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메바 라이팅 Jun 13. 2020

내가 양성애자일지도 모른다니.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기억을 읽고 나니

전생에 나는 호색한이었을 거야


아니면, 이성에 대한 사랑을 늘 동경할 수밖에 없었던 고독한 이었거나.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SBS 짝이나, 드라마 짝이나, 혹은 사랑의 작대기 같은 프로그램이 너무 좋았다. 넋을 잃고 키득거리며 심장이 경쾌하게 흥겨워지는  좋은 기분을 즐긴다.


자기는 참 젊다. 젊어.


아내가 아들, 딸 벌 될 출연자들의 옥신각신에 바보가 된 나를 볼 때마다, 기가 차서 뱉는 말이다. 지금이라도 연애해 봐? 진심인지 아닐지 모를 조롱 섞인 장난을 아내가 슬쩍 내밀지만, 내 여자와 이십 년 이상 살다 보니 한 귀로 흘려야 한다는 것쯤은 생각하지 않아도 내 몸이 알아서 대처한다.


40년이 지나도 비키니가 잘 어울린다는 오스트레일리아 할머니에 대한 타블로이드 가쉽을 인스턴트 눈썰미로 챙겨보았다. 이 여자는 무슨 사연이 있어서 평생 이리 힘들게 살까? 측은한 연민이 든다. 전생에 뚱뚱하거나 못났다고 고통받던 삶을 살았나? 싶다.


별로 좋아하지 않는 동양적 제재를 즐기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기억>을 읽은 게 트리거가 되었나 보다. 그래서 나는 이 양반이 쓴 소설을 싫어한다. 쓸데없는 잔상이, 마치 수능 앞둔 수험생에게 뇌피질 전체로 세뇌된 가요의 몹쓸 후렴구 같아서 정말 싫어서이다.


아틀란티스의 게브에서 시작된 112개의 전생이 하나의 일관된 영혼의 동지애 속에서 어드벤처 로드무비를 만들어간다. 주말드라마나 시리즈 드라마에 적합한 소재인데, 읽다 만 느낌에 욕 한 사발을 던져주었다.


장자의 호접몽과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이 잘 버무려진 한국 드라마 같은 이야기를 프랑스 작가 이름으로 출간한 짝퉁의 느낌이다.


내 전생도 <기억> 속 인도인의 전생처럼, 아마 모두가 홀딱 반하는 호색한이거나 남녀노소가 사랑하던 양성애자였나보다, 라고 웃픈 상상을 한다. 에이, 실없다 싶어 고개를 강하게 가로 저어 오싹한 상상을 말끔히 지워버린다.


직전의 전생이 얼마나 유려했는지 몰라도, 현생의 TV에서 넋 잃고 시청하는 짝짓기 프로그램으로 만족하는 삶이 나쁘지 않다. 그리고 이런 나를 쳐다보며 한 마디 던지는 아내가 있어 크게 흡족하다.


<기억> 속 게브의 곁에서 죽음을 맞이한 누트가 르네의 오팔로 나타나듯, 지금의 내 아내는 전생의 나를 구원했거나 나와 죽음도 함께 했던 반려자였을 것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식의 윤회론이라면, 나는 다음 생도 아내와 삶을 또 반복해야 한다.

윤회는 해탈하지 못한 영혼의 고통임에 틀림없다고, 붓다의 가르침에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 순간에 유튜브 30만 뷰를 넘긴 스타일링 코디 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