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로 된 사슬
계속 괜찮다고 말하다 보면
정작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 순간을 모르게 된다
우리 집이 대단히 불화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여느 많은 가정이 그렇듯’이라고 표현하고 싶지도 않다. 쉽지 않은 문제지만 그 시절 우리 집은 폭력적인 곳이었다. 그 많은 전쟁 속에서 내 동생은 싸움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었고, 나는 무감각해지고 있었다. 거친 욕설과 사물의 폭발 속에서 어머니는 늘 약자였으며 고통받는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모든 것을 부쉈고, 어머니는 항상 빌었다. 많은 ‘알 수 없음’중에 그것이 늘 이해되지 않았다. 왜 망가뜨리는 건 아버지인데 잘못을 비는 건 어머니일까? 때리는 건 아버지인데 왜 어머니는 사람이 아닌 짐승처럼 엎드려 아버지에게 잘못했다고, 살려달라고 말하는 걸까.
긴 세계 전쟁에서도 휴전은 있었다. 열여덟 평 남짓 되는 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소란이 한바탕 끝나고 나면 어머니는 화장실 변기에 앉아 울었다. 나는 습한 설움이 눌어붙은 침대에서 울음을 덮고 잠이 들었다. 소리가 들리지 않는 날엔 불투명한 유리에 비친 불빛을 노려보거나 가끔 화장실 앞을 서성거렸다. 그날은 화장실 문이 닫혀있지 않았고 나는 변기에 앉은 어머니를 보았다. 그녀는 나를 발견하자 양팔을 펼쳐 보였다. 훈련된 개처럼 혹은 세이렌에 홀린 어부처럼 나는 그녀의 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그녀는 나를 지탱해 짐승같이 울었다. 평소 어머니의 품은 따듯했는데 그날은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아서 낯설었다. 그저 어깨가 축축했다. 어머니는 주문을 외우듯 말했다.
“너 때문에 살아.”
“너 때문에 살아.”
몸이 뻣뻣해지며 ‘딸각’하는 소리가 심장으로 내려앉았다. 족쇄가 채워지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나 때문에 제 삶을 살지도 못하고 이렇게 사는구나. 나는 그녀의 기쁨이자 버팀목이었다. 나는 어머니로부터 멀리 달아나고 싶으면서도 그녀의 삶을 보상해줘야 했다. 그녀의 사랑이 무거웠다. 그래서 미안했다.
그래서 나는 그녀 앞에서 늘 괜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