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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준 Mar 04. 2024

그래서 결혼하니까 어때?

국제결혼 한 달 반 차에 접어든 한국인 레즈의 소회

지난 1월 말쯤 결혼식을 올리고 벌써 3월이 됐다. 결혼하고 한 달 반이 흐른 지금까지 지인들에게 축하와 함께 이런 질문을 자주 받는다.


"그래서 결혼하니까 어때?"


솔직히 그 질문을 받을 때마다 결혼이 얼마나 좋은지, 결혼하고서 얼마나 더 행복한지 (물론 좋은 짝을 만났다는 전제는 기본으로 깔고 간다) 구구절절 말하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인다. 하지만 또 너무 그러면 사람이 실없어 보이니까 그 마음은 꾹꾹 눌러 담은 채 씩 웃고는 '솔직히… 정말 좋아!' 하고 만다.


그래서 오늘은 그런 질문에 차마 더 말하지 못해 꾹꾹 눌러 담았던 마음을 담아보려 한다. 현실 세계에서는 남사스러워서 못할 말을 넷상의 불특정다수에게는 할 수 있다는 것이 나도 참 아리송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사실 우리 둘은 이미 결혼 전부터 같이 살고 있던 터라 결혼을 한다고 해서 일상이 크게 달라질까 생각했다. 결혼이라는 것이 워낙 인생에서 중대한 일이다 보니 결혼을 앞두고 떨리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미 살림을 다 합쳤고 사랑하는 마음도 늘 그 자리 그대로인데 결혼을 한다고 해서 뭐가 그렇게 달라질까 생각했다. 하지만 이 질문에도 이제 결혼을 했으니 당당히 답할 수 있다.


'아, 이거 해 보니 확실히 다르네요!'


솔직히 말하면 결혼 전과 후로 '일상' 자체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같은 침대에서 일어나 같이 아침을 먹고 같이 청소하고 같이 장을 보고 주말에는 같이 손을 꼭 잡고 나들이를 나간다. 그리고 밤이 되면 잠들기 전 같은 이불 아래에서 서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결혼 전에도 그랬고 결혼 후에도 이건 변함없이 똑같다.


그럼 결혼하고 나서 무엇이 달라졌느냐. 그건 바로 우리의 마음가짐. 더 정확히 풀어쓰면 인생을 향한 마음가짐이 바뀌었다고 할 수 있겠다. 결혼식이 끝난 당일 저녁, 집으로 돌아와 내 동반자가 된 B를 가만히 바라봤다. 연애 시절과는 다른,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감정이 벅차올랐다. 인생이라는 험난한 여정을 함께 할 수 있는 나의 동지가 생겼다는 감사함. 어떤 일이 생겨도 언제나 나의 곁에 있어 줄 내 편이 생겼다는 벅참. 세상이 두쪽 나더라도 내가 책임져야 할 사람이 생겼다는 무게감. 평생 이 사람을 행복하게 해 줄 거라는 다짐. 여러 감정이 교차하면서 내 마음이 그전보다 더 단단해졌다.


내가 책임져야 할 사람이자 어떤 일이 생겨도 내 편이 돼 줄 사람이 생기니 세상 일을 대하는 내 자세도 달라졌다. 사회생활이라는 것이 늘 내 마음대로 풀릴 수는 없는 일이라 세상살이를 하다 보면 이런 저 풍파를 맞기 마련인데, 신기하게도, 아니 어쩌면 고맙게도, 나의 아내 B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받는다. 나의 와이프가 아니었으면 저 밑으로 가라앉아 언제 올라올지 모르는 마음이 그 자리 그대로 굳건히 자리를 지킨다. 그러고는 또 언제 그랬냐는 듯 하루를 살아갈 힘을 얻는다. 내 안의 심지가 나의 아내 덕에 더 굳세어진다. B의 존재 자체로 나는 하루를 이겨낼 수 있는 힘과 하루하루를 살아갈 원동력을 얻는다.


결혼이 주는 경제적 이점도 빠질 수 없다. 한 사람이 모으던 걸 두 사람이서 모으니 경제적 목표치까지 더 빨리 도달할 수 있고 또 서로가 서로의 감독이 돼 주니 쓸데없는 소비도 줄어든다. 솔직히 우리 두 사람 모두 결혼 전부터 씀씀이가 크지 않은 데다 아직 큰돈이 오고 가는 일이 없어 이 부분에서 큰 변화를 느끼는 단계는 아니지만, 일단 한 사람이 아파도 가정 내에 다른 경제원이 있다고 생각하니 심적으로 마음이 한층 더 편안하기도 하다. 물론 이제부터는 하나가 아닌 둘의 미래를 위해 열심히 더 벌어야겠지만, 그것 또한 내 가정의 미래를 일궈 나가는 기쁨이라 생각하면 기꺼이 땀 좀 더 흘리지 싶다.




심리적 안정감, 경제적 안정성, 행복함 등등. 결혼은 전혀 선택지에도 없던 내가 어쩌다 보니 결혼이 주는 이점을 겪고 나니 이것 참 좋구나 싶다가도 한편으로는 심통이 나기도 한다.


'쳇, 이렇게 좋은 결혼이 한국에서는 이성애자만의 전유물이라니. 치사하다, 치사해.'


하지만 이성애자에게만 특권으로 주어진 결혼이라는 제도도 요즘은 경제난과 성별 갈등으로 기피하는 사람이 많은 실정이니 세상이란 참 아이러니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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