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잇값은 하고 살자

by 오후 Lapres midi

앞선 글(애어른)에서 ‘애어른’으로 사는 게 결코 바람직한 일만은 아니라고 말한 바 있는데 애어른보다 더 바람직하지 못한 경우가 있다면 바로 나잇값 못하는 어른아닐까? 나이를 먹는다고 다 어른이 되는 것도 아니고, 나이를 먹는다고 다 나잇값하고 사는 것 또한 아니라는 걸 실감하는 요즘이다. 나이가 들면 세상을 다 이해할 수 있으리란 생각은 오만이었다. 자고 나면 변하는 세상에서 산다는 건 나이가 들수록 모르는 게 더 많아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많은 어르신들이 스마트폰을 전화기로만 사용하는 경우도 그분들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나부터도 핸드폰을 바꿀 때마다 업그레이드 되는 기능을 따라가기가 벅찬데 그분들은 오죽하랴. (그런데도 나보다 더 스마트하게 스마트폰을 쓰고 계시는 분들이 있더라. 그저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뿐만 아니라 나이가 들면 욕구보다 책임에 무게를 둬야 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그것 또한 만만치 않다. 어느 시대든 쉬운 적은 없었겠지만 21세기에 어른으로 산다는 무게는 유난히 버거워 보인다. 100세 시대는 어른으로서 사는 시간들도 길어졌으며, 그만큼 감당해야 할 것도 많다는 뜻일 테니까. 솔직히 이 글을 쓰면서 너무 징징대는 게 아닌가 싶어 민망한 마음도 있다. 너무나 잘 살고 계신 분들까지 깎아내리는 건 아닌지, 내면이 다 자라지 못한 성인아이로 사는 나의 한계를 일반화시키는 오류를 범하는 건 아닌지 조심스럽기도 하고. (만약 그런 거라면 ‘철이 덜 들어서 그런가 보다’ 하고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주시길 바라요)


하지만 멀쩡한 어른모습을 하고서도 소위 나잇값 못하는, 철 덜 든 어른이 한 명쯤은 주위에 있지 않은가. 이들을 일컬어 부르는 말들이 꽤 많은 것도 그 이유 아닐까? 캥거루족, 프리터(일본), 컨라오족(중국), 부메랑족(캐나다), 키퍼스(영국) 등등. 이들의 공통점은 신체적으로는 어른이 되었지만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지고 싶어하지 않으며, 여전히 부모로부터 독립하지 못했다는 것인데 피터팬의 또다른 이름들일지도. 미국의 임상심리학자 카일리(Dan Kiley)는 신체적으로는 어른이 되었지만 책임을 지고 싶지 않아 스스로의 의지로 무언가를 결정하지 않으려는 심리 상태를 가리켜 피터팬 증후군이라 설명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동화 속 피터팬은 몸은 다 컸지만 매우 유약한 존재로서 현실 도피적인 캐릭터로 나온다. 그런데 동화 속에서만 있어야 할 캐릭터가 우리 주변에도 꽤 많아지고 있다는 게 심각하다면 심각한 문제들이고,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 집에도 피터팬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아이가 있으니 누군가의 문제이기 이전에 이건 분명 나의 문제이기도 하다.

피터팬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크게 의존하면서도 타인이 자신에게 무언가를 기대하거나 의존하는 상황을 견디지 못한다고 한다. 자신의 행동에 스스로 책임을 지려고도 하지 않으며, 오히려 남을 탓하는 게 특징이라고. 이러한 피터팬 증후군은 무한 경쟁 시대에 돌입하면서 개인에 대한 기대는 커졌지만 그 기대를 충족시킬 내면의 힘은 부족한데서 기인하며, 자녀들이 부모 세대보다 풍부한 물질적 혜택을 받고 자란 환경에 대한 고착 현상 때문이라고 심리학 전문가들은 말한다.


* 고착 - 우리가 성장 과정에서 어느 한 시기에 발달적으로 정지해 있는 상황. 프로이트는 원하는 것을 너무 쉽게 얻어 과잉 충족되거나 그 반대로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해 일어나는 과잉 결핍의 상황이 우리를 더 성장시키지 못하고 한 지점에 계속 머물러 있게 만든다고 보았다.


순수한 동심은 누구나 갖고 싶다. 누구나 오래오래 젊게 살고 싶다. 세상에 늙고 싶은 사람이 과연 있을까?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어쩌면 한 명도 없을지도) 그렇다고 모두가 피터팬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 네버랜드는 동화 속의 이야기다. 모두가 피터팬이 된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될까? 그래서 무슨 얘긴가하면 성인군자까지는 못되더라도 나잇값은 하고 살아야겠다는 얘깁니다. 우선 저부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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