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널까 말까

- 이상한 고민

by 오후 Lapres midi

아파트 바로 앞에 딸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가 있다. 작은 사거리이긴 하지만 차도를 건너야 해서 늘 불안한 마음으로 학교를 보낸다. 저학년 때는 늘 아이 손을 잡고 등하교를 해서 괜찮았는데 5학년에 된 아이는 이제 친구들과 가는 걸 더 좋아한다. 등교하는 아이에게 늘 길조심 차조심을 외치지만 혼자 보내고 나선 더 불안해졌다. 등하교 알리미가 울리고 아이가 집에 돌아오는 시간까지는 긴장하며 기다린다. 원래 걱정이 좀 많은 인데다 아이와 관한 일엔 유독 예민해지는 것 같다. 아이가 다니는 그 교차로를 엄마인 나도 하루에 몇 번씩 건너곤 하는데 학교 앞이기도 하고 엄연히 신호가 있으니 신호를 지키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땡볕이든.

그런데 지금은 이 교차로에서 신호를 기다릴 때마다 수많은 생각을 한다. 아파트 입구를 가로 지르는 회당보도에 빨간불이 켜져있다.

기다릴까?

그냥 건널까?

아이들 등하교 시간이나 낮 시간 때, 또는 주위에 아이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당연히 기다린다. 딸에겐 무슨 일이 있어도 신호를 지켜야 한다고 가르치는 한 아이의 엄마로서, 그 이전에 시민으로서 반드시 지켜야 할 의무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민하게 때가 있으니 오전 10시에서 12시 사이. 그리고 밤 시간대다. 마땅히 지켜야 할 법 앞에서 고민하는 이유는 신호를 기다리고 있으면 다른 행인들, 같이 서 있어는 행인, 마주 오는 행인들이 신호를 무시하고 건너는 경우가 종종 아니 자주 있기 때문이다. 북한도 무서워한다는 중2들은 물론이고 할머니 할아버지 아줌마 아저씨들은 신호등이 안 보이는 건지 무시하는 건지 고민의 여지 없이 건넌다. '처음엔 왜 저럴까 했다. 애들이 다니는 길에서 저러면 안 되지. 참 개념이 없어. 애들이 뭘 보고 배우라는 건지. 이래서 어른들이 문제야.' 신호를 기다리는 나는 신호를 무시하고 건너는 무명씨들에게 눈빛으로 화살을 날렸다. 그러길 한 달이 가고 1년이 가면서 내 안에서도 조금씩 유혹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애들 없을 땐 건너도 되지 않을까. 신호체계가 비효율적이라 차도 안 지나가는 길(교차로가 학교 주차장 입구와 연결돼서 수업 중엔 주자창 입구가 닫혀 있다. 그럼 사거리가 삼거리가 되는 셈)인데 굳이 기다려야 해? 굳이 남탓을 하자면 기다리고 서 있는 나보다 당당하게 건너는 사람이 더 자연스러워 보였다는 것이다. 서있는 내가 더 뻘쭘한 이 상황. (뭔가요?) 신호는 무시하고 너도 나도 다 건너는 길에서 꿋꿋이 서있는 사람이 바보가 되는 이 느낌. 그래서 이따금 상황을 살피고 아이들이 없을 경우엔 한 번 두 번 건너봤다.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그래도 한 번이 두 번 되고 두 번이 세 번 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차라리 신호체계를 바꿔 달라고 민원신청이라도 해야 할까? 상가에 있는 병원이나 마트라도 다녀올 때마다 마주치는 신호등. 매번 똑같은 고민. 신호를 지키자고 서 있는 사람은 굉장히 민망해지고 그냥 건너는 사람이 오히려 융통성 있어 보이는 이상한 교차로. 거기에 설 때마다 난 늘 고민에 빠진다. 건너야 할까 말까. (이게 시민으로서 할 고민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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