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격反擊

by 신화창조
위기의 북극곰.jpg

그들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으리란 것쯤은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다.


2002년 8월, 세계 혈액 학회가 코엑스에서 3박 4일간 열렸다.

전세계 100여 개국이 참가한 대규모 학술대회로서,

혈액 전공 선생님들이 주최자가 되어 나라의 명예를 걸고 치르는 큰 행사였다.


해당 분야 제품의 주 PM으로서 당연히 부스를 가지고 참석했다.

설치, 홍보, 철거까지 외주 업체에 맡기지 않고 우리 손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부스를 책임지는,

힘들고 고된 일이었지만 그만큼 보람도 컸다.


행사 기간 내내 행사장으로 바로 출근했다. 3박 4일 동안 회사의 자리를 비운 것이다.

평소에 열심히 혈액 종양 내과 선생님들을 만나놓은 덕분에 행사는 만족스럽게 치렀다.

게다가 각 회사와 치열한 경쟁을 뚫고 행사 뒤풀이까지 맡아서 큰 칭찬과 호평을 받았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곳에서 터졌다.

행사에 집중하는 틈을 타고 사장과 마케팅 상무가 일을 벌이고 말았다.

행사 동안 회사에 잔류하고 있던 K 과장으로부터 저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동향보고가 있었다.

그러나 우리에게 정당한 명분이 있고 오너가 굳건하니 별일 있을까 했다.

적어도 오너가 행사장에 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오너가 행사장으로 왔다.

고생한다고 격려차 온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 지금 하는 평가 관련 모든 일을 뒤로 미루고 일단 한발 물러서라.”


사정은 단순했다.

사장이 전국 지점장 연대 서명을 받아 별의별 험담을 하면서 오너에게 겁을 준 모양이었다.

비겁하게도 자리를 비운 사이에(악인은 늘 등 뒤를 노린다).


일단 알았다고 말한 후, 오너를 보냈다.

힘이 쭉 빠지고 헛웃음이 나왔지만 그런다고 물러설 내가 아니다.

일을 진행하는 동안 간접적 위협은 수없이 받아왔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싸움을 걸어온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행사장에서 전국 동료 지점장에게 전화를 돌려 사정을 알아보았다.

역시 ‘압박’ 때문이었다.

지난 수년간 권력을 쥐고 흔든 이들이 어떻게 서명을 받았을지 보고 듣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이 갔다.


그러나

일하는 사람을 평가하자는데 싫어할 지점장이 어디 있겠는가.

누구든 반대한다면 뭔가 부정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회사는 그렇게 썩어가고 있었다.

그건 엄연한 현실이었고 오너는 받아들여야 했다.

그가 피땀 흘려 일군 회사가,

앞으로 나아가기는커녕 제 자리를 지키기도 어렵다는 위기감을 느껴야 했다.

그렇지만 나는 전국 지점장들과 통화에서 앞으로 나아갈 큰 동력을 얻었다.


S 차장을 불렀다.

다시 자료를 만들었다.

지난 4년간 오너가 국회에 나가 있는 동안 벌어진 저들의 전횡을 예를 들어가며 숫자로 입증했다.

이만한 일로 흔들리는 오너에게 적잖은 실망을 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HM, L의 경고로 각오하고 대비하고 있었던바, 결코, 당황하지는 않았다.


다시 시작했다. 세상에 자기 재산 몰래 빼가는 걸 좋아할 주인은 없다는 진리만 믿고 말이다.

계속된 야근과 골리앗에 대한 부담으로 스트레스를 받아 칭얼대는 참모들을 독려해 가며 오너를 설득했다.


“재밌잖냐, 재밌잖냐…….” “앵무새세요?”


그리고 오너가 돌아왔다.

오너만 굳건했더라면 하지 않아도 좋을 쓸데없는 일을 많이도 했지만,

우리에게 경각심이라는 교훈도 함께 준 파동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변화의 물결은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하루 중.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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