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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정이 Dec 11. 2020

잠깐 스치는 글

방황의 끝자락에서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생각들이 많이 있다. 사실 하루 종일 하는 것이 생각이고 눈을 감고 있어도 할 수 있는 게 생각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들은 모두 붙잡을 수도 없고 그저 스쳐가는 생각들 중 하나일 뿐이다. 그냥 모두 주제를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일뿐이고 그런 생각의 세상 속에 살고 있다.


물론 그런 세상 속에서도 인연을 만날 수는 있을 것이다. 굳이 인연을 찾기 위해 노력하거나 하지 않더라도 어느 날 문득 만나게 되는 그런 것처럼 말이다. 빈 모니터 화면을 바라보다가 막연히 이렇게 기다리면 떠오르지 않을까? 어느 순간 번뜩이는 아이디어처럼 혹은 어느 날 밤하늘에 우연히 만날 수 있는 별똥별처럼 그 별이 내 앞에 떨어져 주기를 기대하는 마음을 기대하지 않을 순 없다.


세상에 왜 이렇게 이야기가 많나 하는 생각도 드는데 정작 표현할 수 있는 이야기는 생각보다 없다는 게 더 맞는 말인 것 같다. 그럭저럭 살아가는 삶 속에서 사건이라 할 만한 일들은 매우 한정적이고 그런 와중에 또 이것들을 이야기로 풀어내기란 왜 이렇게 어려운 일인지 모르겠다


혹시? 하며 혹은 글쎄?라는 물음으로 시작하더라도 결국엔 그래, 그럼 그렇지 하는 식으로 마무리되곤 하는 게 대부분의 만남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만남 속에서 무엇을 찾고 무엇을 바라는지는 기대를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한참을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멍해지는 기분이 든다. 아무런 생각을 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들을 쏟아내고 있자니 이게 무슨 얘기인지, 결론도 없고 하고 싶은 이야기도 없어 보인다. 이렇게 아무 이야기나 쓰더라도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게 그저 신기할 뿐이다. 물론 이걸 그냥 노출하면 어딘가 사람 많은 도심의 한가운데 말 그대로 노출되는 느낌을 겪을 테지만 결국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노출하지 않을 것이란 걸 알기 때문에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것이고 또 이렇게 주절주절 거릴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생각을 드러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 생각이라는 걸 머릿속에서 끄집어내서 글로 표현한다는 것 자체가 우선 쉽지 않은 일일 테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 자체도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머릿속에서 가지 치고 있는 수많은 가지들을 잘라내고 지워내고, 핵심에 집중해야 한다. 이야기의 중심을 이끌어 낼 수 있어야 그걸 붙잡고 이끌어 갈 수가 있다. 결국 곁다리 가지만 붙잡고 끌고 가다 보면 따라 나오지 않은 몸통은 뚝 끊겨 버리기 때문에 끝을 내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아름드리나무가 되어가는 것도 시작은 결국 작은 나뭇가지에서 시작하기 마련이니 작은 나뭇가지들이 떠오를 때마다 조금씩 조금씩 작은 화분에 옮겨 놓는 작업을 게을리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런 가지들이 나중에 어떤 이야기 나무가 될지는 나중에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 없이 복잡하고 그 끝을 알 수 없을 것 같던 생각도 이렇게 양껏 쏟아놓고 나면 조금은 가벼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한없이 쏟아질 것 같던 폭포수와 같던 생각의 물줄기가 줄어들고 그 기세 또한 잠잠해지는 것이다. 평소에 드는 생각들을 그저 쏟아내고 있다. 한 가지 주제에 집중하지 못한 글을 여러 갈래로 퍼져나가 깊이를 이룰 수가 없이 금방 증발되어버리고 만다. 이렇게 증발해버리는 글을 붙잡아서 끌어가기에 벅찰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지금의 깊이는 그저 한여름 아스팔트 위에 쏟아져 내리는 빗물과도 같다. 잠깐의 시간이 지나면 언제 비가 왔냐는 생각을 할 만큼 말라서 없어져 버릴 테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 속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할 수도 누군가 그 안으로 빠져들어가 깊이를 느낄 새도 없을 테니까 말이다. 또한 시간이 흘러 무엇이라는 이름을 남길 수도 없을 것이다. 그저 사라지는 무언가가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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