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멋진, 기막히게 멋진 여행
“왜 거길 가요?”
이런 말을 두 차례 정도 들었다. 행선지를 묻기에 대답했을 뿐인데 여행지에 대한 의문의 질문을 역으로 받게 되는 상황. 거기를 뭐 하러 가냐고. 안 가야 할 장소가 있을까. 한 번도 남의 여행지에 대해 의문을 품었던 적이 없던 나는 내 여행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거기가 전쟁 중인 지역도 아니고 전염병이 돌고 있는 것도 아닌데 왜 거기로 여행을 가는 것이 이상하다고 그들은 생각한 걸까.
문제의 첫 번째 장소는 바로 미얀마다. 현재로선 불안한 정세로 여행이 쉽지 않은 곳이지만 9년 전쯤에는 그렇지 않았다. 그때로선 미얀마 관광이 널리 대중화되지 않은 시점이긴 했다. 여행지에 대한 의문은 낯섦 때문이 아닐까. 본인이 경험하지 못한 곳, 굳이 볼 것 많은 유명한 휴양지를 숱하게 두고 굳이 미얀마라니. 여행지 결정의 시작은 아마 이랬을 것이다. 다섯 형제 가족이 같이 가는 대가족 이동이다 보니 장소를 고르는 것도 만만치 않고 해외로 가족 여행을 자주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니 최선의 결정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서로가 이미 가본 장소를 배제하다 보면 어지간한 관광지는 남아 있지도 않았을 터이다. 형제들 일에 실무적으로 총책을 맡고 있는 막내 오빠는 모두가 처음인 미얀마를 선택했다. 그것도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미얀마 전문 여행사를 끼고.
“여기가 이제 막 뜨는 곳이래.”
기억하건대 나도 그랬던 것 같다. 미얀마라고? 그러고 보니 왜 거기를 가냐고 묻던 사람이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미얀마보다 버마라는 국가명이 더 익숙한 나도 처음에 그랬으니까. 거기에서 뭐를 볼 수 있단 말인가. 결론을 말하자면 많지 않은 여행 경험 중에 미얀마는 손에 꼽는 베스트 장소 중 하나로 내게 남아 있다. 상업적 냄새가 덜 나던 순박한 곳, 조금은 가까이서 현지인들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었던 시간, 금빛 사원을 맨발로 다니던 색다른 경험, 끝이 보이지 않는 광활한 인레호수, 유일한 이동수단이던 보트를 타고 호수를 그리 오래도록 또 언제 다시 달려 볼 수 있을까.
두 번째로 질문받은 곳은 포항이다. 포항은 오래전부터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단 한 가지 이유, 바로 호미곶이다. 새해 일출의 장면이 나올 때마다 나오는 바다 위로 솟은 거대한 손. 그 현장감을 실제로 느끼고 싶었다. 포항 여행은 단지 그거 하나였다. 다른 건 솔직히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다 해서 여름 휴가지로 포항에 간다는 것이 그리 이상할 이유인가. 강원도, 제주도, 동해가 아니라면 우리나라에선 더 갈 곳이 없다는 말인가. 지금은 포스코라 불리는 포항제철 이미지가 강한 탓인지 어떤 사람들에게 포항은 여행지의 느낌이 안 들기도 하나 보다. 그러나 도시 전체를 감싸고 있는 그 거대한 공장마저 내겐 유니크한 지방색으로 다가왔다. 어쩐 일인지 이곳에서의 일출을 보기 위해 사춘기 두 아이도 기꺼이 졸린 눈을 비비고 따라나섰다. 여행의 주목적이었던 호미곶은 기대한 대로 장관이었다. 웅장한 다섯 손가락은 우리를 역시나 실망시키지 않았다. 일출도 제대로였고 누가 일부러 연출하는 것처럼 다섯 손가락 위에 다섯 갈매기도 제때 딱 앉아 주어 인생샷을 건지기도 했다. 아, 드디어 내 눈으로 이걸 직접 보는구나. 정말 내가 있어, 여기에!
뉴스에서 들리는 미얀마의 안타까운 소식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게 하고 포항이라는 말만 들려도 어디어디 하며 유심히 들여다보게 되는 효과, 이것이 바로 여행이 주는 긍정적 후유증이 아닐까. 지난주에 처음으로 로마로 출장을 다녀온 남편은 옆에서 여행 책자를 다시 들여다보고 있다. 한동안은 귀가 따가울 것이 뻔하다. 남편의 혼자만의 로마 사랑이 이제 시작되었으니 얼마나 아는 체를 하겠는가. 나는 누구, 여긴 어디 하며 당분간은 집안의 평화를 위해 영혼 없는 호응을 해 줄 생각이다. 남편이 은퇴하고 서로가 한가해질 때쯤 난 캠핑카를 타고 전국일주도 세계여행도 해보고 싶은 소망이 있다. 어떤 계획도 없이 마음 가는 대로 남편은 운전을 하고 난 그 옆에서 조잘조잘 쓸데없는 얘기를 마구 할지도 모른다. 그러다 “앗, 자기야. 여기 어때? 우리 여기서 잠깐 구경하고 가자.” 까다로운 편이 아닌 남편은 어지간하면 차를 세울 것이고 오래는 아니어도 잠시는 내 취향에 동참해 줄 것이다. 늙는 건 달갑지 않지만 그런 자유로운 시간이 기다려지긴 한다.
그림책 『멋진, 기막히게 멋진 여행』의 남자는 봄부터 겨울까지 정말 멋진 여행을 다녀온다. 자신의 유일한 것일지도 모르는 집을 허물고 여행을 떠난다. 돈이 없어서 시간이 없어서 가지 못한다는 말은 구차한 변명에 지나지 않을까. 비단 여행에 국한되지 않더라도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놓고 용기를 내어본 적이 있었는지 그림책 속 남자가 묻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떠나 결국 그에겐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까. 아니었다. 다시 예전의 집을 찾았고 없었던 모자마저 생겼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하나, 무채색 나무집을 색색깔 칠하는 따스함마저 여행 후에 가져왔다. 비록 밖은 겨울이지만 그는 집안으로 봄을 다시 끌어왔다. 무에서 유를 창출한 정말 기막히게 멋진 여행의 결말이 아닐 수 없다.
하늘 높이 뻗은 그림책 숲 속 나무들이 내게 손짓하는 듯하다. 어때? 멋지고 기막힌 여행 한번 같이 떠나볼래? 하고 말이다. 당신이 물었지. 거길 왜 가냐고? 안 갔으면 말을 말자. 어찌 알겠는가. 가다 보면 그림책 속 남자처럼 인어공주나 빗자루 타고 날아다니는 요정들을 만날지. 모르기 때문에 의문도 생기는 것이다. 가보지 않아야 할 장소는 없다. 그곳이 어디든 사람이 있을 것이고 사람이 있다면 분명 이야기도 있을 터이니, 그 어디든. 여행은.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