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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imi Oct 08. 2019

호강에 겨워 요강에 똥 싸는 소리 하고 있네

꿈은 가진 자만 꾸는 것이다

"나도 진취적인 삶을 살고 싶어."

"호강에 겨워 요강에 똥 싸고 있네."



내 친구 A는 부잣집 남자에게 시집가서 돈 걱정 없이 살고 있다. 남편은 대기업의 임원으로, 그녀는 강이 보이는 전망 좋은 집에 살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집에 가는 걸 좋아했다. 베란다에서 바라본 강물은 항상 잔잔하게 넘실거렸고, 내 동공은 그 초록빛 물결을 따라 위아래로 흔들리며 한없이 춤을 추었다. 그녀는 냉동실에서 살얼음이 살짝 낀 맥주를 꺼내왔고, 우리는 따스한 햇빛이 내리쬐는 일요일 오후, 베란다 한쪽 켠에 있는 원목 의자에 반쯤 누워 목구멍을 적시곤 했다. '이런 데서 살면 무슨 기분일까?' 베란다 위에서 하늘거리는 뽀송뽀송한 그녀의 빨래를 보니 그녀가 한없이 부러워졌다.


내 친구는 '잘 나가던' 사람이었다. 24시간이 모자랄 만큼 바쁘게 살았고, 그녀는 우리나라 최고의 사교성을 가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사람들과 잘 어울렸다. 나에게 먼저 다가온 것도 그녀였다.


나는 항상 돈에 허덕였고, 내 친구는 인생의 무료함에서 헤엄치고 있었다.


나와 만날 때마다 그녀는, 과거에 얼마나 화려한 삶을 살았었는지, 어떻게 노력해서 그 자리까지 갔는지 시시콜콜 이야기해 주곤 했는데, 너무나 다른 세상 사람 얘기 같아서 나는 꿈을 꾸듯이 그녀 얘기에 홀려 경청하곤 했었다. 그녀의 얘기를 들을 때마다 로맨스 소설책 한 권을 다 읽은 기분이었다. 그녀의 인생은 드라마틱했다. 그리고 빛났었다.


그랬던 그녀가 주부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다. 아름다운 시절은 가고, 누가 봐도 '아줌마'라는 모습으로 하루하루 남편 저녁을 지으며 살고 있다.


그녀는 항상 나에게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마트 직원도 상관없고, 레스토랑 서빙을 해도 좋고, 그저 나가서 생산적인 활동을 하는 게 꿈이라고 했다. 그때 내가 말했다.


"호강에 겨워 요강에 똥 싸고 있네."


생산적인 일 좋아하시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사람은 '그 날'을 살기 바쁘다. 꿈도 여유가 있어야 꾸는 것이다. 내가 돈에 허덕이고 있을 땐 꿈조차 허접했다. 내가 나의 꿈을 말할 때마다 주위 사람들은 ‘그런 게 꿈인 사람도 있구나.’라고 했다. 그들에겐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 내겐 너무 꿈같은 일이었다. 내가 불평을 할 때마다 친구들은 “너 내 남편 같아.”라고 깔깔거렸다. 나의 꿈은 ’ 아침상 차리는 여자‘였다.


남편과 아이가 깰까, 조심스레 일어나 까치발로 주방으로 가 앞치마를 맨다. 압력밥솥이 치치 지칙할 때마다 혹시나 시끄럽진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갓 지은 보슬보슬한 밥을 준비한다. 아이 도시락 반찬으로 소시지에 깨로 눈을 박으며 '아이가 아까워서 못 먹고 오면 어떡하지?'라는 쓸데없는 상상을 하는 엄마. '후후 불어서 먹어.'라며 입천장이라도 델까 걱정하는 엄마, 그것이 내가 해보고 싶은 일이었다.


