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기억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데,
손톱이 자란다.
자라난 손톱을 깎는다.
내 손가락의 머리가 잘린다.
나는 그냥 집에 있는 책이라면 뭐든 집어서 읽었다. 어떤 기준인지는 모르겠으나 그의 자식이 매일 읽고 있으니 나름 고심하지 않으셨을까 짐작한다. 당시 꽂혀 있던 것은 ‘사람이란 무엇으로 사는가’였다. 사람은 왜 사는 걸까? 부자는 왜 더 많은 부를 가지려고 하는 걸까? 나는 무엇으로 사는 걸까? 그냥 이대로 죽음의 길로 가는 걸까? 죽음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어떤 느낌일까? 몸은 사라지고 정신만 남아 떠다니게 되는 것일까? 나는 그냥 공기 중에 홀로 존재하게 되는 것일까? 존재하는 것조차 존재하지 않음으로 전기가 꺼진 냉장고 같은 걸까? 이 생각을 하는 것조차 없는 건가? 늦은 밤 나는 꼬리를 무는 생각들로 잠이 들기 어려웠다. 그것은 9살짜리가 감당하기엔 너무나도 큰 질문이었다. 너무 무서워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며칠을 시달렸던 게 기억이 난다.
도무지 혼자 소화할 수 없는 무게를 나누고자 마음먹었다. 점심을 먹고 늦은 오후 어머니에게 다가가 부자는 이미 돈을 많이 가지고 있는데 왜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버는 거냐고 물었다. 어차피 부자들에게도 붕어빵 한 봉지는 1천 원이고 밥은 하루 3끼인데. 글쎄, 라고 운을 떼며 뭐라고 말씀하셨던 것 같다. 답은 잘 기억이 나질 않고 그 질문이 끝날 때까지 나를 보지 않던 어머니의 옆모습만 생각난다.
내 안엔 끊이지 않는 질문이 있었지만 왜인지 더는 어머니에게는 물어볼 수 없었다. 여전히 해소되지 못한 질문은 나의 존재와 삶을 불안하게 했다. 이대로 사라지는 거라면 나는 무엇일까? 나는 어떻게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 걸까?
이번에는 같은 반 짝꿍에게 물어봐야겠다고 결심했다. 짝꿍은 붉은 갈색 곱슬머리를 가진 눈이 큰 친구였는데 가끔 거짓말을 해서 나를 당황스럽게 만들긴 했지만 귀엽고 상냥한 아이였다. 그날도 풍성한 머리를 양 갈래로 묶고 레이스 원피스를 펄럭거리며 나를 반겼다. 책가방을 책상걸이에 걸고 나는 지체 없이 내 고민을 털어놓았다. 있잖아, 죽음이란 뭘까?
짝꿍은 약간 벙-찐 얼굴을 하고 되물었다. 내 질문을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아 나는 좀 더 자세히 설명했다. 아니, 죽으면 말이야. 우린 우주로 가게 되는 걸까? 우주는 아무것도 안 들린다는데, 생각한다는 건 어떻게 알까? 근데 왜 열심히 사는 걸까? 어차피 죽는데. 그리고, …. 그리고 내가 궁금했던 것들을 다 내뱉기도 전에 짝꿍의 눈물이 먼저 쏟아졌다. 두려움에 찬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이야기 하지 마, 너무 무서워”
이번엔 내가 벙찐 얼굴을 했다. 나는 잠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그녀의 큰 눈에 흐르는 눈물과 까만 눈동자만 보였다. 나는 내 생각만으로 친구를 울렸다. 친구는 나를 낯설고 두렵게 바라보았다. 그것은 나를 향한 게 아닌 ‘죽음’에 대한 공포일 수도 있었으나 그땐 분별력이 부족했다. 나는 그 순간 세상에서 제일 흉포한 괴물이 된 것 같았다. 너무 놀라서 사과의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수업이 끝날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나의 어떤 생각이 잘못된 것인지 알 수가 없어 그냥 종일 ‘응’이라고만 대답했다.
나는 자주 잘못된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내 안의 괴물이 언제 입으로 나올지 알 수 없어 나는 나와 가까운 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