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 You 레터 vol. 1
믿었던 약속이 깨진 날
민수 씨는 중견 IT 기업에서 7년째 근무 중인 개발자입니다. 입사 초기부터 그는 회사의 "성과를 중시하는 승진 시스템"을 믿으며 누구보다 열심히 달려왔습니다. 해마다 높은 평가를 받았고, 최근에는 중요한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며 팀원들과 팀장으로부터 칭찬을 받았습니다. 성과로 보상받는다는 회사의 철학을 온몸으로 증명해내고 있는 듯했습니다. 그에게 승진은 시간문제처럼 보였고, 이번 연말 인사 발표에서 그 기대가 현실이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연말 발표에서 민수 씨는 자신의 이름이 승진 명단에 없음을 확인했습니다. 그보다 연차가 낮고 성과도 부족했던 동료가 승진한 것을 본 순간, 민수 씨는 말문이 막혔습니다. 그 충격을 안고 팀장님을 찾아가 이유를 물었지만, 돌아온 답변은 "업무 성과 외에도 고려할 것들이 있다"는 모호한 말뿐이었습니다. "다음 기회에는 꼭 고려하겠다"는 약속은 위로가 되기엔 너무 빈약했습니다.
마음속에서 터져 나온 감정들
그날 이후 민수 씨는 혼란스러웠습니다. 배신감이 몰려왔습니다. 자신이 믿었던 회사의 시스템은 허상에 불과한 것 같았습니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했는데, 왜 내 노력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걸까?" 그는 스스로에게 되묻곤 했습니다. 분노도 떠올랐습니다. 자신보다 성과가 낮은 동료가 승진한 것을 떠올리며, "공정하지 못하다"는 생각에 불쑥 화가 치밀었습니다.
그런 감정의 끝에는 무기력감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없다는 느낌, 자신의 성과가 회사에 의해 쉽게 무시될 수 있다는 깨달음이 그를 옥죄었습니다. 이 모든 감정은 그를 점점 무기력하게 만들었습니다. 회의 중에도 그는 의견을 내지 않았고, 업무에서도 수동적으로 변했습니다. 동료들 사이에서는 "민수 씨가 요즘 왜 저러지?"라는 말이 돌았고, 결국 그는 퇴사를 고민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깨져버린 신뢰
민수 씨의 고통은 단순히 승진에 실패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는 회사와의 ‘심리적 계약’이 깨졌다고 느꼈습니다. 심리적 계약이란 구성원과 조직 간의 암묵적인 약속을 말합니다. 민수 씨에게 이 계약은 "성과를 내면 공정하게 보상받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승진 결과는 그가 믿어왔던 체계를 송두리째 부정했습니다. 성과와 보상이 연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민수 씨의 노력을 허무하게 만들었고, 회사와의 신뢰를 무너뜨렸습니다. 팀장의 모호한 답변은 그 실망감을 더 크게 했습니다. 민수 씨에게 회사는 더 이상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는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심리적 계약
심리적 계약(Psychological Contract)은 조직과 구성원 간에 암묵적으로 형성된 의무와 기대의 집합을 의미합니다. 이는 공식적인 근로계약서에 명시되지 않은 부분으로, 상호 간에 기대하는 것에 대한 주관적인 믿음에 기반합니다.
예를 들어, 구성원은 조직이 자신의 노력에 대해 공정한 보상과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기대하며, 조직은 구성원이 성실히 업무를 수행하고 조직에 충성할 것을 기대합니다. 이러한 심리적 계약은 조직과 구성원 간의 신뢰와 몰입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어느 한쪽이 이러한 기대를 충족하지 못한다고 느낄 경우 직무 만족도의 저하나 이직 의도 증가와 같은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민수 씨는 회사와의 심리적 계약에서 "성과에 기반한 승진"이라는 중요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는 그의 업무 동기와 노력을 이끌어내는 주요 요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승진 명단에서 제외되고, 성과가 낮은 동료가 승진한 상황은 민수 씨가 믿었던 심리적 계약이 위반된 것으로 느껴지게 했습니다. 회사가 이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지 않으면서, 민수 씨의 실망과 배신감은 더욱 증폭되었습니다.
