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땀 눈물

진정한 어른이 되기까지...

by 오후 Lapres midi


우리나라 제도상 성년의 날을 기준으로 한다면 내가 공식 성인이 된 지도 38년이 지났다.(여기서 진짜 나이가 뽀록나는건가?) 성년의 날이란 매년 5월 셋째 월요일로 ‘사회인으로서의 책무를 일깨워 주며 성인으로부터 자부심을 부여하기 위해 지정된 기념일’(한국민족문화대백과)이라고 하는데 1973년부터 시행됐다. 제도상으로 이 날을 기준으로 법적인 어른이 되는 것이다. 우리 본가는 성년의 날까지 챙겨서 기념하는 분위기는 아니어서 내게 그 날의 추억은 없다. 그 땐 대학을 다니는 중이었기에 이미 반은 어른으로 반은 학생으로 살고 있었다. 꽃, 향수, 키스? 드라마나 소설 속의 이야기였을 뿐 아마 과동기들과 자축파티나 하지 않았을까 싶다.



내가 처음으로 어른이 된다는 실감은 주민등록증이 나왔을 때였다. 그 때 잠시 ‘아 나도 법적 어른이구나’ 하고 느꼈던 것 같다. 그런데 평생 써야 하는 주민증록증 사진이 너무 이상하게 나와서(과연 주민증 사진이 마음에 드는 사람이 세상에 있을까 싶다만) 설렘과 감격도 잠시, 나의 주민증은 지갑 깊숙이 자취를 감추었다. (운전면허증이 나온 이후론 실종 상태다) 나 스스로가 ‘이젠 진짜 어른이구나’ 라고 생각했던 건 첫 직장에 취업했을 때가 아닐까 싶다. 서울로 올라와 자취를 하며 나의 모든 숙식을 알아서 해결해야 하고 용돈 대신 월급을 받아 내 생계를 책임지고서야 진정 어른임을 실감했다. 그 전까진 부모님과 함께 살기도 했고 내가 책임져야할 거라곤 연애와 학점 뿐이어서 딱히 어른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어른이 된 것은 24세 때가 아닐까 한다. 비록 초보지만.


내 나이 스물넷. 우리 엄마는 그 나이에 나를 낳았는데 나는 사회 초년생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조직에서 맨 아래였던 내가 감히 어디서 어른 행세를? 나보다 한 살이 많아도 그는 어른이었고 난 그저 어린 막내로 통했기에 애인지 어른인지 구분 안 가다가 실수라도 하게 되면 내 실수에 대한 책임을 나 스스로가 져야 했기에 그 때에야 비로소 어른이란 이런 것이구나 했던 것 같다.

성년의 날이 고려 때부터라는 역사를 가지고 있었도 하루 아침에 어른은 될 수 없다. 어른이 되려면 피,땀,눈물을 좀 흘려줘야한다. 그런 의미에서 성년의 날은 앞으로의 역경?을 격려하고 응원하는 날이 아닐까? 걔중에는 어른이 빨리 되고 싶어서 성년의 날만을 눈빠지게 기다려 온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19금으로부터의 해방감을 위해서라도. 아이 입장에선 어른이란 뭐든지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빨리 어른이 되고 싶을 수는 있지만 그들은 알까? 현실에선 어른 위에 또 어른이 있고, 어른이라도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현타만 있을 뿐이라는 걸.


어른에 관한 글을 쓰면서 왜 이 글을 쓰게 됐을까, 나는 도대체 무슨 얘기가 하고 싶었던 걸까 더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됐다. 어른으로서 하고 싶은 말이 있었던 걸까. 아니면 어른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던 걸까. 양쪽 다일 수도 있지만 솔직히 어른으로서는 할 말이 별로 없다. 그냥 좋은 어른이 되고 싶어서 쓰기 시작한 것 같다. 아이를 키우며 그 책임이 더 커짐을 느끼는데 나부터 우리 아이에게 떳떳하고 자랑스러운 어른인가 싶으면 그건 또 아니고, 나잇값 못하는 어른들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고 상처를 입는지 너무 많이 보고 들어왔기에, 어른의 한 사람으로서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 커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어른이 될수록 자기중심적인 되어가는 생물학적 성향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어른도 어른에 대한 공부가 필요한 것 같다. 뇌를 비롯해서 육신은 퇴화해가는 반면 세상은 알아야 할 것도 더 많아지고 배워야 할 것도 더 많아진다. 오히려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은 것들이 더 많아서 졸업과 함께 사회에 입문하면 한동안은 허둥대야 한다. 어쩌면 우리는 그 때부터 새로운 학교에 입학한 건지도 모른다. 어른 대학 사회과에. 그런데 이 학교는 선생님이 따로 없고 특별한 교재도 없다. 하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또 타인(나이 불문하고)이 다 선생이고, 모든 책이 교재가 된다. 배우고자 하는 의지는 오롯이 학생의 몫이다. 학습 방법은 자율 학습뿐이라 땡땡이를 쳐도 법을 벗어나지 않는 한 어느 누구도 뭐라고 하지는 않는다.(주변인의 잔소리는 좀 있을 수 있겠다) 비록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지만 이율배반적 특징이 또 하나 있다. 시험은 없는데 성적(점수)은 있다는 것. 시험만 없을 뿐 계속해서 배우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 그레이드 차이가 난다.


내일은 늘 새로운 배움을 가지고 우리를 찾아온다. 매일매일 배울 것이 생긴다는 말이다. 매일 무엇이라도 (단 한 가지라도) 배우는 인생을 살아간다면 나는 어제보다 좀 더 나은 내가 되지 않을까? 어른이라는 타이틀을 빼고라도 좀 더 나은 사람, 좀 더 나아진 인생을 살게 되지 않을? 매년 5월 셋째주 월요일은 만 19세만을 위한 날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날이기도 하다. 그러니 만 19세가 아니더라도 한 해 한 해 성장하는 자신을 축하해주고 응원의 꽃 한 송이 안겨 주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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