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오해

by 샤론의 꽃


남자 요양보호사의 눈길이 싸늘하다. 할머니를 옮길 때 도와주러 오던 남자요양보호사가 할머니를 휠체어에 옮기고 난 다음에 할머니를 냉정한 눈길로 매섭게 바라보곤 했다.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고 매번 그런 모습을 보이는 그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옮겨 주는 게 불편하면 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더니 아니라고 하면서 힘들게 혼자 옮기지 말고 부르면 올 거니까 신경 쓰지 말란다. 할머니한테 가서 남자 요양보호사한테 섭섭하게 한 것 있냐고 물었더니 아니라고 고개를 흔들었다.

경님 할머니는 항상 몸에 현금을 지니고 있었다. 필요하면 간식도 사달라고 해서 사고, 가끔 흡연실에 가서 담배도 피우곤 했다. 그녀는 결혼을 하지 않아서 슬하에 자녀가 없다. 가족이라야 친정 조카가 보호자 자격으로 가끔 들르는 정도다. 담배를 피우는 모습은 어쩌면 그녀의 삶을 짐작하게 했다. 가족이라야 가끔 들르는 친정 조카 하나. 그녀는 늘 말하곤 했다."나는 내 인생 내가 책임졌어. 지금도 그래."


요양원이라는 공간은 많은 절제가 필요한 곳이다. 말도 자유도, 사생활도, 하지만 경님 할머니는 그 속에서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간다. 주머니 속 현금 몇 장, 간식 하나, 담배 한 개비. 그녀에겐 그것들이 삶의

마지막 자존심이자, 세상과의 연결고리였다.

얼굴은 나이에 비해 주름은 없지만 어딘지 모르게 부자연스럽기만 했다. 동료 할머니들의 말에 의하면 주름살 제거수술을 여러 차례 받았고 보톡스 주사를 많이 맞아서 부작용 때문에 얼굴이 사납게 변해 버렸다고 한다. 요양보호사 K가 시큰둥한 얼굴이다. 경님 할머니 때문에 속상하다며 푸념을 늘어놓는다. 틈만 나면 돈 잃어버렸다고 해도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는데 졸지에 자기를 돈 가져간 범인으로 지목한 할머니를 이해할 수 없다며 투덜거렸다. 언제부터 인지 할머니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내 이십만 원 훔쳐간 년은 차 끌고 가다가 열두 바퀴 굴러서 뒈질 거다.”

“차 없는 사람은요?”

“버스 타고 가다가 부딪쳐서 뒈질 거다”

경님 할머니는 젊은 날 거칠게 살아온 흔적이 그녀의 말투에, 표정에, 삶의 방식에 배어 있었기 때문이다. 요양원은 평온한 공간이지만, 그 안에는 각자의 전쟁을 치러온 사람들이 있다. 경님 할머니의 얼굴은 그 전쟁의 흔적이었다. 그녀는 여전히 지금도 세상과 싸우고 있었다. 사람과, 그리고 청춘을 잃어버린 자신과도,

욕을 해도 참 잔인하게 한다 하면서도 젊은 날 거칠게 살아온 생활습관이려니 하고 그냥 신경 쓰지 않았다.


간호과장이 들어와서 할머니를 찾았다. 침대 위에서 부스스 일어나는 할머니를 향해 왜 쓸데없이 요양보호사한테 돈 가져갔다고 의심하냐고 말했다. 그런 말 한적 없다고 펄쩍 뛰며 내가 언제 그랬냐고 반문하는 할머니한테

“남자 요양보호사 선생님한테 가져갔다고 하다 이제는 K선생한테 가져갔다고 했다면서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모든 퍼즐이 맞춰졌다. 경님 할머니가 돈을 잃어버렸다고 처음 말했을 때, 그녀는 이동을 도와주던 남자 요양보호사에게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그 싸늘한 눈빛, 침묵 속의 분노. 그때는 그저 지나가는 불만이라 여겼다.



"맨날 돈 잃어버렸다고 해도 그냥 넘겼는데, 이번엔 나를 도둑으로 몰았어요. 이해가 안 돼요. 왜 그러시는지."

