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름다운 실수
“처음도 아니시면서 왜 그러세요?”
최근에 이런 얘기를 몇 차례 들었다. 내가 이해력이 떨어지나? 난 일을 못 하는 사람일까? 처음은 아니었지만 난 묻고 싶은 게 여전히 많았다. 질문은 일을 시작하기 전에 확실히 하고 싶어서다. 익숙하다고 해서 대충 해야 할 일은 없다. 더욱이 혼자 하는 일이 아니고 그 상대가 항상 똑같은 것도 아니기에 확인하고 대응할 것이 많아지기 마련이다. 이미 매뉴얼에 있는 것들을 미리 숙지도 안 하고 왜 물어보느냐 짜증이 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읽지 않은 것이 아니다.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게 어찌 무 자르듯 깔끔히 딱 끊어지기만 하겠는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게 있는 게 을의 입장이다. 실수하고 싶지 않으니까. 묻고 싶은 게 많다는 건 그만큼 더 그 일을 제대로 하고 싶다는 태도이다.
묻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말을 거침없이 조리 있게 잘하는 사람이라면 상관없지만 아쉽게도 난 순발력이 떨어지는 사람이다. 그러니 늘 준비가 필요하다. 어떻게 말을 해야 내가 궁금해하는 내용에 대해 상대에게 이해를 잘 시킬지 먼저 시뮬레이션을 거쳐야 한다. 간단하게 메모라도 해놔야 내용이 정리가 되고 안심도 된다. 그렇게 했는데도 종종 전화를 끊고 나서 후회를 한다. 아, 맞다. 이것도 있었는데 말을 못 했네. 휴우, 이건 또 언제 물어보나? 다음 단계를 난 골치 아프게 다시 구상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난 완벽주의자인가.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집안 살림은 대충인 것을 보면 선택적 완벽을 추구하는 게 맞다. 그 선택의 기준은 타인의 존재 유무다. 알고 보니 난 누군가에게 지적당하는 것을 매우 싫어하는 사람이다. 회사 다닐 때를 떠올려 보자.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의 꼬리를 떼고 일이 손에 익었을 무렵부터 난 야근을 잘 하지 않고 정시에 퇴근했다. 야근을 하면서까지 일을 한다는 건 능력이 부족한 것이라 생각했다. 주어진 시간에 어떤 오류도 없이 일을 기어이 마쳤다. 일은 말끔했기에 누구도 토를 달지 않았다. 그렇다 해서 일을 잘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도 없는 것 같다. 내 뒤에 남았던 동료들이 나보다 일을 못하던 사람들이었을까. 덜하지도 더하지도 않던 내 회사 일은 그만큼 뿐이었던 것이다. 난 보통은 혼자가 편한 사람이다. 누구에게 부탁하기보다 그냥 내가 해버리는 게 속이 편하다. 그래서 그럴까. 오래전부터 누구에게도 지시받지 않는 일을 꿈꿨다. 내 맘대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일. 실수해도 나 혼자 이불킥 하면 그만인 것. 개인 쇼핑몰의 시작이 그 처음이었고 그 두 번째가 서점의 일이 된 것이다.
이렇게 난 여전히 실수가 싫은데 아름다운 실수라는 게 있을 수 있을까? 과학계에서 그런 에피소드가 가끔 들리지 않던가. 의도하지 않았는데 대단한 것이 발견된 경우들 말이다. 아름다운 실수라는 건 자꾸 시도하는 사람들에게나 일어나는 실제적인 판타지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에게, 어쩌다 한번 해보는 사람에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자꾸 물어보는 자에게 좀 관대해지자. 잘하고 싶어서, 실수를 피하고 싶어서 그런 것이니. 어찌 알겠는가. 그자가 생각지도 못한 판타지라도 만들어낼지.
그림책 『아름다운 실수』의 작가 코리나 루켄은 『내 안에 나무』라는 그림책으로 처음 알게 된 작가이다. 『내 안에 나무』는 그 자체로 너무나 예쁜 책이다. 책의 어떤 주제의식을 떠나 그저 그림책 한 장 한 장 넘기는 것만으로도 기분을 화사하게 만들어주는 책이어서, 울적하다 하는 사람에게 그림만 보라고 선물로 주기도 했었다. 첫 작품인 『아름다운 실수』로 볼로냐 라가치상까지 수상한 코리나 루켄. 이 그림책은 그림과 서사 그 모두가 완벽한 책이다. 실수도 이렇게나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 나도 조금은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일에 임해도 되지 않을까. 이 한 권의 그림책만으로도 충분하게 작가의 다음 작품들이 기대되며 작가가 이루어낸 이 첫 번째 아름다운 실수에 찬사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