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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론의 꽃 Aug 22. 2024

치매병동의 하루


 요양보호사 교육마치고 나면 대부분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으로 취업한다. 때로는 교육실습 나갔던 기관으로 취업하는 경우도 가끔 있다. 실습기간 중 성실함을 인정받은 A가 요양원의 치매병동에서 근무한지 일주일 만에 중환자실로 자리를 옮긴다며 근무환경을 파악하기 위해서 중환자실로 내려왔다. 그녀는 처음 시작한 일이 생소한 분야지만 치매있는 환자들과 함께 한 일에 보람을 느끼며 열정적으로 일을 시작했다. 어떤 사정으로 고작 일주일 만에 자리를 옮기냐고 물었더니 그녀는 근무 중에 일어난 일에 무척 놀랐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내용은 이랬다. 치매병동 할아버지 방을 맡았는데 가끔씩 할아버지들이 시간과 공간의 흐름의 혼동자각 증세가 심한데다가 요양보호사를 가족으로 착각하고 있다며 지난날의 성격이나 행동이 환자들의 생활공간에서 나타난다. 근무경험이 전무한 요양보호사가 치매병동을 맡기에는 어려움이 있어서 중환자 실로 근무를 바꿨다고 했다.


 강 할아버지는 해만지면 지나간 유행가를 부른다. ‘고향이 그리워도 못 가는 신세’를 구슬픈 목소리로 멋들어지게 한 곡조 뽑아낸다. 친구에게 빌려준 돈 받아오겠다며 몇 번 버스타고 가는지 교통편을 알려달라는 B할아버지 목소리는 유난이 시끄럽다. 날씨의 영향을 받는지 흐릿하거나 비가 오는 날이면 로비의자에 환자들이 주욱 나란히 앉아있다. 왜 나왔냐고 물으면 집에 가기위해서 버스 기다리는 중 이란다. 저녁만 되면 오늘은 수배자를 꼭 잡아야 한다며 출근 가방을 찾는 C할아버지는 전직 경찰관 출신이다. 학교 가야되는데 출근 늦었다고 요양보호사를 향해서 출근 가방 어디다 나뒀냐고 성화를 부리는 선비 같은 전직 교장선생님은 말을 할 때는 아침조회시간에 훈화하듯 말도 그렇게 한다. 할아버지 한분은 퇴직금 받으러 가야 하는데 종로 5가가려면 교통편이 어떻게 되냐고 묻다가 같이 따라 가자고 졸졸 따라 다니기에 지금은 바빠서 같이 갈수 없으니 바쁘지 않은 날 동행하겠다고 약속 하고서야 병실 침대로 돌아갔다. 각자 살아온 환경이나 성격이 다르지만 그들의 말이나 행동은 지난날을 비추는 거울 같다.


 하루의 낮 근무가 끝나고 저녁시간에 피로를 풀기위해 화장실에서 대야에 발을 담근 채 근무일지를 쓰고 있었다. 틈만 나면 집에 가겠다던 윤 할아버지가 빨리 침대로 오라는 소리를 듣고도 요양일지 쓰고 간다며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는데 또 부른다. 병실을 자기 집 으로 착각 할 때가 있는데 가끔씩 일으키는 혼동 상태라 굳이 현실을 깨우쳐 주지 않아도 맑은 정신으로 돌아 올 때가 있다. 요양보호사가 피곤하다고 하면 누워있는 침대에서 자리를 옆으로 비키며 옆에서 누워 자라고 곧잘 말한다.

 “빨리 오라는데 지금 뭐 하고 있어?”

요양일지 쓰던 손을 멈추고 어떤 물체가 있다고 느끼는 순간 눈앞에 벌어진 광경을 보고 일한지 일주일 밖에 안 된 신입 요양보호사는 “악” 하고 까무러질 뻔 했다. 옷을 몽땅 벗고 화장실 문 앞에 서있는 모습을 보고 비명을 지르며 맨발로 간호과로 뛰어갔다. 놀란 간호사가 그 방에 들어가서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어르신 왜 옷 벗고 있어요? 무슨 일이세요?”   노련한 간호사가 환의를 가져와서 입히려 하자 왜 남의 일에 신경 쓰냐며 빨리 가라며 놀라서 도망간 A를 찾고 있었다. 결국 당직의가 나와서 “어르신 샤워 하시려고요?” 하자 “침대에 온다던 사람은 안 오고 웬 사람들이 이렇게 허락도 없이 남의 집에 오는 거야? 내 일에 신경 쓰지 말고 빨리들 가슈”

태연하게 말하는 윤 할아버지는 병실을 자기 집 안방으로 생각한 것 같았다. A는 무서워서 도저히 일 할 수 없다며 차라리 의식 없는 중환자실에서 마음 편히 일하겠다며 말했다.


 치매병동은 세상의 축소판 같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였고 성격 또한 제각기 다르기 때문에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도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실종된 현실과 혼미한 과거 속에서 배회하는 그 들도 맑은 정신이 돌아오면 집에 가겠다고 난리를 친다. 내가 왜 수용소에 갇혔냐며 집으로 보내달라고 한다. 두고 온 가족과 손자손녀의 모습이 눈앞에서 어른거리면 “00아 빨리 와” 하고 부른다.


  언젠가 환자 한명이 사라졌다. 각 병실마다 뒤지고 돌아다녀도 어디로 갔는지 찾을 길이 없었다. 화장실 마다 열어보고 물품 창고까지 확인해도 보이지 않았다. 병원에 직원들이 총동원되어 찾으러 다녔다. 병원 직원이 비상문으로 나간 것을 보고는 뒤따라 몰래 빠져 나가서 병원 뒷산으로 올라가서 산 중턱에 있는 환자를 발견해서 데려오고는 밖으로 연결된 문을 폐쇄하고 말았다. 윤 할아버지도 틈만 나면 집에 가겠다고 요양보호사를 조르다가 그날 난리를 친 것이다. 돌발 사태에 순발력이나 경험이 부족해서 순간의 위기를 넘기지 못하고 놀란 가슴을 안고 요양보호사로 계속 일 해야 할지를 심각하게 고민 하다가 중환자실로 오기로 내린 결론이었다. 나이가 들고 쇠약한 몸이지만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는 남아있는 것 같다. 그렇다고 완력을 쓸 만큼 힘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근무현장에서 요양보호사가 겪은 일이다 보니 남자병동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날렵한 그녀의 열정과 부지런 함에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일에 놀랐는지 그녀는 중환자실에서도 결국 일을 그만 두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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