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맛이 궁금해

꼰대에게도 맛이 있다면

by 오후 Lapres midi

남편이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 중 하나는 레드벨벳이다. 그리고 레드벨벳의 노래 중 빨간맛을 가장 좋아한다. 한참 이 노래가 히트를 치고 있을 무렵 매일 같이 뮤비를 보길래 한마디 했다.

“볼 거면 혼자 봐. 아이 없을 때.”

남편은 꼰대 보듯 나를 바라봤다.

“왜?”

“제목부터가 수상하잖아.”

“제목만 그렇지 내용은 그런 게 아냐. 이상하게 생각하는 네가 더 이상하다”

“그럼 빨간맛이 뭔데? 그게 뭐든 애한테 좋은 영향을 줄 것 같진 않아”

“잔소리를 할거면 제대로 알고나 하셔.”

우리의 티격태격을 듣고 있던 딸이 옆에서 한마디 한다.

“엄마 뮤비엔 과일만 나와. 빨간 맛은 수박 맛이고”

“...”

할 말이 없어진 나는 그 부녀지간을 두고 거실로 나왔다. ‘유치원생이 뭘 알겠냐마는 네 말도 맞긴 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사실 난 그 때까지 노래를 제대로 들어본 적도 없고 뮤비를 본 적도 없다. 다만 ‘빨간 맛’이라는 단어에서 연상된 몇 몇의 생각들로 그렇게 말한 것 뿐이다. 그리고 그 몇 몇의 생각들은 어쩌면 나의 선입견에 기인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제작사(작사가일 수도 있고)가 노래 제목을 ‘빨간 맛’으로 선택했을 땐 다소 자극적인 느낌을 주고자 의도했을 수도 있다고 본다. (과거 직업상 무시할 수 없는 촉에 의하면.) 확인해 본 결과 가사에선 빨간 맛에 대한 직접적 언급은 없고 궁금하다고만 했다.

“빨간 맛 궁금해 Honey”

뮤비는 생기 발랄한 걸그룹들의 현란한 댄스와 여름 과일들의 콜라주 같은 영상이었다. 그런데 왜 난 그 후로도 뭔가 쎄한 기분을 털어낼 수 없었을까? 내게 왜 이런 편견들이 생긴 걸까? 나에게 빨간색은 부정적 이미지다. 오감 중 시각적 감각이 가장 발달한 편인데 빨간색이 쓰이는 경우는 (자연의 색을 제외한) 대부분은 금지사항, 금기시되는 것들에 쓰였다. 보통 불이나 피도 빨강이고 공산당 상징도 빨강이고 19금도 빨강으로 표기한다. 그러다 보니 빨강이 가지고 있는 매력 그 자체보다 그 쓰임으로 규정된 인상이 내 뇌에 더 깊이 각인된 듯하다. 그렇게 따지면 살아온 시간들 속에서 학습되고 규정되어 버린 것들이 어찌 빨강 뿐이겠는가.


어른들은 살아온 인생만큼 아는 것도 많겠지만 분명 편견도 많을 것임을 부정할 수가 없다. 자기가 보고 싶은대로 보고 듣고 싶은대로 듣는 게 인간이니까. 게다가 그게 나이가 들수록 심해지는 증상이니까. 한 때 나 자신이 굉장히 객관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언제부터 편견 덩어리가 된 건지, 검증도 안 된 순전한 내 생각에 의지하여 뱉어버린 말들로 그 날 같은 일들이 그동안에도 얼마나 많았을까를 생각하니 괜히 창피해지는 기분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엔 쌓여가는 편견과 선입견, 좁아지는 시야와 생각도 포함되는 것 같다. 그래서 꼰대라는 말을 듣는지도. 그렇다고 어른들이 자진해서, 고의로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니 어른들의 억울함도 좀 알아줬으면 좋겠다. 그 날 이후 경험에 의지한 느낌으로 대응하지 말고 일단 팩트를 먼저 확인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 과정이 귀찮을 수 있겠지만(사실은 세상에서 귀찮은 걸 제일 싫어하는 어른임) 이건 모든 관계에 있어서 신뢰의 문제이기도 하니까 좀 더 꼼꼼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어른이 되기 전에 꼰대부터 될 것이므로. (우리집에선 이미 꼰대임)


그나저나 빨간맛이란 무슨 맛일까? 매일 궁굼하다던 베드벨벳은 그 답을 찾아냈을까? 그리고 어른을 맛에 비유한다면 어떤 맛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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