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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정이 Dec 16. 2020

종점입니다. 내리세요.

벌써 종점이라구요?

"끼이익~"

브레이크 소음을 내며 버스가 정류장에 정지하였다.

"종점입니다. 내리세요."

잠깐의 정적이 지난 후 곧 들려온 버스기사님의 외침은 핸드폰을 보며 팔려있던 정신을 붙잡게 만들었다.

"응? 종점이라니? 왜 여기가 종점이라고 하는 거지? 아직 몇 정거장 지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머릿속에 물음표를 한가득 담고서 몸을 일으켜 내리면서도 왜 내려야 하는지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버스에서 내려 정류장 표지판을 한참을 들여다본 후에서야 아까 버스를 타야 했던 곳은 이쪽이 아니라 반대편이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럴 수가... 이런 실수를 하다니 나도 참 신기하네..."


요즘 같이 핸드폰만 열면 각종 지도에 어플로 목적지까지 가는 위치를 자세하게 알려주고, 각종 어플을 통해서 도착하는 시간까지 알 수 있는 상황에서 생각보다 멍청한 경험이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그렇게 썩 나쁘지 않았다. 늘 겪게 되는 일상 속에서 다가온 실수는 매번 지하철만 이용하며 이동하던 때와는 다르게 도시의 풍경을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더욱이 날씨가 너무나 맑은 날이어서 차창밖으로 바라보는 하늘과 도시의 풍경은 오랜만에 여행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새로운 시대를 겪게 되면서 일상의 행동반경은 점점 줄어들게 되었던 터라 그 효과는 더 크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오랜만에 약속으로 외출할 일이 생겼다. 자연스레 늘 약속 장소는 지하철 역이 되었지만 이번에는 핸드폰의 지도를 켜고 목적지에 가는 방법을 지하철이 아닌 버스를 통해 검색을 하였다. 물론 지하철에 비해 불편한 점도 있을 수 있고, 도로가 혼잡하게 된다면 시간이 더 오래 걸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번 실수를 통해 한번 지나쳐왔던 도시를 다시 돌아볼 수 있는 기회였고 사실 산책이 필요했기에 그 시간도 산책의 일부라고 생각하니 그 정도의 불편함은 감수할 수 있게 되었다.


우연히 타야 할 방향과 반대 방향에서 타고 내린 버스, 좋아하던 메뉴가 품절돼서 시켜본 평소에 먹어보지 않던 메뉴, 평소 같으면 당연히 가지 않을 것 같은 길을 통해 집으로 돌아가는 길 등 우연한 기회에 겪게 되는 경험을 통해 얻게 되는 새로운 일상들이 있었다. 이제는 반복이 되고 굳어져서 점점 화석이 되어버릴 것만 같은 일상들을 깨뜨려 주기에 충분했고 또한 신선했다.


어느새 밤이 길어지는 시기가 되었다. 늘 거기 있어왔던 하늘이지만 오늘 하루 집으로 돌아가는 길, 고개를 들어 하늘을 다시 한번 바라보는 건 어떨까. 일찌감치 찾아온 어둠을 뚫고 나온 달을 만나게 될 수도, 혹은 저 멀리 빛나는 별빛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아무 버스나 잡아타고 종점까지 가는 리스크를 감수하기보다는 훨씬 간단하고 쉬울 것이다. 반복되는 일상에 변화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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