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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주얼 갤러리로 살짝 턴~

by 마틸다 하나씨

약쟁이도 아닌걸

썸띵 새로움이 주입되지 않으면 금단현상이 옵니다.

힘이 없고 예민해지고 일이 하기 싫어지죠.

그러면 새로운 곳 가보기, 처음 보는 향신료 찾기, 새로 나온 제품 패키지 구경하기 링거를 주기적으로 주입해야 합니다. 하다못해 처음 보는 골목길이라도 걸어봐야 해요. 반복되는 일상 속 이제 그만~여기까지! 가 외쳐치는 상한선에 다다르면 말이죠.


일단 저 멀리 외국인 거주지역인 서호의 수입마트로 "치즈 사러 가자!"가 어떤 핑계 겸 힐링의 외침이 되고, 서호까지 나가기 어려울 땐 중간 지점에 있는 일본마트에 나또라도 사러 갑니다.

서호로 나가는 미션이 자꾸 실패하자 아들에게 실눈을 뜨고 이빨을 드러내 보이며 "나 치즈도 사고 그림도 보러 갈 거야"라고 며칠 째 으르렁 거려봅니다. 왠지 혼자는 잘 안 가게 되기도 하지만 실은 장 본 짐을 들어줄 보디가드가 필요하기도 하고요. 뭐 꼭 그렇다기보단 새로운 식재료 구경에 티키타카가 맞는 둘째 녀석이랑 가면 재미있기도 하니 협박콜을 보내는 것이죠.

제발 마트를 갈 거면 마트만 가고 그림 보러 가는 건 친구랑 가면 안 되겠냐고 투덜거립니다. 그게 그리 쉽지 않으니 널 데려온 거다 하며 곁길 새기 전문인 엄마한테 동조 및 협조를 잘해줄 시 먹고 싶은 음식이 오늘의 식탁 위에 있겠노라 회유딜에 들어가죠.

막상 가면 스윗해 지는 츤데레면서 꼭 엄마를 구박 좀 하고 나서 사탕을 꺼내 주는 녀석입니다.

치즈 냄새가 솔솔 나는 마트가 가까워 오자 신난 톰과 제리의 발걸음이 되지요. 마트가 건너편에

보이지만 일단 패스하고 잠깐 한 시간 곁 길로 쓩~~

어렵사리 성공한 협상이잖아요.


하노이에서 가장 커다란 서쪽 호수, 서호(떠이 호)는 외국인들의 집중 거주지여서 이국적 공기를 마실 수 있는 곳이에요. 그곳 어딘가 그림을 파는 곳이 있단 소식을 듣고 가봐야지 했던 갤러리 먼저 갑니다. 하노이는 생뚱맞은 곳에서 이런 곳들을 발견하는 게 특색인 도시랍니다. 서호에는 골목골목 웨스턴 맛집도 많아요. 찐 하노이 체험은 그래서 오토바이를 타고 골목 사이를 누비고 다녀야 뭘 좀 제대로 봤다고 할 수 있답니다.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하노이 대성당이 시선에 들어옵니다.

루우 투옌(Luu Tuyen) 작가의

"사라지는 기억의 구름(Fading Clouds of Recollection)" 이라는군요.

역사적 기억의 조각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입니다. 흐릿하게 보이는 건축물 형상의 균열감 속에서 배어 나오는 다채로운 색감이 특징입니다.


난파선 밑에서 발견된 유물들을 재료로 사용했다고 해요. 기원과 정체성 없이 버려지고 사라졌던 것들의 가치가 그의 작품 속에서 되살아 나고 있었습니다. 많은 우여곡절과 변화, 표류를 겪어왔던 코로나 시절동안 그는 이 작품들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 시절을 반영하듯 사실적이고 세부적인 방식으로 모든 획까지 재현하여 죽어가던 골동품에 생명을 불어넣었다고 하네요. 파괴하고 조각으로 부순 파편들을 원래 상태로 되돌린 다음 에폭시 수지 층으로 덮어 그 바운더리를 컬러풀하게 마무리했습니다.

