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맛있는 베트남 음식 자주 먹고살아서 좋겠다~”
소리를 듣고 삽니다만 사실은 그렇지 않답니다.
“아내가 해주는 음식 외엔 잘 안 먹습니다”가 트레이드 마크인 남자와 사는 제게
베트남식당 외식이란 스페셜 데이나 손님이 왔을 때를 의미하거든요.
결혼 초기에 “너 진짜 라면도 잘 못 끓여?”하며 호빵만큼 동그래진 남편의 눈과 당황에 찬 멘트를 마주하던 저였건만, 20년이 지나 세계의 요리뿐 아니라 베트남 음식도 웬만하면 집에서 해 먹는 자칭 셰프아내가 되었지요. 해외 살이는 수많은 자급자족의 기회를 감수해야 하기도 하여 강제적으로 요리 실력이 느는 것도 같습니다. 애틀랜타 사는 저의 베프와 자급자족 배틀을 하곤 하는데 된장을 담그겠다며 마당에 콩까지 심어 키운다길래 제가 두 손을 들었다지요. 외식문제로 남편과 두당탕탕 해온 시절도 적지 않았으나 같이 나가봐야 바깥 음식을 잘 못 즐기는 그 덕분에 우리는 집에서 해 먹는 음식에 진심인 가족이 되었습니다. 신혼 때야 그게 그리 불만거리가 되더니 고등학생 때부터 일본을 시작으로 해외살이 38년째 되는 남편이 왜 그리 집밥을 고수하는지 이제는 그를 십분 이해하고도 남고 저 역시 비슷하게 닮아가는 것 같아요. 전라도 손맛 어머니의 음식을 먹고 자란 남편도 한식을 잘하고, 요즘은 “형 파스타가 진짜 최고야!”라는 막내의 찬사를 둘째 아들이 듣고 있어요. 막내의 칭찬을 빼앗겨 살짝 의기소침해졌다가도 사실은 이 남자들의 요리를 즐기느라 가끔은 일부러 마구 피곤한 척도 하고 그러죠. 쉿! 비밀이에요.
아무튼 제가 하던 본인이 하던 집밥을 고수하는 남편도 딱 하루 호의적으로 외식에 따라올 수밖에 없는 날이 있는데 바로 저의 생일날입니다.
뭐도 먹어 본 놈이 안다고 외못알은 베트남 외식의 기회가 오면 도통 떠오르는 식당이 없어 '어딜가지?'고민만 한나절을 합니다. 고민하면 뭐해요. 나올 게 없으니 결국은 지인 찬스를 쓸 수밖에요.
"베트남 가정식 백반 식당인데 분위기 좋으니 한 번 가봐요"
‘생일에 백반? 가정식? 홈쿠킹에서 벗어나는 날에 또 홈쿠킹 스타일이라고??’
하지만 그간 가본 꿘앙응언이라던가 나름 관광객들에게 유명한 식당 말고 새로운 곳을 가보고 싶은 맘에 딱히 다른 도리가 없으니 가볼 밖에요.
소개해준 친구도 그저 베트남 가정식 식당이라고만 했었고,
저도 그리 알고 가서 먹고 왔고,
그래도 느낌 좋았던 곳이었기에 소개해 드려야겠다 싶어 인스타그램에서 사진을 찾다가 저는 깜짝 놀라고 맙니다.
이곳이 하노이 미슐랭 원스타였더라고요.
가기 전에도 몰랐고 다녀와서도 모르다
이 글을 쓰면서 알아버렸습니다. 하하하
알고 보니 미슐랭 원스타
호안끼엠이 가까워지는 반묘 근처 거리에서 어느 골목으로 살짝 턴하여 들어오면 이런 기다란 고동색 나무집이 보입니다.
고목 문과 창문을 달아 앤틱 하게 느껴지는 건물입니다. 나무가구, 축음기와 전화기 등 향수 어린 컬렉션으로 북베트남 특유의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지난 1월에 방문했던 사진이라 식당 앞에는 뗏(구정 연휴)를 축하하는 노란 꽃 화분들이 반겨주고 있었어요.
아내의 생일인지라 집밥돌이 남편도 눈치를 잘 챙기며 청결이나 서비스에 대한 컴플레인 없이 이 날 만큼은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주위 테이블엔 외국인 손님을 접대하는 베트남 분들이 대부분이었어요. 그 외국인들과 똑같은 신기한 눈빛을 발사하며 음식이 나올 때마다 저희도 ‘오~’를 외쳐주었었죠.
손님이 많은지 식당 바로 옆 건물에 별관을 짓고 있었어요. 아들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눈 경비아저씨가 갑자기 기분이 좋아지셨는지 오픈전이지만 우리에게만 특별히 보여주겠다고 3층까지 친히 투어를 시켜 주셨더랍니다. 이후로 몇 달이 지났으니 이제 그곳도 손님이 가득하겠죠. 화창한 어느 날 친구 손잡고 나가 테라스에서 점심을 즐겨보고 싶어 지네요.
