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하LeeHa Apr 18. 2021

약속과 약속 사이의 시간이 넘쳐날 때

정처 없이돌아다니기

2주 전쯤 볼일 때문에 홍대 근처에 갔다가 자그마치 세 군데의 스타벅스에서 돌아 나와야 했다. 가는 곳마다 앉을자리가 없었다. 코로나가 끝나지 않으니 좌석 간 거리 확보로 인해 스타벅스 내의 수용 인원은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자리가 많은 투썸플레이스에서 차를 마신 후 홍대 근처를 배회했다. 시간에 쫓기지 않는 법은 약속과 약속 사이에 여유를 두는 것이다. 첫 번째 약속과 두 번째 약속 사이에 넘쳐나는 시간을 두면, 느긋하게 여기저기 돌아볼 마음이 생긴다.


사실 예상치 못한 두 번째 약속이 생기는 바람에 3-4시간 가까이 빈 일정을 채워야 했다. 예전 같으면 서점을 기어이 찾아내서 책을 읽거나 하다못해 물건 구경이라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러기가 싫었다. 서울 나들이가 오랜만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정처 없이 돌아다니고 싶었다. 그냥 빈둥대고 싶었고 거닐고 싶었다.


너, 벚꽃. 1년 만이야.


올해 3월은 99년 만에 최고로 따뜻한 3월이라고 한다. (그 후 4월 한파라니 날씨를 종잡을 수가 없다) 벚꽃의 개화시기도 그에 맞춰 더 빨라졌다. 홍대 골목골목 어쩌다 눈에 띄는 벚꽃들을 보며 지난해의 벚꽃을 떠올려 보았다.


'제대로 된 벚꽃 구경도 못하고, 2년째 마스크를 쓴 채 돌아다니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홍대 근처 서교동 교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교동 교회 담장에 흐드러지게 핀 벚꽃이 아름다워 한참 동안 고개를 젖히며 바라보았다.

'내년 봄의 벚꽃을 볼 때는 지금과는 사뭇 다르려나? 작년, 올해와 마찬가지려나?'



2주 연속 토요일마다 비가 내리더니 벚꽃의 60% 이상이 떨어졌다고 한다. 떨어진 꽃잎을 보러 사람들이 모일 리는 없다. 코로나 시국인지라 서울 여의도 벚꽃 축제에 3만 5천 명이 신청해서 겨우 1000여 명 남짓만 선정이 되었다는데 그 제한적 관람마저도 비로 인해 서둘러 막을 내리려나 보다.


홍대 근처, 인생 담은 식당


홍대 골목 한 귀퉁이 벚꽃 나무 대각선 위치에 환하게 불 밝힌 '인생 담은 식당'이 눈에 띄었다.


꽃이 피고 지는 순간에도 사람은 매 끼니 밥을 먹고 잠을 자며 울고 웃으며 살아간다. 그렇게 사람도 피고 진다. 피는 꽃 같기도 하고 떨어지는 꽃 같기도 한 인생의 순간순간들이 밥그릇 하나에 가득 담긴다.


밥이 인생이고 밥이 진리이다. 가족의 입에 들어갈 밥을 생각하며 남의 입에 들어갈 밥을 열심히 만드는 식당 주인을 본다.  밥에서 시작해서 밥에서 끝난다. 밥 같은 인생. 열심히 살아가는 인생이다. 우리 모두의 인생과 같다.


인생 담은 식당 풍경


외국 잡지 전문, 매거진 랜드


아늑해 보이는 식당 조명 건너편으로는 시대를 거슬러 살아가는 잡지들이 가판대를 장식하고 있다. 잡지 전문 서점인지 이름도 매거진 랜드이다. 외국 잡지를 정기 구독할 수 있는 곳.

그런데 간판을 보면 볼수록 전파사 같다는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전자랜드가 생각나서일까?


철 지나고 때 지난 해외 잡지들은 돈 만 원에 몇 권씩도 살 수 있나 보다. 오래될수록 인정받는 것도 있지만 오래되었기 때문에 제값조차 못 받는 것도 있다. 


물건의 값을 매기는 것은 수요, 공급 법칙에 따른 철저한 시장 논리에 의해서겠지만 인생의 값은 그렇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로지 개개인이 살아낸 날들과 살아갈 날들로 넉넉하게 평가 내려지면 좋겠다. 낡은 잡지 한 권을 보더라도 처량한 인생보다는 궁금한 인생이 먼저 떠오른다.


매거진 랜드 가판대


투쿨포스쿨, 홍대점


홍대의 밤거리는 여학생들의 천국. 청소년 시절의 내가 학용품 고르듯 그녀들은 화장품을 고른다.

too cool for scool - 투쿨포스쿨, '무리 중의 최고'라는 뜻. 화장품 브랜드의 뜻을 알고 나니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뒷모습이 예뻐서 찰칵. 벚꽃 같은 아름다움을 간직한 청춘이기를.....


마스크를 벗고 거리를 활보하는 날이면 아마도 서울의 거리가 더 좋아질지도 모르겠다. 목적 없이 다녀도 때론 정해진 목표를 향해 달린 것보다 더 많은 게 눈에 들어올 때도 있다.


 삶은 꼭 계획한 대로만 흘러가지는 않으니까.....


서우리, 조아라 캐릭터













 




매거진의 이전글 첫 에세이를 출간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