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싹.”
뺨 때리는 요란한 소리가 떡 치듯이 들린다. 희순할머니는 두 손으로 양 볼을 움켜 싸고 눈물이 그렁그렁한 모습으로 서 있다.
“그래 그 잘나 빠진 화장품 갖다 놓고 또 도둑 타령이야? 심심하면 도둑맞았다고 하는데 그것도 한두 번이지 이제는 도저히 못 참겠어. 남한테 도둑누명 씌우는데 아주 재미가 붙었구먼. 지난번에는 돈 잃어버리고, 이번에는 화장품, 다음번에는 뭘 또 잃어버렸다고 속을 뒤집을 거야?”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모습으로 주체 할 수 없는 감정 때문에 손까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선희할머니의 분노는 하늘을 찌를듯하다.
“내 물건 잃어버려 말한 것뿐인데 당신 보고 내 물건 훔쳐 갔다고 했어? 나 누구보고 물건 훔쳐 갔다고 말 한 적 없어. 다만 물건 없어진 것을 말한 것뿐이지.”
“꼼짝 못 하고 침대에 드러누워 지내는 혜자 친구가 훔쳐 갔겠어. 아니면 요양보호사 선생이 가져갔겠어. 훔쳐 갈 사람은 나밖에 없네. 의심을 해도 유분수지 한방에 살면서 멀쩡한 사람 도둑누명을 씌워놔야 속이 후련한 거야?”
구부정한 허리로 서서 삿대질을 마구 해댄다. 병실 분위기와 다르게 TV에서 흘러나오는 트롯 가수의 노랫소리가 거슬리는지 리모컨을 들고 TV 전원을 꺼버리고 사물함 위에 리모컨을 던지다시피 내려놓는다.
오늘 싸움은 이미 예견된 싸움이나 마찬가지다. 희순할머니는 겉으로는 멀쩡해도 유난히 자기 물건 없어졌단 말을 곧잘 한다. 4인실에서 두 명은 혼자 힘으로 걷지 못하고 두 사람만 보행이 가능한데 희순할머니가 물건이 없어졌다고 할 때마다 선희할머니는 심기가 불편했다.
선희할머니를 데리고 로비로 나온 후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희순할머니는 자신이 왜 맞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면서 아들에게 전화하겠다고 휴대폰을 찾느라 서랍을 뒤지고 있다.
“어르신, 자꾸 뭘 잃어버렸다고 하는데 같은 방에서 생활하면서 누가 물건을 잃어버렸다고 하면 어르신 같으면 기분 좋겠어요? 전화하고 싶으면 내일 하세요, 회사에서 피곤하게 일하는 아들 신경 쓰이게 해서 되겠어요? 아들 마음 편안하게 해 주는 게 아들 도와주는 거잖아요.”
고개를 끄덕이며 조금은 누그러진 듯하다. 며칠 전에도 오전 바쁜 시간에 나를 보더니 하소연을 하기 시작했다. 오만 원을 베갯잇 속에다 뒀는데 감쪽같이 없어졌다는 거다. 그런데 돈 없어졌다는 소리 듣고는 누군가 다시 베갯잇 속 제자리에 갖다 놓았다는 거다. 훔쳐갔다 양심에 찔려서 다시 갖다 놓았다는 말에 내가 웃어넘기자 자기가 거짓말한 것 같으냐며 진실을 말해도 곧이듣지 않고 사람을 믿지 않는다며 푸념을 하곤 했다.
요양원에서는 매월마다 생일이 든 분들을 대상으로 합동 생신 잔치를 연다. 요양원이라는 폐쇄된 공간에서는 좀처럼 외출할 기회가 없으니 꾸미고 화장할 일도 거의 없다. 다만 생일 맞은 어르신들에게는 화려한 한복을 입히고 화장도 예쁘게 해 드린다. 하얗게 분 바르고 눈썹도 갈매기처럼 그려드린다. 빨간 립스틱으로 입술을 곱게 칠해 드리고 머리도 헤어드라이어로 볼륨을 넣어서 곱게 손질한다. 이렇게 꾸며드리면 스스로 행복해하며 자기만족에 도취되어 손거울을 보고 또 보며 행복해한다. 그 모습에서 여자는 늙어도 예뻐지고 싶은 본능만큼은 가슴속에서 꿈틀거린다는 것을 읽게 된다.