오늘은 이 작가의 작품에 딱 꽂혔버렸네요.


이거 이거 볼수록 괜찮네요.

여기까지 왔으니 가격은 물어봐야지요. 하노이 대성당을 그린 가장 큰 작품은 26,000 usd, 나무문 한 칸을 잘라 액자처럼 표현한 작은 작품은 800 usd라는군요. 가장 맘에 든 녀석은 그 중간 언저리 이겠지요. 그러나 이런 고가는 흠.. 시장 보러 나왔다 산다는 건 무리인 거죠. 800 나누기 젤 비싼 치즈값 해봐도 지갑 열리는 계산법은 결코 나올 수가 없는 구조인 거거든요. 이거면 치즈가 몇 개? 단번에 가성비쇼핑 아이쇼핑 예찬론자가 됩니다.

그림 가격을 물으며 브로셔를 한 참 뒤적이니 갑자기 반짝이는 눈빛으로 옆에 찰싹 달라붙던 직원에게서 슬며시 두발 물러서고는 해맑은 쎄이 바이를 전합니다. 달라지는 그녀의 눈빛을 외면하면서요.


아쉬운 맘이 있으니 계단에 올라 다시 한번 만져봐 주고요. 작품에게도 쓰담쓰담 쎄이 바이~

그래도 아쉬우니 다른 그림들도 조금만 더 둘러봅니다.

작품들을 이리 다닥다닥 붙여서 걸어 놓으니 스크랩 북 속으로 들어왔다 나가는 것 같습니다. 핀 조명받으며 자기만의 캡션을 달고 우아하게 자태를 뽐내는 일반 갤러리의 그림 감상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죠.

그래서 제가 이 갤러리는 캐주얼 갤러리라고 이름 붙여 주었습니다.


오호~이전 베트남 문화 예술 브런치 북에서 소개해 드렸던 NGÔ VĂN SẮC (응오 번 싹)의 작품도 만났어요. 잘 아는 친구 만난 듯 어찌나 반갑던지요.

나무 결의 태움으로 베트남 사람들을 그려 낸 특별한 기법의 멋에 반하는 작품입니다.

예전에 이 작가 소개했던 글 링크 걸어둘게요. 그의 더 많은 작품도 구경해 보세요. 그 작가 역시 파괴에서 창조해 낸 우드버닝기법의 작품들이 아주 탁월하답니다.


https://brunch.co.kr/@nanechn/234




마지막 공간에 소품 판매 샵도 같이 있네요. 아기자기한 아이템들이 있는데 그림 대신이라도 데려 오고 싶을 만한 건 사실 없었어요.

복도를 천천히 걷다가 테이프 감듯 뒷걸음도 쳤다가 문을 나섭니다. 곁길 새기 시간이 끝나가니까요.

https://www.workroomfour.com/


캐주얼 갤러리 워크 룸 포는 깊숙한 골목 안에 있지만 그 옆에 옆에 예쁜 카페들도 줄줄이 있고 걷다 보면 소품 샵도 있고 하여 걷는 재미가 있는 곳입니다.

츤데레 아들이 아쉬움 머금은 엄마를 슬쩍 쳐다보더니 나가자마자 달달구리 한 잔 주입시켜 주는 센스를 발휘합니다. 이쁘고 고마운 녀석이죠.


갤러리 옆에 오잉~ 한국 돌담이.. 한국식 카페가 있었어요. 신기한 맘에 잠시 쉬어갔습니다.



조금 걸어 나와보니 저 멀리 종이꽃(호아 저이) 예쁘게 핀 카페도 눈에 들어오고요. 꽝바 거리 공원을 둘레둘레 카페들이 소록 모여 있네요.



건물 테라스의 곡선과 전깃줄의 직선의 대비가 묘하게 괜찮았던 코너 앞에서 짧고 강렬했던 곁길 새기 미션을 마무리하고 마트로 가는 차를 불러 탑니다.


서호가 웨스턴 사람들의 집중 거주지이다 보니 가장 수입 식자재 종류가 많고 맘에 드는 외국인 마트들이 여러 개 있습니다. 그중에서 오늘 전 Annam Gourmet 안남 고메에 도착했습니다.

