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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정이 Apr 06. 2020

눈물 젖은 김치 김밥을 드셔 보셨나요?

그깟 김밥이 뭐라고...

"김밥 한 줄 1500원"

퇴근길 버스를 기다리는 정류장 근처에 어느 분식점 유리창에 붙어있는 문구가 눈에 밟혔다.

"1500원짜리 김밥이 정말 있는 건가?" 하는 의구심이 머릿속을 채우고 언젠가는 먹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선뜻 발걸음은 떨어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김밥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빨리 버스를 타야 한다는 생각에 몸이 쉽사리 움직이지 않았다.

김밥나라, 김밥천국, 김가네 김밥 등등 이미 꽤 오래전부터 김밥은 너무나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음식이 되었다. 최근에는 김밥도 고급화되어서 비싼 김밥도 등장하기도 하였지만 정말 간단하게 아침식사 대용이나 가볍게 점심을 때우거나 할 때 김밥 한 줄만큼 좋은 음식은 없었다.


어린 시절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왜 그렇게 소풍을 자주 갔었을까? 가는 곳이라고 해봐야 동네 뒷산? 뒷산이라고 하기도 뭐한 지금 생각해보면 그저 구릉과도 같은 곳이었는데 말이다. 문제는 그 소풍을 가야 하는 날이면 꼭 집에서 도시락을 준비해 갔어야 했다. 그리고 각자의 도시락과 김밥 속에서는 그 시절 부의 지표가 묻어 나왔었다. 여러 종류의 반찬들로 가득 찬 김밥이나, 불고기가 잔뜩 들어있는 고기 김밥 등 친구들끼리도 서로의 김밥을 보며 비교를 하던 그런 시절이었다. 그 와중에 내 김밥은 늘 그냥 평범함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마저도 김밥은 소풍날이나 되어야 먹을 수 있는 그런 음식이었기에 누군가 소풍을 간다고 하면 김밥을 먹을 수 있어 좋았고 그렇게 한가득 도시락에 담기고 남은 꽁다리는 늘 그날 아침밥이 되었었다.


그러다 어느 날은 소풍날 아침이었지만 김밥이 없는 날이 있었다. 희미한 기억 속에 과연 이유는 뭐였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는데 그 당시가 유독 김밥을 싸기 힘들 만큼 가난했던 탓이었을까? 아니면 그냥 그날따라 김밥을 싸기 싫으셨던 어머니의 맘 때문이었을까, 여하튼 별로 좋지 않은 이유였음엔 분명했다. 그렇게 햄과 계란 시금치 등 일반적인 김밥이라 불릴 수 있는 재료가 없었던 그날 소풍의 도시락은 밥과 김치와 김으로만 만들어진 쉽게 말해 비표준형 김밥이었고 어린 나이에 그런 김밥을 들고 소풍을 간다는 사실이 참 마음이 좋지 않았었다.


과연 그날 점심에 도시락을 어떻게 먹었는지 하는 기억은 뚜렷하게 남아있지 않다. 분명 친구들 앞에서 그런 도시락을 열기 창피했을 것이고, 그걸 스스로 다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혹은 도시락을 안 싸왔다며 굶었을지도 모르겠다. 주위 친구들에게 몇 개 얻어먹고 끝냈을지도.


지금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깟 김밥이 뭐라고. 혼밥이며 혼술이며, 삼겹살도 혼자서 잘 구워 먹고 다니는 상황인데 김밥에 김치만 들어있든, 단무지만 들어있든 뭐가 문제겠는가 그저 밥 한 끼 먹을 수 있으면 되고, 크게 신경 쓰지도 않을 일이었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김밥은 소풍의 절반이 넘는 지분을 차지하는 거대한 부분이었고 그런 김밥이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 화려한 햄과 고기가 아닌 그저 초라하게만 느껴졌던 김치와 김만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그 나이에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이미 커버린 어른에게 김밥과 같은 것들은 뭐가 있을까?

번듯한 직장,  커다란 집, 최신형 자동차 혹은 화려한 외모, 옷이나 액세서리 등등 어린 시절 김밥처럼 부족하게만 느껴지고 남들과 비교할 수 있는 것들은 아직도 너무나도 많이 존재하고 있다. 과연 얼마만큼의 시간이 흐르고 나면 이런 것들도 어린 시절 그깟 김밥이 뭐라고 하는 수준처럼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질 수 있는 걸까. 남들과 꼭 같아야 할 필요도 없고, 그저 다른 것과 틀린 것을 머릿속으로만이 아닌 마음속으로도 충분히 구분하고 인정해 낼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기를 희망해 본다.


아직도 소풍날 아침이면 김밥을 만드시느라 분주하게 움직이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기억에 남아있다. 따뜻하게 연기가 나던 밥에 참기름과 소금으로 적당히 간을 하고, 시금치를 무치고, 계란 지단을 만들며 재료를 하나씩 하나씩 준비하시던 모습. 아침이라 잠이 덜 깬 상태였지만 고소한 향기에 부엌으로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옮겨지던 그때가 말이다. 지금은 김치만 넣어서 만들어 주신다고 한들 너무도 감사히 맛있게 먹을 수 있을 텐데.


그때의 그 김밥을 이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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