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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이소 Jan 05. 2021

사무실에서 발 올리고 낮잠 자던 막내 직원을 보며

선배로서 어떤 행동을 취했어야 할까요.

 

사무실로 들어서자 피카츄가 그려진 양말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대부분 검은색, 흰색, 회색으로 이루어진 무채색의 사무실 풍경 속에서 쨍한 노란색은 단연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피카츄는 이따금씩 까딱거리며 움직이기도 했다.


발의 주인은 3개월 전 입사한 신입사원, 우리 부서 막내였다. 대학 졸업 후 공백이 거의 없다시피 취업해 사회생활은 처음이었다. 바늘구멍 통과보다도 더 힘들다는 요즘 취업난을 뚫고 한 자리 차지한 모습을 보면, 마치 부모님이라도 된 듯 기특해지는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나 역시 입사 후 처음 받아본 직속 후배였기에 의미가 남달랐다.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자 하는 욕심이 부담이 되진 않을까 조심스러웠다. 실수를 비난하지 않고, 개선점을 명확하게 짚어주던 선배들의 태도 그대로 후배를 대하고자 했다. 서툰 선배의 열정적인 마음에 응답이라도 하듯, 후배는 어설프긴 해도 가르쳐 주는 일을 쏙쏙 받아들이고, 직원들과도 잘 어울렸다. 말 그대로 사랑받는 막내였다.


후배는 보조의자 위에 두 발을 올리고 자기 자리에서 단잠을 자고 있었다. 무릎 위에 담요를 올린 모습은 꽤나 본격적이었다.


우리 회사는 12시가 되면 모든 사무실의 불이 저절로 꺼진다. 점심시간에는 일하지 말고 밥 먹으라는 약간의 강제성을 담은 배려였다. ‘점심시간 좀 보장해 주세요.’ 몇 년 전 내부 포탈 익명 게시판에 올라온 내부 민원이었다. 12시가 넘어도 부장님이나 팀장님이 꿈쩍할 생각을 안 하니 직원들도 눈치 보느라 소중한 점심시간을 날린다는 것이었다. 익명성을 담보로 한 원성이 짙어지자 직원복지팀에서 고심 끝에 내놓은 임시방편이 바로 ‘불 끄기’였다. '지금은 점심시간이니 일 그만 하세요.' 하고 상기시키는 효과를 노린 것이다. 물론 몇몇 바쁜 직원들이 어둠 속에서 환한 모니터 불빛에 눈을 혹사시키며 일한다는 부작용이 생기긴 했지만.


대부분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은 후 커피를 사들고 근처를 산책했다. 하루 종일 회사에 묶인 몸들이 유일하게 햇볕을 쬐는 시간이었다. 대부분의 직원들이 그렇듯 퇴근 다음으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었지만, 오늘따라 피곤했기에 바로 사무실로 올라왔다. 그리고 의자에 올라온 그 두 발과 마주친 것이다. 후배 역시 밥을 빨리 먹은 뒤 후다닥 사무실에 와서 피로함을 씻어내고자 했던 듯하다. 첫 회사생활의 고단 함일 수도 있고, 불타는 일요일을 보낸 뒤 몰려온 월요병 증세였을 수도 있다.


사무실에서 양 발을 올려 자고 있는 모습은, 나를 고뇌에 빠뜨렸다.     


‘이대로 놔둬도 되나?’


부서의 큰어른인 부장님이 지나다니는 길목이 아니라 그나마 다행이었다. 하지만 사무실에 들어서면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일부 직원들이 자리로 가기에 반드시 지나쳐야하는 곳이기도 했다.


‘근데 이걸 지적해도 되는 건가?’


하지만 분명 자기 자리에서, 점심시간에 휴식을 취하고 있을 뿐이다. 책상이나 남의 자리에 발을 올렸다면 문제겠지만, 남는 보조의자를 이용했다. 생각할수록 혼란스러웠다.

 

망설임의 기저에는 자기 방어가 서려있었다. 옳고 그름의 판단이 서지 않는다는 변명 뒤에, 어린 직원에게 모르는 곳에서 ‘꼰대’ 소리를 듣진 않을까 걱정했다. 잠시 커피를 들고 서 있다가, 조용히 내 자리에 앉았다.






퇴근하자마자 친구들에게 물어보았다. '나의 선택이 어때야 했는지에 대하여'였다. 대부분 나와 비슷하게 5~8년 차 된 어중간한 위치의 직장인들이었다.


“충분히 그렇게 쉴 수 있는 걸까? 아니면 말을 해야 했을까?”


여러 반응이 있었지만 ‘말해야 한다.’ 쪽이 우세했다.


“선배로서 충분히 말할 수 있는 부분 같아. 아무래도 잘한 행동은 아니잖아. 그리고 그냥 내버려 두면 그 친구가 다른 곳에서 더 크게 흠 잡힐 수도 있으니까.”


한 친구의 말에 결코 가볍지 않은 책임감이 어깨에 자리 잡았다. 꼰대 소리 듣네 마네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오늘 내가 그저 방관함으로써 후배는 자신의 행동을 개선할 기회를 놓쳤다. 잘못된 일이 아닌 것 같다는 이유를 가장한 핑계. 쓴소리 하는 상황을 회피하고 싶었던 무책임함. 귀가 화끈거렸다.


연차가 쌓일수록 책임감은 몸집을 불려 간다. 업무와 성과뿐만 아니라 사람을 관리하는 영역까지. 그리고 수많은 선택과 갈등의 문제가 더욱더 큰 덩어리로 나타날 것이다. 그럴 때마다 우물쭈물 고민하며 흘려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기준을 잡고, 반을 잘라야 할 땐 명확히 내리쳐야 한다. 좋든 싫든 나는 회사에 다닐 것이고 나의 행동 하나는 주변인들에게도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회사 생활 7년 차가 되었다고 짐짓 다 아는 체를 해왔지만, 속을 까 보면 이처럼 아직도 배워야 할 것이 수두룩하다. “이소 선배는 모르는 게 없네요!”라는 후배의 말에 취해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다른 사람에게 지적을 받았는지, 아니면 스스로 깨달은 건지 후배는 그 이후 발을 올리고 사무실에서 낮잠을 자는 일은 없었다. 단지 더 이상 잠을 자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다. 어찌 되었든 반성과 성찰의 기회를 준 후배에게 감사한다. 자신의 낮잠이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는 사실을 꿈에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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