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이소 Mar 22. 2021

나를 칭찬해 보기로 했다.

정말 기특하거든요.

           

 젖은 머리의 물기만 털어낸 채 주차장으로 향했다. 실금실금 웃음이 나왔다. 지하 2층 곱게 주차돼있는 차에 서둘러 올라탔다. 하얀 일회용 마스크가 씨이익 올라가는 입꼬리는 가려주지만 입 밖으로 새어 나오는 목소리는 막아줄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도 해냈다! 퇴근하고 피곤해서 운동가기 싫을 법도 한데 완전 기특함ㅠㅠ!”


 약간 오버스럽게, 기특해 기특해를 중얼거리며 스스로 뒷머리를 쓰다듬었다. 누가 보기라도 했으면 서로 민망해지는 장면임에 분명하다.



 

 정확한 날짜는 기억나지 않지만, 작년 말쯤부터 ‘나 칭찬하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거창한 듯 은밀히 혼자서 진행하고 있는 이 과업의 시발점은,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 어떤 책에 나온 문장이었다. ‘나에게 가장 관심과 애정이 있고 제일 먼저 반응하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니, 나부터가 나를 아끼고 칭찬해줘야 한다는 의미였다.


 그래, 생각해보면 그렇다. 내 물건을 내가 막 다루면 남들도 하찮게 다루더라. 그러니 나부터가 나를 존중해야 하는구나. 내가 나를 소중히 하지 않는데 남들이 나를 존중해주길 바라는 건 어찌 보면 엄청난 모순일 수 있구나. 늘 부정적인 단어들과 야박한 태도로 툭하면 스스로를 비난했던 나에게는 나름의 굉장한 결심이었다. 


 그런데 시작하자마자 벽에 부딪혔다. 도대체 뭘 칭찬해야 하지? 회사와 집만을 반복하는 회사원이 뭐 그렇게 매일 칭찬할 거리가 있을까. 당연히 없었다. 몇십억 예산을 따온다든가 하는 성과를 이룰 일이 매일같이 일어날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이불을 정리한 나를 칭찬해보았다. 굉장히 소박해서 웃음이 날 지경이었다. 게다가 쑥스러웠다. 그래서 속으로만 생각했다. ‘1초라도 더 자고 싶었을 텐데 기특하네.’ 묘하게도, 그럴싸한 이유까지 붙이자 제법 기분이 좋아졌다. 


 사람이란 작은 칭찬에도 기뻐지는구나. (게다가 스스로에게 하는 칭찬인데도) 정말 단순하다.


 이 작은 깨달음이 기폭제가 되어, 칭찬을 남발(?)하기 시작했다.


 충동구매할 뻔했는데 잘 참았어! 대단해!

 오늘 할 업무들을 미루지 않고 했어 장하다!

 하루에 물을 1리터나 마시다니 기특해!

 (다이어트 중) 점심밥 2/3만 먹고 남겼어 최고야!


 하다 하다 오늘도 무사히 출근한 나를 칭찬한 적도 있다. 당연히 해야 하는 출근인데도 그 한 마디에 기쁨의 기포가 퐁퐁 솟아났다. 




 세 달 정도 흐른 나는 무언가 변해있을까? 사실 잘 모르겠다. 조금은 긍정적이 된 것 같기도 하다. 나 칭찬하기 프로젝트 시작 전 나의 모습을 적은 기록이 있다면 지금과 비교해볼 수도 있었겠지만, 아쉽게도 당시엔 그럴 마음이 없었다.


 다만 요즘 ‘나는 제법 괜찮은 사람’이라는 믿음이 생긴 건 확실하다. 가장 아끼는 사람에게 제일 모질고 야박하게 대하는 동안에는 품지 못했던 스스로에 대한 신뢰였다. 그러니 나는 앞으로도 꾸준히 행복한 말을 들려줄 셈이다. 나 스스로에게. 어차피 좋은 말 하는 데에 돈이 드는 것도 아니니까.


    

 오늘도 자리에 앉아 열심히 글을 쓴 나, 진짜 기특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소개팅남의 칭찬에 기분이 나빴던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