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우꽃 아침의 영광 꽃 이야기
예전에 용산 땡땡 거리에 놀러 갔다가 펜스에 너무 예쁜 나팔꽃을 보았다. 마침 가을에도 갈 일이 있길래 씨를 받아다가 심어서 몇 년째 집에서 키우면서 여름마다 흐뭇하게 감상하고 있다.
매년 여름이면 다른 꽃들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청순하면서도 단정한 자태로 아침마다 소리 없는 관악대의 고요한 합주를 듣는다.
나팔꽃은 아침에 피었다가 점심때쯤 되면 꽃이 져버린다. 그래서 바쁜 출근길에 느긋하게 꽃을 감상할 여유도 없고 지친 잠을 몰아 자느라 주말엔 오후에 일어나는 사람들에게는 점점 멀어진 꽃이 되어버렸다.
나팔꽃은 나라마다 이름이 다르다. 우리나라는 나팔꽃, 영어로는 아침의 영광 모닝글로리이다. 둘 다 아침에 나팔처럼 생긴 꽃을 피우니 그런 이름이 붙었나 보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아사가오(朝顔)라고 부른다고 한다.
아침에 세수하고 나온 맑은 얼굴을 닮아서일 것이다. 또 중국에서는 견우화(牽牛花)라고 한다. 꽃이 견우직녀가 만나는 칠석쯤에 피고 견우성이 빛나는 새벽에 피었다가 낮에는 저버려 견우의 꽃이라 한 거이다 또 덩쿨손으로 감싸는 것이 꼭 소를 끌고 가는 모양이라 견우화라는 별명이 붙었다고 한다.
간혹 동남아에 가면 모닝글로리를 먹을 수 있는데 이것은 비슷한 식물인 공심채(똥초이)이다. 아마도 같은 과 식물인 모닝글로리라고 설명하는 게 간편해서 그런 영어이름을 붙인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나팔꽃을 보며 덧없는 사랑과 인생을 떠올렸다고 한다. 아침에 잠깐 보고 이별하기 때문에 인생의 덧없음 쉽게 끝나버리는 사랑을 떠올렸던 것 같다.
또 그 덩쿨손으로 휘감아 올라가는 것을 보고 빼앗겨 탑에 갇힌 아내를 그리워하며 매일 탑을 기어오르며 소식을 전했다는 전설도 있으니 나팔꽃의 모습을 보고 다들 사랑의 모습을 떠올리기도 하나보다. 종에 따라 다르지만 꽃잎도 잎사귀도 하트 모양인 종이 많다.
또 재미있는 것은 고구마와 나팔꽃이 근연종으로 매우 가까운 친척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고구마의 뿌리만 보았지 그 꽃이 나팔꽃처럼 수줍고 청순한 아름다움을 가졌다는 것은 잘 모른다.
일본사람들은 이 나팔꽃을 사랑하여 개량에 개량을 거듭하여 낮에도 떠있는 종도 만들고 꽃잎의 모양도 다양하게 변화시켜 매년 여름이면 나팔꽃 축제를 연다고 한다.
내가 용산에서 채집해 온 나팔꽃은 얄타의 별이라는 종이였다. 미국 종자회사에서 가지고 있는 종류라는데 어쩌다 얄타지역의 꽃이 미국에 의해 옮기어져 우리나라 용산에서 자라고 있었는지 그 여행기 또한 궁금하다. 얄타 회담에서 한국의 기쁜 소식을 들은 우리나라 외교관이 때마침 피어있는 얄타거리의 영광의 나팔꽃을 옮겨 심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많이 나간 것일까?
여름밤에는 밤하늘에는 별이 바람에 스치고 아침에는 덩굴마다 얄타의 별이 뜬다. 사람들이 더운 여름 출근길에 청량한 나팔꽃의 자태를 볼 여유가 생기고 주말 아침에도 상쾌한 산책을 즐길 수 있는 날들이 많아지길 기원한다. 장미처럼 화려하지 않고 벚꽃처럼 한번에 피고 한번 지진 않지만 여름내내 줄기차게 피는 나팔꽃 같은 잔잔하고 청순한 사랑을 하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