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준비하며 생각해 보았다고 하네요.
“작년에 뭐 입고 다녔지?”
대한민국 직장인 미스터리 중 하나다. 매년 계절이 바뀔 때마다 드는 생각. 도대체 작년의 나는 뭘 입고 다녔기에 이토록 입을 옷이 없을까?
“입을 게 없어.”
옷장은 기가 막힐 노릇일 것이다. 옷장을 한가득 채우고 있는 이 천들 앞에 서서 입을 게 없다고 한탄하고 있으니 말이다.
매년 입을 옷이 없다고 느끼는 이유는, 해마다 유행하는 패션이 바뀌기 때문일 수 있다. 요즘처럼 변화의 속도가 빠를 때는 더욱 그렇다. 작년에 핫 아이템이었던 바지가 올해는 촌스러움의 상징일 수 있으니까. ‘올해 트렌드에 맞는’ 옷이 없다고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따로 있다. 나는 패션의 ‘ㅍ’자도 모르는 사람이라는 점. 겨울엔 따뜻하게 여름엔 시원하게. 봄가을엔 가볍게 걸칠 옷이 필수. 이 정도가 패션 철학(?)인 사람이 올해 새롭게 유행하는 스타일을 캐치해내는 센스를 지녔을 리는 만무하다.
결국 같은 옷을 입는 게 신경 쓰이는 것이다. “쟤는 매일 저것만 입네.”소리는 듣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매일 다른 옷을 입을 수는 없다. 한 번 입고 버릴 만한 재력이 있다면 출근을 하진 않을 테니까. 이런 고민을 꺼내면 “남들은 네가 뭘 입었는지 관심도 없다.”는 팩트가 날아오곤 한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나는 신경 쓰이는데.
이럴 때면 회사에도 교복이 있으면 좋겠다 싶어 진다. 회사니까 사복(社服)이겠지? 은행원이나 승무원 등 몇몇 직종의 유니폼 같은 것. 고등학생인 내가 들으면 미쳤냐고 쌍욕이라도 날릴 말이다. 하지만 나는 진심이다. 바쁜 아침마다 옷장 앞에 서서 고뇌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을 테니까.
사복(社服)이 생긴다면, 변형은 어디까지 허용될까? 가령 재킷 안에 블라우스 대신 티셔츠를 입는다든가. (학생 때 체육복 받쳐 입었듯이) 치마 아래에 바지를 입는다든가. 복장 불량으로 걸리려나? 누가 잡는 거지? 여자 옷은 치마랑 바지 두 버전 다 만들어 주면 좋겠다. 한 번 사면 퇴사 때까지 입을 수 있으니 참 편리할 거야. 살찌면 새로 사야 하는 게 함정이긴 하지만. 근데 퇴근하고 소개팅이라도 있다면 갈아입을 옷을 따로 들고 와야 하니 귀찮긴 하겠다.
시답잖은 생각을 이어가다 보니 사복(社服)이 더욱 절실해진다. 억압과 통제를 위한 일제의 잔재인 교복 문화를 찬양하는 것은 아니다. 나의 사복(社服) 이론(?)은 그렇게 심오한 뜻은 없다. 단지 아침마다 옷을 고르며 지난날 나의 의복 생활에 대해 고찰하는 시간과 월급의 일정 부분을 매달 지불하면서도 결국 비슷비슷한 색깔과 스타일을 채워 넣게 되는 내 옷장의 공간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지극히 단순하고 개인적인 단상이며, 오늘도 회사로 향하면서 조금 더 다양한 사유를 해볼 수 있는 나와의 잡담일 뿐이다.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 그저께 입은 카디건을 집어 들었다. 옷 좀 사야겠어. 자주 가는 쇼핑몰 세일 날짜를 확인하고 출근 준비를 서두른다.
‘자고 싶다’ ‘출근 싫어’ ‘주말이 너무 멀어’ 같은, 직장인에게는 거의 본능적인 생각 속에서 이렇게 마음대로 뻗쳐나가는 머릿속 언어들은 소소한 재미를 주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