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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 작가 Feb 04. 2024

찰나를 점찍다

생각 노트 #31

 '도파민 중독'


 요즘 유행어처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말이다. 도파민 자체에 문제가 있지는 않겠다. 짧은 시간에 쾌락을 갈구하는 이 현상이 스모그처럼 현재를 뒤덮었다는 것이다.


 물론 나 또한 마찬가지다. 업무 중, 점심시간, 퇴근 후, 휴일까지 모든 여유에 휴대폰을 끼고 살아야 한다. 짧은 형식의 영상에 중독된 인간상은, 대체 무엇을 위해 이렇게까지 쾌락에 허리를 꺾어야만 하는 걸까.


 1분이 채 안 되는, 끝없이 증식하는 미디어가 인생에서 하나의 분, 초마다 씬넘버를 붙인다면 결말은 무조건적인 해피 엔딩으로 귀결되는 것일까. 그래서 모든 이들이 당연하듯이 갈망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든다.


 어느 때와 다름없는 화창한 휴일의 찰나에. 나는 지독한 공허감을 느꼈다. 그리고 내 설원에 공표했다.


 지금 하는 행위는 나를 부식시키는 독을 찍어먹는 것과 같다고.

 



 그리고 또 다른 생각이 겹쳤다. 요즘 트렌드에 맞춰서 도파민으로 모든 걸 명명해 보자. 그렇다면 도파민에도 종류가 다양하지 않을까.


 먹을 것으로 비유하자면, 처음에는 소량을 섭취해도 신체에 좋은 영향이 끼치지 않는 불량 식품이 있겠다.

시대의 고증에 알맞게 불량 식품은 가격이 싸고 습득하기에도 매우 쉽다. 앞서 말했던 짧은 영상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매우 자극적이며 단맛의 대명사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약효는 미미하지만 마치 마약과 효능이 비슷하지 않을까. 힘겹게 자신만의 계단을 올라가는 와중 휴식과 함께 환기시키려는 목적으로는 아주 적당하나, 주저앉아서 결국 잡아먹힌다면 어느새 추락하고 나를 볼 수 있는, 몹시 괴기스러운 힘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왜 쾌락을 가져다주는데 문제가 되는 것일까. 생활에서 쾌락만을 점찍는다면, 그게 행복한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일상을 저버린 채로 하루종일 미니 바보상자에 코를 박는 날을 보낸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깝지 않은가.


 미디어뿐만 아니라 짧은 시간 대비 쉽게 큰 쾌락을 얻을 수 있는 것들은 모두 독이다. 잠깐의 비릿한 약효와 더 깊은 절망을 가져다주는.




 평일의 '정당한' 업무를 다 마치고, 휴일 중 불과 몇 시간만 빠져들었음에도 나는 위협적인 느낌과 함께 그것을 독으로 규정했다.


 그렇다면 불량식품 이외의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 이제 음식이라고 부를만한 모든 것들이다.


 레시피도 다 다르며, 이에 따라 준비해야 될 재료도 다르다. 어느 것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식재료도 까다로우나 모든 사람들이 완성시킬 수 있지만, 또 다른 것은 의외로 간단하나 특정 사람들만 시작할 수 있는 등, 지천에 깔린 불량식품만큼이나 종류가 다양하다.


 거대한 집단의 대표적인 음식 종류에는 공부와 운동이 있겠다. 더욱 인식을 넓히면 운동도 공부의 한 부분이라고 칭할 수 있겠으나, 두뇌와 신체를 흑과 백으로 나눈다면 보편적인 구분으로 볼 수 있다.


 공통점으로는 완성까지의 과정이 괴롭다는 것이다. 그리고 '흔한 것'들과의 극명한 차이점이라고도 할 수 있다. 누구나 손짓 몇 번으로 가능한 것과 끝이 보이지도 않고, 셀 수도 없는 손짓으로 겨우 이룰 수 있는 호화로운 음식과는 숨 쉬는 궤도가 다르다.




 하지만 우리는 인간이기에 진정한 극락을 쳐다만 볼 뿐, 구현시킬 수는 없다. 그렇기에 별천지며 유토피아며 천국이라고 부를 수 있다.


 천한 독을 섭취하는 것도 인간의 본능이고, 고통을 감내하고 색다른 채도의 쾌락을 느끼며 접시를 자기 앞에 대령하는 것도 삶의 이유이다.


 각자만의 우주를 채워가는 인생에서 우리가 찍은 점들은 모두 다른 결말을 맞이할 것이다. 어떤 점들을 찍어가느냐에 따라, 자신만의 행복에 다다를 수 있지 않을까.




 여담이지만, 종종 친한 지인들은 어떤 의도든 간에 나를 '작가님'이라고 부른다.


 그래, 인생의 목표 하나였으니 처음으로 말을 들었을 때는 꽤나 야릇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그 말을 들으면 꽤 의기소침해졌다.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오로지 내가 작가의 꿈을 가지고 있으니 나를 배려해서 불러준 것이라는 생각만이 들었다.


 내가 원하는 작가의 상은 취미만으로 간신히 유지하는 이런 게 아니었으니까.


 열심히 가꿔온 내 세상을 다른 이들에게 보여주고, 작가 생활로 얻은 소득으로 내 삶을 영위하는 길이 궁극적으로 바란 꿈이니까.


 글쓰기와 생업이 따로 노는 삶은 행복에는 절대로 다가갈 수 없는, 처참하게 끊어진 철교를 보는 것과 같은 기분이다.


 그렇기에 내가 지금까지 찍어온 점들은 아직 시작도 안 한 것이라고 하겠다. '작가'라는 글씨를 쓰려면 부단히 더 시작하고 노력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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