이닝을 통해 5개월이 되어서야 드디어 저는 수영을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제 수영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드디어 물을 정복했다며 어깨에 힘이 들어가던 그 해 여름. 동생이 결혼 전에 떠날 수 있는 마지막 여행이라며 제안한 태국여행에서의 일입니다. 드디어 내가 갈고닦은 아주 완벽한 삼각형 팔의 각도를 보여줄 때가 되었습니다. 정말 좋은 숙소에 묵고 싶다는 말에 그래? 그렇다면 언니의 힘을 보여주지! 라며 지른 H호텔. 역시 휴양지는 휴양지였고, 넓고 다양한 풀들이 곳곳에 있었습니다. 크- 역시 호텔 수영이라면 새벽에 조용한 가운데 홀로 유유자적하며 즐기는 그것이 아니겠습니까? 맞습니다. 저는 당당하게 아침 수영을 하기로 했죠. 전날 밤 눈여겨본 풀장엔 노신사분이 벌써 여유를 즐기고 계셨습니다. 좋아 좋아. 나도 간다! 

혹시 그림이 그려지시나요? 수영 안경을 딱! 쓰고 매우, 열심히, 전투적으로 자유형을 하는 키 163의 작고 까만 여자의 모습 말입니다. 팔과 다리를 멈출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가라앉고 맙니다. 천천히 가더라도 보이는 건 수영장 아래 붉은 타일. 힘찬 발장구 소리는 물 속에 있어도 철퍽철퍽 잘 들립니다. 저는 노신사의 휴식을 더 이상은 방해할 수 없어 조심스레 풀 밖으로 퇴장했습니다.


아, 그 뒤는 어떻게 되었나고요?

'그래. 배움엔 끝이 없지?'를 깨우치고 배영, 평영, 접영을 거쳐 오리발을 끼는 중급자 코스를 올라왔습니다. 아직 오리발은 2번밖에 못 껴보고 계속 수영장을 못 가고 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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