Annam Gourmet - Syrena - Xuân Diệu Hà Nội


https://g.co/kgs/K8zFuLp



마트 안에 들어서자마자 샐러드 빵 스낵 요리 등 웨스턴식 브런치를 즐길 수 있는 카페테리아도 있어요.

반가운 지인을 마주쳤어요. “앗 여기서 보네요”가 아니라 “오늘 어디 가세요? ”가 첫인사였어요. 뭐야~ 스카프에 썬구리까지 셔츠 칼라에 끼고 평소보다 한껏 멋을 낸 거 같은데? 이 뜻이겠죠. ‘아뇨 원래 이 정도는 장보기 패션일걸요(?)’ 소심히 속엣말만 해봤습니다. 뭔가 들킨 것 같아서요. 우리의 곁길 새기는 비밀인데 말이죠.


베트남 초콜릿들도 구경해 보세요. 알록달록 예쁘기도 하지요.

와인들이 이리 착하게 줄을 서 있으니 한 번씩 쓰다듬어 주며 인사를 해줘야지요.

와인을 배웠지만 제 맘대로 때를 따라 꽂히는 녀석들에게만 사랑을 표현합니다. 요즘은 화이트 쇼비뇽 블랑만 애정이 가서요. 그거 아세요? 가볍고 상큼해서 치즈나 디저트에 어울리는 화이트 쇼비뇽 블랑이 감자탕에 어엄청 잘 어울린다는 사실을요? 한 번 그렇게 드셔보세요. 그 조합 절대 후회하지 않으실 거예요. 그러고 보면 한식에는 가볍고 상큼한 와인이 무척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와인 수업에서 배웠던 지식들은 지우개로 싹싹 지워버리고 와인병 라벨 디자인에 더 솔깃하는 펄렁이 맘에 오늘 쏙 들어온 아이는 용! Dragon 이란 칠레 와인입니다. 가격도 약 2만 원대, 레드보단 화이트만 괜찮았지만요. 안남 고메의 앱을 깔고 회원이 되면 와인을 10% 이상 디스카운트받을 수 있어서 저는 다른 와인샵보단 장 보며 여기에서 와인을 사는 편이에요.



일본 현미쌀도 한 봉지 카트에 넣고요. 종이

패키지가 맘에 딱 들었거든요. 모든 브랜드를

테스트해보고 젤 맛나서 페이버륏이 된 Fara San Martino 파스타면도 아들이 덥석 네 개나 집어넣습니다. 한 두 개만 사야 곧 또 오는데 말이죠 흠…

향신료만 보면 콩닥콩닥.. 향수 조향사가 돼야 했을까요..


치즈도 쵸리죠도 이렇게 큰 통에서 그람 단위로 끊어 먹는 것이 시판 판매용보다 훨씬 깊은 맛이 있으니 이곳에 올 수밖에요. 그라노 빠다노, 브리, 트러플이 혼합되어 독특하고 복합적인 맛이 나는 알 타르투포치즈까지 신나게 쇼핑을 합니다. 저는 치즈 쇼핑으로 베트남 살이 스트레스 한 번씩 날려버린답니다.


이 안남고메 집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살 수는 있어도 팔지는 않는 이런 슈퍼마켓 품은 집에 사는 게 꿈인데요. 우리 집 지하에 이런 마켓

하나 있음 소원이 없겠습니다. 지하에 내려가면 세계의 향신료가 가득하고 날마다 원하는 치즈가 듬뿍 쌓여있고요. 상상만으로도 행복한 힐링이 됩니다.


노랑이 초록이 연두가 오늘따라 더 이뻐 보여서

아보카도 몇 개도 종이백에 담아 봅니다.


두 손 가득 장가방을 들고 뿌듯하게 충전완료!

향긋한 바질과 아르굴라도 있을 저녁 식탁에 또 신이 납니다.

오늘 저녁은 무조건 맛있을 거예요

엄마가 약을 맞았잖아요.

밥 하기 힘도 안 나고 금단 현상 오는 날 또 곁길로 새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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