K는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이동할 때 도와주러 온 남자요양보호사에게 혐의를 두다가 용의자가 자기로 바뀐 사실을, 그녀는 차를 가지고 출퇴근하기 때문에 운전하는 것을 경님 할머니도 알고 있었다. 일부러 자기 들으라고 한 욕을 그녀는 자신을 향해 퍼붓는 저주라는 걸 몰랐다. 하기야 범인이 수시로 바뀌는 바람에 자신이 범인으로 지목될 줄은 몰랐다며 화가 단단히 났다. 언젠가도 옆방 할머니가 들어와서 자기 돈 훔쳐갔다고 말했다. 같은 방 동료들이 보고 있는데 훔쳐갈 상황도 아니고 누구에게 돈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데 이 사람 저 사람에게 혐의를 두고 말하는 바람에 간호과장이 와서 함부로 의심하지 말라며 일침을 놨다.


경님할머니에게는 세상이 늘 의심스러웠을지도 모른다. 돈은 자존심이었고, 잃어버린 것은 단순한 지폐가 아니라 자신의 삶의 마지막 끈이었을지도. 그녀가 던진 저주는 분노의 표현이 아니라 두려움의 다른 얼굴이었다. 그제야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그녀는 기억력이 정확했다. 젊은 날 술집을 운영하는 포주였다. 젊은 여성들을 데리고 성매매 업소를 운영하다 보니 세상의 밑바닥을 경험한 그녀는 욕이 껌 씹는 수준이었다. 껌을 씹으면 입이 상쾌하듯이 욕을 하고 나면 기분이 상쾌해지는 쾌감을 느끼는 것 같아 보였다. 젊어서부터 유흥업소에서 잔뼈가 굵어 업소주인이 되기까지 산전수전 다 겪고 살아온 인생이다. 그래서인지 얼굴에는 편안한 기색이 전혀 없고 성형수술의 부작용으로 근육이 굳어서 웃음을 웃어도 자연스럽지가 않았다. 업소 아가씨들을 관리하려면 남자가 필요했다. 흔히 말하는 기둥서방이 있었지만 그런 곳에서 만난 남자가 정상적으로 가정에 충실할리 없기에 결혼까지 간 남자는 없었다. 오직 돈 버는 재미로 젊은 청춘을 다 보냈다. 조카를 살뜰히 챙겨서 조카의 교육비를 혼자다 감당했다. 그런 관계로 조카가 가끔씩 얼굴을 내밀고 가는 정도였다. 조카가 오면 자기를 뒷바라지해 준 것에 보답이라도 하듯 넉넉하게 용돈을 주고 간다. 현금이 주머니에서 떨어지지 않고 필요할 때마다 사고 싶은 것은 사달라고 해서 사 온다.


할머니는 흘러가는 구름 같은 나그네 인생인데 자식을 두면 뭐 하냐고 다 자기들 살기 바쁜 세상 친자식이 있다고 특별히 달라질 것도 없다고 곧잘 말한다. 자신을 지켜주는 것은 오직 돈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주머니에는 항상 현금 몇십 만원씩 지니고 있으며 돈은 자신을 지켜주는 수호신처럼 여긴다. 본인이 쓰고 기억을 못 하는지 아니면 정말 잃어버렸는지 알 수가 없다며 기분이 나빠 보였다. K는 이번에 확실하게 돈 사건을 매듭짓지 않으면 두고두고 괴롭힐 거라며 경님 할머니에게 말했다.

“어르신 나보고 돈 가져갔다고 하는데 가만히 보니까 이 사람 저 사람 거론 하다가 이제는 나보고 가져갔다면서요? 증거 대세요. 계속 그렇게 나오면 무고죄로 정식으로 고소할 거예요. 아무한테나 도둑누명 씌워도 돼요?”

“아니야 내가 돈 잃어버렸다고 하니까 괜히 자기들끼리 말해놓고 나보고 말했다고 하는 거야. 오해야 신경 쓰지 마.”

생활의 습관은 그 사람의 잠재의식 속에 묻혀 있다가 어느 순간 나타나기도 한다. 평탄치 못 했던 그녀의 지나간 삶이 습관처럼 스며든 생활은 그 사람의 잠재의식 속에 묻혀 있다가 어느 순간 불쑥 고개를 든다.


경님 할머니를 지켜보며 나는 종종 생각에 잠긴다. 그녀의 말은 거칠고, 눈빛은 날카롭다. 누군가를 향한 의심, 날 선 저주, 그리고 가끔은 이유 없는 분노. 그 모든 것이 그녀의 지나간 삶에서 비롯된 것임을, 나는 이제야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평탄치 못했던 세월이 그녀의 몸에, 마음에, 그리고 습관에 새겨졌다. 그 흔적은 지워지지 않는다. 그녀의 말과 행동이 불편하면서도, 그 안에 담긴 외로움과 상처를 외면할 수 없기에.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