내 친구는 SNS에 사진을 자주 올렸다. 부러웠다. 아이의 도시락 반찬 사진엔, 내가 꿈꾸던 소시지가 오징어가 되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노란 병아리가 된 달걀, 활짝 웃고 있는 김밥이 도시락통에 바지런히 누워 있었다. 급식을 먹는 내 아이가 생각났다. 편식이 심한 아들은, '오늘 뭐 먹었냐'라고 물어보면 항상 '밥만' 먹었다고 했다. 우리 아들은 몸무게 최하 10퍼센트에 들만큼 말랐었다. 이 모든 것은 내가 일을 하기 때문이다. 아이가 비쩍 마른 것은 남편이 직장이 없기 때문이다. 아이가 말라 갈수록 나의 죄책감은 비례했다.


그런데, 내 친구는 삶의 질을 논하고 있다. 


그녀의 남편은 그녀가 일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벌어봤자 얼마나 벌겠냐며, 그러면 집안일에 소홀해지지 않겠냐며 반대했었다. 그런 남편을 가진 그녀가 참 부러웠다.


"내 돈은 없어. 남편이 줘야 쓰는 거고, 친정에 일이 있어도 돈 한 푼 보탤 수가 없어."


내 친구는 경제적인 자유에 목말라했다. 그녀는 내가 부럽다고 했다. 내 돈 벌어 내가 쓰는 내가 부럽다고 했다. 그게 뭐가 부러울 일인가 생각했다. 내겐, 경제적 자유가 문제가 아니라 내일 당장 일이 끊어지는 게 더 큰일이었다.




난 열심히 일했다. 퇴근 후 일을 바리바리 집까지 싸와서 새벽까지 일했다. 내가 삶의 질을 논할 수가 있다면, 내가 경제적 자유를 생각할 여유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었다. 아이를 스쿨버스에 태워 보내고 삼삼오오 모여 '모닝커피'를 마시는 상상을 했었다. 많은 사람들이 커피숍에 죽치고 있는 엄마들을 한심하다고 했지만, 나는 그 한심한 일을 해보고 싶었다. 어떤 기분일까? 남편 출근 준비를 해서 보내고, 아이에게 잘 다녀오라며 손 흔든 후 마시는 모닝커피는 어떤 맛일까?


나에게 꿈이란 사치였다. '다 늙은 아줌마가 무슨 꿈이 필요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나는 불안함 없는 삶을 사는 게 소망이었다. 내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삶, 누구에겐 참 쉬운 일이 나에겐 그저 하늘에 떠 있는 먹구름 같은 것이었다. 나는 돈을 모으지 않기로 결심했다. 어떻게 알았는지, 돈이란 놈은 조금만 모아두면 어김없이 내 손에서 나갔다. 허무했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하루살이 같은 기분이었다. 내 주위에는 나를 뜯어먹을 사람만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씩씩해서 그랬던 것일까, 내가 괜찮은 척해서 그러는 것일까, 나도 죽겠다고 해볼까, 더 이상은 못해 먹겠다고 파업해볼까 수많은 밤을 고민했었다.


이런 내게 삶이 무료하다고 하는 내 친구의 고민이 내 귀에 들어올 리가 없다. 내가 위로한답시고 했던 말은,


"넌 돈 걱정 없이 살잖아. 지금 누구 앞에서 행복한 고민이니?"

"그래, 돈 걱정은 없어. 근데 그게 다가 아니야. 너무 우울해."

"나도 심심해서 우울해 봤으면 좋겠다."


그녀의 꿈에, 진취적인 삶에 대한 고민에 나는 찬물을 끼얹었다. 먹고 살 걱정 없으면 행복한 인생인 마냥 그녀의 고민은 내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끝없이 떨어지는 낭떠러지처럼 그녀의 자존감도 무너지고 있었다. 그런 그 친구에게 내가 한 말이라곤 고작 '돈 걱정 없으면 됐지 뭐.'라는 위로 아닌 위로를 해주었다.


그녀는 한숨을 쉬었고 더는 나에게 꿈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Photo by Pietra Schwarzler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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