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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이소 Jan 19. 2021

나 때문에 울어준 회사 선배

회사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는데 말이죠.



수화기 너머로 선배의 우는 소리가 들렸다. 사무실에서 멀리 떨어져 통화하기 위해 복도를 걷던 중이었다. 핸드폰을 든 채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할 말을 잃은 것은 당황스러움 때문만은 아니었다.

    

“잘 됐다, 정말 잘 됐어......”


혼잣말처럼 내뱉는 말에 눈물이 잔뜩 묻어있었다.








아직 신입사원 티를 못 벗었던 시절, 선배를 처음 만났다. 나이차이 8살, 직급도 사는 곳도 달랐다. 접점이 하나도 없었다. 직장 동료끼리 업무 외에 가장 만만하게 할 수 있는 대화가 남편과 아이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나는 미혼이었다. 결국 우리는 매일 함께 점심을 먹어도 업무 이야기 외에는 할 말이 없었다. 선배는 회사에 있는 시간에만 적당히 대화하면 되는 스쳐가는 직장동료일 뿐이었다.


선배와 친해진 건 아이러니하게도 인사이동으로 부서가 달라진 후였다. 바뀐 업무는 공교롭게도 선배와 협력할 일이 많았다. 모르는 직원이 바글바글한 새 부서에서, 통화로나마 아는 사람에게 모르는 것을 물어보고 의지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위로였는지. 선배와는 그렇게, 떨어지게 되며 친해졌다. 자주 만나지는 못해도 메신저로 수다를 떨고, 퇴근길에 한 번 씩 안부 전화를 했다.



그렇기에 선배는 알고 있었을 터였다. 업무와 책임을 떠넘기고 부진한 결과는 팀원들 탓으로 돌리기로 유명한 팀장이 내 상사로 온 것도, 그 상사와의 잦은 트러블로 인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사실도. “오늘도 팀장님 때문에 야근했어요. 그런데도 일이 너무 많아요.”라고  직접 말하진 않았지만, 나도 모르게 쉬었던 한숨 속에 내포된 ‘힘들다’는 시그널을 몰랐을 리 없다.


무의미한 업무 지시로 하루 12시간 이상 주말 근무를 이틀 내내 하고 퇴근하던 일요일 밤 혼자 차에서 울었던 것도, 하루하루가 지옥 같아 통근버스가 이대로 사고라도 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출근길도, 표현하진 않았지만 짐작은 하고 있었으리라. 그렇기에 인사이동으로 다른 부서에 가게 되었다는 나의 소식에 누구보다 빠르게 연락해서 나대신 울어준 거겠지.


“그동안 너 힘든 거 알면서도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얼마나 미안했는지......”


그 어떤 위로보다도 주효한 말이었다. 생채기에 약을 바르면 아프듯이 울컥 마음이 쓰렸다. 선배는 가족도 친구도 아닌 단순한 회사 후배에게 이토록 마음을 주고 있었다.


  






직장 동료는 직장 동료일 뿐이라 여겼다. 그렇기에 사는 곳, 나이, 가족 구성원은 알지만 정작 오늘 기분이 어떤지는 알려하지 않았다. 하루 중 함께 보내는 시간이 가장 긺에도 커다란 벽을 두고 대했다. 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내 주위에 넓은 선을 그려놓고 넘어오지 않도록 막아섰다.


선배는 어느새 벽 틈을 비집고 선 안에 들어와 있었다. ‘회사 동료’가 아닌 ‘사람’으로서. 그래, 결국 회사도 사람과 사람이 모이는 공간이었다는 걸 모르고 살았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인연을 ‘직장 동료’라는 딱지를 붙이며 기피해 왔을까.




야근을 위한 저녁식사가 배달되면서 전화를 끊었다. 통화를 끊고 나서야 혼자 몰래 고맙다고 중얼거려 보았다. 눈물과 침묵 속에 오간 감정이 이번에도 선배의 마음에 안착되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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