7년 전쯤 두어 번 가보고 한동안 안가 본 레스토랑이 한 군데 더 있는데
최근에 라이테 작가님을 모시고 갔던 곳이기도 해요.
이곳 역시 미슐랭 원스타 레스토랑이었다는 것을 몰랐다가 라이테 작가님 모시고 가려고 예약 사이트를 둘러보다 알았답니다. 저를 어쩌면 좋을까요... 누구는 일부러 미슐랭 가이드를 따라서 갈 법 한데 저는 잦지도 않은 베트남 레스토랑 외식 중 그저 얻어걸린 두 식당이 모두 미슐랭 원스타였다니...
가서도 그런 줄도 모르고…
'음~ 비주얼도 맛도 생각했던 것보다 좋은 걸~'하며 행복하게 즐기다 온 저를 생각해 보면 그저 웃음이 납니다. 한편으론 아예 기대가 없는 상태에서 가서 더 기쁨을 얻으며 만족감이 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https://brunch.co.kr/@nanechn/282
오래전 루프탑에서 밤바람부는 호안끼엠을 바라보며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던 그 느낌이 너무 좋았던 곳입니다. 라이테 작가님이 오시던 날도 루프탑 야외석으로 예약을 했다가 바람이 너무 쌀쌀해서 급하게 한 층 아래 실내로 옮겼었더랬답니다. 실내는 처음이었는데 아늑하고 좋았어요. 호수 위로 폭죽도 터진 멋진 밤이였지요.
https://www.caugorestaurant.com/
차 없는 거리가 되는 주말에 호안끼엠 호숫가를 한 바퀴 휘익 산책한 후에 이 식당에 올라와 호수를 내려다보는 그 느낌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요.
노을이 지고 불빛이 하나둘씩 켜지기 시작하는 초저녁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죠.
꺼우 고 레스토랑은 호안끼엠 호수의 랜드마크라 할 수 있는 이 건물의 5,6층에 위치하고 있어요. 5층에 간판이 달려 있긴 하지만 멀찍이서 보지 않는 한 알아보기가 좀 힘들어요. 1층 외부에는 간판이 따로 없어서 처음엔 간판 없는 식당이라는 컨셉으로 나름 이슈를 몰았던 곳이기도 해요.
과연 무슨 자신감이지? 하며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데 성공한 마케팅 기법인 것 같습니다. 밖에서 간판으로 식당을 찾을 수 없어 왠지 ’ 나만 아는 식당‘ 그런 느낌을 갖게 해 주었거든요.
레스토랑에서 직접 찍은 사진들이 모두 인물 위주이거나 먹는데 집중하느라 사진이 별로 없었던 관계로 이번 글에선 대부분 홈피와 인스타 사진을 퍼와서 올려드렸어요.
오늘 소개해 드린 미슐랭 원스타 두 곳 외에도 언젠가 하노이 방문을 하실 분들을 위해 다채로운 베트남 음식을 경험해 보실 수 있도록 식당 몇 곳을 더 알려드릴게요.
꽌안응온 (호안끼엠 근처)
실내도 있지만 마당에 앉아 식사하시는 걸 추천해요. 알록달록 조명과 함께 베트남의 활기가 느껴지는 곳이거든요. 워낙 유명한 곳이라 좀 일찍 가셔야 야외석에 앉아 볼 수 있습니다. 수많은 종류의 베트남 음식이 있어 골고루 맛보기 너무 재미있는데 아직까지 개구리 뒷다리 튀김은 도전해 보지 못했습니다.
37street (서호 롯데)
서호 롯데마트에서 한국에 가져갈 선물을 사고 들르면 딱 좋은 곳입니다. 개인적으로 바잉쎄오는 37street이 꽌앙응온보다 맛있는 것 같아요. 애피타이저부터 디저트까지 메뉴도 다양하고 일단 빠른 속도의 서브가 참 좋습니다.
베트남 음식들을 소개하다 보니 오늘은 베트남 음식을 꼭 먹고야 말겠다는 다짐이 드는걸요. 그래서 저는 어딜 갈 거냐고요? 남편이 아주 가끔이긴 해도 직접 가자고 하는 유일한 베트남 식당, 분짜(Bún chả) 전문점에 갈까해요. 야채가 깨끗하게 나오고 분짜고기와 소스가 맛있어서 맘에 들거든요. CNN추천을 받았던 곳으로도 유명합니다. 관광객 분들에겐 오바마 분짜가 더 유명한데 저는 이곳이 더 맛있고 깨끗하고 좋습니다. 막 튀겨 나오는 게살 튀김도 맛있고 후식으로 순두부 푸딩은 담백하니 먹어볼 만해요. 수정과에 순두부를 넣어 주는 그런 느낌인데 베트남 사람들이 좋아하는 디저트이니 맛이 궁금하잖아요.
꽌넴(분짜 전문점)
외식하려고 할 땐 그리도 생각이 안 나더니 글을 쓰고 있자니 갑자기 많은 식당들이 줄줄이 생각나는 건 왜일까요? 흠흠…
하지만 다음 글을 위해 잠시 아껴두어야 겠어요.
그럼 일단 오늘은 분짜를 먹으러 가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