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가방 꾸리고 며칠씩 집 비우는 여행을 기대하지 않는다. 누구와 함께 가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어디든 떠나고 싶은 마음이 이미 줄었다. 읽는 여행으로 충분하기를 바라 헤세를 꺼내 들었으나 솔직히 지지부진하다. 그가 말하는 여행이란 무엇일까? 줄 친 부분만 다시 읽어도 묵직해 휴식으로 읽기 어렵다. 12권짜리 전집에서 발췌한 번역이라 그런지 다소 산만한 데다 연관성 부재 느낌이다.
그가 24세부터 50세까지 쓴 글들로 여행뿐 아니라 헤세의 인생관과 문학관을 함께 실었다. 예나 지금이나 여행은 보여주기 식의 목적이 있고 남들 다 가니까 나도 가봐야 한다는 압박을 말하는데 백여 년 전 글 같지 않다. 그는 '깊은 체험을 통한 변화의 힘이 있어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주마간산식 구경이 아니라 깊은 성찰을 통해 새로운 눈을 가져야 한다고. 이러니 묵직 하달수밖에.
자기를 찾아 떠나는 가치 있는 여행이 꼭 되어야 할까? 나는 그저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하던 일을 안 하거나 반대로 못하던 일을 할 수 있다면 그 또한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생각한다. 헤세의 여행 방식을 따라 할 필요는 없지만 그의 깊은 (너무 깊어서 헤어 나오지 못함 주의) 사유와 무소유 생활방식은 눈여겨볼 만하다.
여행자에게는 다섯 단계의 등급이 있다고 하는데 간추려 소개해 보면 가장 낮은 등급이 스스로가 관찰의 대상이 되는 자들 다음 등급은 실제로 세상 구경을 하는 자들 세 번째 등급은 관찰한 결과로 무언가 체험하는 자들 두 번째 등급의 여행자는 체험한 것을 체득함으로써 몸에 지니고 다니는 자이며 첫 번째 등급은 최고의 능력자가 체험 체득한 것을 행동이나 일에서 실천해 나가는 자들이라 말한다. 각자의 방식이지 굳이 등급 나눌 것 까지야.
50이 넘으면서 헤세는 체력적인 이유로 여행에 부담을 느낀다. 별로 여행을 하지 않고 조용히 서재에 틀어박혀 은둔 문필가로 살아간다.
어느 저녁 책상 위 책 한 권 둔 채 집과 방의 정적 속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은둔을 즐긴다. 혼자서 떠나는 추억 여행이다. 산길을 오르며 고갯길에서 발길을 멈추고 물을 바라보며 먼 옛날 남국 여행을 떠올리기도 하는 등 그에게 있어 여행은 마음으로부터 오기도 한다. 헤세가 정원 가꾸기에 일가견이 있었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식물도감을 들고 꽃과 풀 이끼와 버섯에 대해 연구하고 채소를 기르며 담장 너머의 일은 생각지 않는다. 헤세는 여행 충동과 고향의 안락을 동시에 즐기는 사람이란 것도 알게 된다. 여름이면 정오의 휴식 뒤 포도주와 빵을 먹으며 나무 덤불과 조팝나무 아래 누워 노래를 부르거나 책을 읽는다. 그에게 여행의 재미는 이 모든 걸 포함한다.
<헤세의 여행> 은 내면을 바라보는 방법이나 세상 사는 방식을 이야기한다. 다른 사람과 우연히 함께 하고 다른 광경을 관찰하는데 노력하며 새로운 상황에서 재발견하는 의미도 있다. 한편씩 각각의 에세이로 본다면 읽을만하지만 나로서 '헤세식의 여행'은 영 요원하다. 그가 그린 그림들 그의 사진을 보며 그리고 문장 속 표현에서 간간이 혹은 간신히 여행의 은유를 찾고 있다.
사심 있는 느낀 점: 괴테의 <이탈리아 여행기>가 훨씬 재미있게 와닿았으며 나는 다른 여행기를 찾아봐야 할 것 같다. 아니면 이 가을 직접 여행을 떠나 보든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