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이소 Jan 10. 2021

하루를 시작하는 직장인의 소박한 소망

조금 더 즐거울 순 없을까요?



[그 말 참 와 닿네요. 사무실에서 가장 바라는 일이죠. 고마워요.]


업무상 간단한 자료를 주고받은 옆 부서 직원의 쪽지였다. 

대화 마무리를 위해 건넨 나의 인사말이 꽤나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스크롤을 올려 내가 던진 말을 다시 보았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무탈한 하루 보내세요.] 






7년 전, 입사 당시 쓰던 인사는 달랐다.


[남은 하루도 즐겁게 보내세요.]

[오늘도 행복하게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만으로는 영 심심해서 덧붙였다. 회사 밖에서도 자주 쓰는 멘트였다.


하지만 아무리 단순한 인사말이라도 좀처럼 와 닿지 않는다. 


출근하는 직장인은 전장을 향하는 군인이다. 하루 종일 업무와 씨름하고 상사에게 불려 다닌다. 전화기가 울릴 때마다 ‘또 무슨 일이야.’하며 한숨을 푹 쉰다. 타 부서 직원의 자료 요청에 혹여나 나에게 업무를 떠넘기려는 수작은 아닌지 날을 곤두세운다.


즐겁거나 행복하기는 바라지도 않는다. 별 탈 없이 지나가기만 하면 다행이다. 사무실이란 그런 곳이다.     

그래서인지 언제부터 내 인사말이 바뀌었다. “오늘도 무탈하게 보내세요.”






무탈(無頉)하다.

1. 병이나 사고가 없다.
2. 까다롭거나 스스럼이 없다.
3. 트집이나 허물 잡힐 데가 없다.

<표준국어대사전>


     

직장생활을 겪다 보니 아무 탈 없이 무사히 지나가는 하루가 최고라는 신념이 생겼다. 출근을 견뎌내야 하는 고난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힘들고 고되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큰일 터지지 않고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지나가는 하루를 보낼 수 있기를.

직장인들의 기대치는 이토록 낮다.



몇 년 전부터 크게 유행했던 ‘소확행’도 비슷한 맥락이다. 오늘도 잘 버텨낸 나에게 소박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선물하는 것. 

그래서 오늘도 편의점에서 사 온 치킨과 맥주로 배를 채우고, 잠들기 직전까지 유튜브를 보며 피로를 잊는다.



문득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긴 머리 질끈 쫌매고 친구들과 노는 게 가장 즐거웠던 시절.


매일 타던 자전거는 질리지도 않았다. 쉬는 시간마다 달려간 매점의 알 모양 초콜릿은 그렇게 달콤할 수 없었다. 방과 후 합창 연습은 손꼽아 기다리던 시간이었다.


무뎌지고 무뎌진다. 자전거는 대학생이 되며 팔아버렸고, 초콜릿의 단 맛은 더 이상 찾지 않게 되었다.

합창단에 들어가려고 입을 있는 대로 크게 벌리며 노래하던 아이는 어디 갔을까. 서글퍼진다.






“분명 재미있는 일 한 가지는 생길 거야.” 



이런 때에 생각나는 웹툰이 있다. '모두에게 완자가'라는 작품이다. 완결 난 지 5년이 되었지만, ‘외출하기 싫은 날’이라는 에피소드가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다. 간단한 내용은 이렇다.


외출 준비를 마치고도 유독 나가기가 싫어 늦장을 부리던 날. 주인공 완자의 동생은 그녀에게 말한다. “그래도 나가봐. 나가면 분명 재미있는 일이 생길 거야. 다녀와서 재미있는 일 있었는지 말해줘.


그 날 그녀는 모르는 사람에게 이름을 잘못 불리고, 구입한 중고 책에 낙서가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저녁식사 때는 고심해서 고른 맥주가 아닌 다른 맥주가 서빙된다.


‘안 그래도 나오기 싫었는데 역시 짜증 나는 일만 생기네.’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는 동생에게 해 줄 재미난 이야기가 생겼다며 기뻐한다. 동생의 한 마디에 일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뀐 것이다. 작가는 ‘동생의 말에 하루를 구원받았다.’고 표현했다.


    




현실은 바꿀 수 없다. 이미 잡힌 약속이 있기에 외출을 해야만 했던 웹툰 주인공 완자처럼, 직장인은 출근을 해야 한다.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일상을 살 수밖에 없다. 내일 당장 사표를 내지 않는 한 말이다.


바꿀 수 있는 딱 한 가지가 있다.  생각의 방향이다. 시선이 달라지면 짜증 나는 일도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둔갑한다. 엘리베이터가 수리중이면 "운동할 기회가 생겼다!"며 기뻐할 수 있고, 핸드폰이 고장나면 "이 참에 바꾸자!"라고 생각할 수 있다.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는 속담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무탈하기만 바라던 하루도 즐거운 일을 발견하는 하루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장미 덤불 속에 가시가 있다고 불평할 수도 있고,
가시덤불 속에 장미가 있다고 기뻐할 수도 있다.

- 오스카 와일드 -





매거진의 이전글 사무실에서 발 올리고 낮잠 자던 막내 직원을 보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