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어른이 꼰대는 아니다
어른이 되고 나서 얼굴이 붉어질 때가 간혹 있다. 그중에 하나가 스스로 꼰대 같다고 느끼거나 꼰대라는 소리를 들을 때이다. 나이를 잊고 살다가도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나 때는 말이야’라는 말이 나오면 움찔한다. 절대 젊어 보이고 싶어서는 아니고 언제부터인가 꼰대라는 말이가 어른들을 향한 부정적 정의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랄까? 분명 모든 어른이 꼰대는 아닐진대 꼰대라는 단어가 향하는 방향은 항상 어른들이니까. 그래서 찾아봤다. 꼰대라는 뜻을.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꼰대를 은어로 '늙은이'를 이르는 말이자, 학생들의 은어로 ‘선생님’을 이르는 말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즉, 권위를 행사하는 어른이나 선생님을 비하하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더 놀라운 것은 꼰대라는 말이 영국 BBC를 통해 해외에도 알려졌다고 하는데 BBC는 2019년 자사의 페이스북에 '오늘의 단어'로 'kkondae(꼰대)'를 소개했다고. 어쩌다가 이런 말이 해외까지 퍼져 나가게 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만큼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영향력이 커졌다는 의미? (영향력이 커졌다는 건 그만큼 책임이 막중하다는 뜻이기도 할 테고요) 암튼 꼰대라는 말은 정의부터가 매우 부정적인데 어원까지 들어가면 더욱 놀랍다.
* 어원
첫 번째는 번데기의 영남 사투리인 '꼰데기'가 어원이라는 주장이다. 이에 따르면 번데기처럼 주름이 자글자글한 늙은이라는 의미에서 ‘꼰데기’라고 부르다 ‘꼰대’가 되었다는 설명
두 번째는 프랑스어로 백작을 콩테(Comte)라고 하는데, 이를 일본식으로 부르면서 '꼰대'가 되었다는 주장. 일제강점기 당시 이완용 등 친일파들은 백작, 자작과 같은 작위를 수여받으면서 스스로를 '콩테'라 불렀는데, 이를 비웃는 사람들이 일본식 발음으로 '꼰대'라 불렀다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발췌
이렇게 사전적 의미에 어원까지 조사한 이유는 어른=꼰대라는 공식에 대한 변명 아닌 변명이랄까? 어른이란 첫째,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 둘째, 나이나 지위나 항렬이 높은 윗사람, 셋째, 결혼을 한 사람을 의미하며 유의어로 대인, 성년자, 성인이 있다.(네이버 국어사전) 어른의 정의 어디에도 꼰대와 같은 뉘앙스를 찾을 수 없다. 꼰대 같은 어른은 있어도 모든 어른이 꼰대는 아닌 것이다. 그런데도 왜 아재, 맘충, 틀딱 등 어른들을 비하하는 말들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는 걸까? 다 자란 사람으로서, 내 일에 책임을 지며 사람으로서, 결혼한 한 사람으로서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어른이라는 이유만으로 꼰대 취급을 받는 건 좀 억울한 면도 있지만 인정해야 할 건 또 인정해야 진짜 어른이 될 수 있을 테니. 솔직히 나도 나이를 먹으면서 나이가 곧 권위가 되는 걸 느끼고 있는 중이다. 나이를 이용해 좀 더 내가 유리한 쪽으로 해결하려는 심보가 튀어나올 때가 있으며, 나이 많은 게 무슨 벼슬이라고 어린아이 앞에서 나이 운운할 때도 있다.
“내가 너보다 몇 년을 더 살았는데.”
“고작 열두 살이 뭘 알아?”
등등.
가진 것(그것이 자존심뿐일지라도)을 지키기 위해서 또는 자기가 유리한 쪽으로 밀어붙이다 보면 꼰대가 되기 십상이다. 어른이 어른스럽지 못하고 어른이 어른답게 행동하지 못하는 어른도 많다는 걸 인정한다. 나도 그들 중 하나일 수 있고. 어른의 이미지가 실추된 것에 대해선 젊은 세대를 탓하기보다 (어른으로서) 깊이 반성하고 숙고해야 할 문제인 것도 분명하다. 그래도 이 말은 하고 싶다. (구차한 변명일 수 있겠지만) 모든 어른이 다 꼰대는 아니라고. 그리고 꼰대 같은 어른들도 처음부터 꼰대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니라고. 꼰대는 인격, 성품에서만 나오는 개인적인 산물만이 아니라 시대가 만들어낸 독성 같은 것이라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말만큼 비겁한 말은 없지만 그들에 대한 이해도 조금은 필요하지 않을까? 어른들이 어른들 자리에서 어른 노릇?을 잘해나가고 꼰대, 아재, 맘충으로 살아가지 않으려면 말이다.
산업화, 정보화 사회에 들어서면서 단순 반복의 경험은 빛을 잃었고,
정보와 기술을 다룰 줄 아는 젊은이들에게 다시 권력이 이동하게 되었다.
'경험'의 가치가 자연스레 빛을 잃기 시작한 것이다.
'어른'이 아니라 '꼰대'가 된 것은 젊은이들의 공경심이나
어른들의 눈치없는 간섭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적, 사회적 발달 속의 자연스런 현상이었던 것이다.
이주희, <조금 알고 적당히 모르는 오십이 되었다> 중
어쩌다 꼰대 대표가 돼 버린 모양새지만 제가 또 꼰대라는 얘기는 절대 아니고요 (가끔은 꼰대가 되기도 합니다만) 지금부터라도 꼰대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대안?을 찾아보자는, 어른다운 어른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게 뭔지 다 같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였습니다. 그리고 어른이 어른스럽지 못하다고 비난하고 폄하하기보다는 이주희 작가님의 글에서 나오듯이 이런 현상들을 사회의 문제로 인식해 볼 필요도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