심리적 계약이 위반될 경우, 이는 직원의 정서와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민수 씨의 사례에서는 배신감, 분노, 무기력함, 업무 태도 변화, 그리고 이직 의도 증가와 같은 부정적인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팀장의 모호한 답변과 "다음 기회"라는 약속은 민수 씨의 불만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이는 조직이 민수 씨와의 심리적 계약 위반을 충분히 인식하거나 효과적으로 관리하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그 결과, 민수 씨는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끼며 회사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되었습니다.
조직이 심리적 계약을 위반했다고 여겨지는 상황은 다양합니다. 민수 씨의 사례처럼 성과에 기반한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흔히 발생합니다. 또한, 안정적인 고용을 약속한 조직이 갑작스러운 구조조정을 하거나, 직원들의 경력 개발이나 교육 훈련 기회를 제공하지 않거나, 채용 전에 약속했던 근무 조건이나 환경이 실제와 다를 경우에도 심리적 계약이 깨졌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더불어 직원들을 중요한 의사결정에서 배제하거나, 평가와 보상 과정에서 공정성이 결여되는 경우 역시 해당됩니다.
심리적 계약이 깨지는 주요 원인은 다음과 같습니다.
소통 부족: 조직과 구성원이 서로의 기대와 의무를 명확히 소통하지 않을 경우, 오해가 발생하여 심리적 계약이 위반될 수 있습니다.
조직 변화: 구조조정이나 인수합병 등으로 인해 기존의 약속이나 관행이 변경될 때, 구성원은 심리적 계약이 깨졌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성과 관리의 불공정성: 성과 평가나 보상 체계가 공정하지 않을 경우, 구성원은 조직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개인과 조직 간의 인식 차이: 구성원과 조직이 서로의 기대와 의무를 다르게 인식할 경우, 이러한 차이가 심리적 계약의 위반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외부 환경 변화: 경제 상황의 악화나 시장 불확실성으로 인해 조직이 기존 약속을 이행하지 못할 경우, 구성원은 심리적 계약이 깨졌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조직이 민수 씨와 같은 유능한 인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조치가 필요합니다.
심리적 계약 관리: 구성원의 기대를 정확히 파악하고, 이를 충족시키기 위한 노력을 보여야 합니다. 기대를 충족할 수 없는 경우, 명확한 소통과 합리적인 보상이 필요합니다.
공정한 성과 관리: 성과와 승진 기준을 명확히 하고, 불공정하다는 인식을 줄 수 있는 사례를 방지해야 합니다.
구체적인 피드백 제공: 승진 탈락 이유와 향후 개선 방향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여 직원이 이를 납득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다음 선택을 고민하며
퇴사에 대한 고민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습니다. 하지만 민수 씨는 그 전에 자신의 감정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지금 그의 마음속에서 들끓는 배신감과 분노는 결코 차분한 판단을 내리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했습니다. 자신의 기대가 과도했는지, 회사의 기준이 애초에 불투명했는지, 아니면 정치적인 요소가 작용했는지를 냉철히 평가해야 했습니다.
팀장님과 다시 한 번 대화를 시도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단순히 불만을 토로하는 대신, 승진에서 제외된 이유를 구체적으로 물으며 향후 개선할 점을 배우려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신의 성과를 객관적으로 정리하고, 데이터를 통해 회사에 기여한 부분을 명확히 보여주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민수 씨는 다음 단계를 고민할 수 있습니다. 현재 회사에서 성장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면, 이번 경험을 계기로 자신의 시각을 바꾸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회사의 문화와 가치가 자신의 목표와 맞지 않는다고 판단된다면, 그는 다른 곳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중요한 건, 지금의 부정적인 감정 속에서 섣부르게 결론을 내리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의 이야기
민수 씨의 이야기는 특별하지 않습니다. 많은 직장인들이 회사와의 암묵적인 약속이 깨지는 순간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극복하느냐입니다.
만약 당신이 민수 씨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요? 혹은 그의 동료라면 어떤 말을 건네겠습니까?
저라면 이렇게 말해줄 것 같습니다.
"지금 느끼는 배신감과 분노는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이야말로 차분히 숨을 고르고, 자신의 커리어를 다시 설계할 시간이에요. 억울함에 휘둘리기보다는, 이 경험을 통해 더 나은 방향으로 성장할 방법을 찾아보세요. 지금은 고통스럽지만, 이 또한 지나갈 것입니다."
결국 우리의 커리어는 누구도 대신 걸어줄 수 없는 길입니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우리는 성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