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배움의 연속이네요.
상세불명의 우울에피소드, 질병분류기호 F329. 나의 휴직 사유였다.
휴직이 결정되자 곳곳에서 연락이 왔다. “괜찮아? 무슨 일이야? 뭐 때문에 그래?” 걱정으로 건네는 말들은 결코 가볍게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6년째 아무 탈없이 함께 근무했던 직장 동료의 갑작스러운 휴직에 대한 우려는, 또다른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냥 좀 안 좋아서. 괜찮아.” 웃으며 무마할 기력도 소진되어 결국 오는 연락을 차단해 버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휴직 기간이 끝나면 돌아가서 마주해야 할 직원들이었지만 일일이 답할 수가 없었다. 선의 가득한 걱정과, 안줏거리로 소비해버릴 호기심을 구분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미친 듯이 운동했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패배자가 되는 기분이었다. 남들 다 하는 회사 생활 내가 못나 뒤떨어진 것 같았다. 주어진 휴식을 용납하지 못하고 스스로 마음의 고통을 끌어안았다.
며칠이 흘렀음에도 뒤늦게 사실을 안 동료들이 간간히 연락을 해왔다. 전화를 받지 않았다. 여러 번 걸려온 부재중 전화 끝에는 메시지가 남겨져 있었다. [무슨 일이야?] 답장은 하지 않았다. 내가 대답해주지 않아도 그들은 이미 알고 있을 터였다.
시간이 더 흘렀다.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는데 카톡이 왔다. 1년 전 같은 부서에서 근무했던 팀장님이었다.
이어서 노란 레몬이 한가득 담긴 둥그런 유리병 사진이 붙은 레몬 생강청 기프티콘이 달려왔다. “따뜻하게, 레몬 생강청”이라는 이름처럼 뜨거운 물에 우려낸 달달시큼한 레몬청의 맛이 온기와 함께 입안을 채우는 것 같았다.
무슨 대답을 해야만 좋을까. 팀장님 역시 소식을 들었을 것이다. 무슨 일인지 어떻게 지내는지 언제쯤 돌아오는지 궁금하지 않을 리 없었다. 일언반구 없이 휴직 들어가 버린 부하직원이 괘씸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팀장님은 나를 먼저 헤아려주었다. 먼저 말 꺼내기 어려운 사정이 있었을 것이고, 물어보면 불편해 할 것이라고. 어떤 이유든 나는 너를 응원하니 휴식하는 동안은 맘 편히 쉬라고. 짧은 카톡 메시지 안에서 수많은 말들이 전해졌다.
[인사도 못 드리고 들어와서 죄송해요.] 그 순간 가장 큰 진심을 꾹꾹 눌러 담아 보냈다. 제가 마음이 아프대요. 말씀을 드리고 싶었는데 용기가 없었어요. 차마 뒷말을 잇지 못하고 있는데 팀장님의 답장이 왔다.
[그래~ 다음에 놀러와. 맛있는 칼국수 사줄게^^]
슬픔, 고민, 아픔이 있을 때 누군가가 이야기를 들어주면 마음이 한결 후련해지곤 한다. 하지만 때로는 아무 것도 묻지 않고 그저 옆에 앉아 손을 잡아 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기도 한다. 그 날 팀장님의 짧은 메시지는 나에게 따스한 온기였고 모든 걸 포용해주는 격려와 응원의 손길이었다.
상대의 입장을 먼저 헤아리고 곁에서 묵묵히 마음을 건네주는 것, 개인주의와 냉정함이 우월함이 되는 시대에 잃지 말아야 할 덕목이 온 마음 깊이 스며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