과일과 케이크로 장식한 생일상 앞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외부공연단이 와서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준다. 이렇게 1년에 한 번은 왕비처럼 꾸미고 생일축하를 받는다. 그래서인지 어르신들이 가장 기다리는 날은 명절이 아니고 요양원 합동 생신잔치 날이다.
희순할머니도 합동생신잔치에 곱게 차린 한복을 입고 예쁘게 화장한 얼굴이 무척 인상 깊었는지 딸이 면회를 오자 화장품이 필요하다며 사 오라고 했고 그 후 막내딸이 생일선물로 화장품세트와 케이크를 사 왔다. 화장품 한 번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던 지난날이 아쉬웠을 터다. 요양보호사의 손끝에서 이뤄지는 마법 같은 화장술은 예술의 경지를 넘어 본인이 봐도 딴사람 같았다. 그 후 희순할머니는 자랑이라도 하고 싶었는지 딸이 사 온 화장품을 보란 듯이 사물함 옆에 늘어놓고 있었는데 한순간에 로션 하나만 남고 다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러자 할머니는 아까워서 개봉도 못한 화장품들이 눈에 안 보이자 도둑을 맞았다고 소동을 일으킨 것이다. 써보지도 못한 새 화장품이 없어졌다면서 잔소리를 한도 끝도 없이 늘어놓으니 이를 보다 못한 선희할머니의 인내심도 바닥을 드러내고 말았다. 화가 머리끝까지 오르자 마침내 손찌검으로 이어지는 소란이 그날 그렇게 일어난 것이다.
로비 소파에 앉아있는 선희할머니의 얼굴이 굳어있다. 툭하면 물건 잃어버렸다고 도둑 취급한 상대에게 홧김에 뺨을 때렸지만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어르신 속 많이 상하죠? 기억도 못하고 판단을 제대로 못한 희순어르신이 불쌍하잖아요. 어르신이 이해하세요.”
“불쌍하긴 뭐가 불쌍해 툭하면 도둑 취급받는 내가 더 불쌍하지. 그 늙은이 치매 있는 게 아니야. 가끔 치매 있는 척하는 거지.”
전날 근무 야간 당직 요양보호사에게 전화해서 화장품 행방을 물었다. 날마다 사용도 하지 않는 화장품을 사물함 위에다 거추장스럽게 진열해 놓고 있기에 사물함 속 짐보따리 속에 넣어 두었다고 했다. 사물함 깊이 넣어둔 짐 속에서 화장품 상자를 찾아냈다. 스킨, 영양크림, 파운데이션, 파우더, 립스틱까지 줄줄이 나왔다.
“어르신 화장품 찾았어요. 여기 다 있네요. 이제는 됐죠?”
희순할머니의 “후유”하는 안도의 한숨 소리가 들린다. 언제 싸웠냐는 듯 두유를 가져와 동료들에게 하나씩 나눠준다. 선희할머니 앞에도 놓는다.
“이제는 두유 훔쳐 먹었다고 할 건데 나는 안 먹겠으니 도로 가져가요.”
도둑 취급받은 앙금도 남았지만 화장품 앞에서 행복해하는 희순할머니에 대한 부러움도 있는 듯하다.
밤 취침 시간이었다. 희순할머니 방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녀는 희미한 전등아래서 얼굴에 로션을 바르고 눈썹을 그리고 빨간 립스틱까지 발랐다. 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마치 만화 속 그림에 나오는 주인공 모습으로 화장을 끝내고 혼자 행복해하고 있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아름다워지고자 하는 것은 여자의 본능이다. 여자의 아름다워지고 싶은 욕망은 무죄라고 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