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노을의 인사 #1
언제부터였을까, 과감히 글에 몸을 던지고자 했을 때는.
소심함을 넘어서 제대로 된 대화조차 멋모를 부끄러움에 쩔쩔맸던 어린 시절의 나는.
오후 다섯 시의 황금을 품은 그이처럼 노을을 닮은 글을 어떻게 쓰고자 했을까.
무력한 눈물이 흘렀다. 터질 듯한 찐빵을 머금은 얼굴이 급속도로 눅눅해졌다.
주위에서 절반의 비웃음, 남은 눈치들과 함께 정면에는 가장 당황한 선생님의 얼굴이 있었겠지.
책의 지문을 일어나서 발표해 보라던 친절한 선생님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의 나는 대체 뭐가 창피했길래.
한 마디도 읽지 못하고 얼굴을 붉히며 서럽게 울었을까.
'발표를 하기 무서웠던 어린이의 선생님에 대한 원망은 시작이었고
이런 문장 하나조차 떳떳하게 말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책망은 눈물이었으며
주위 수많은 걱정과 비웃음은 이미 동굴 같던 성격의 찢어진 결실이 되었다.'
철 지난 과거를 그려내는 눈빛에 붉게 달아오른 모니터가 비쳤다.
이해와 공감의 이름을 가진 양 어깨는 격렬하게 자기들의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물렁해진 모니터가 측은한 눈빛을 보냈다. 참으로 착한 친구다.
다시 가다듬고.
찢긴 것들을 물풀로 대강 둘러댔다.
‘어떻게 이런 게 순수하다는 거야. 나 자신이 너무 싫어, 못생겼어.’
괜스레 앞에 있던 놀이터의 미끄럼틀을 발로 차 본다.
돌아온 것은 어른들의 호통처럼 뜨거운 감각이었다. 어느새 발은 퉁퉁 부어있었다.
정말 바보 같지, 나는 거기서 또 울었다. 애꿎은 미끄럼틀에게만 소심한 화풀이를 했다.
또 어떻게, 착잡하게 젖은 하루가 지나가버렸다.
물풀의 성능은 고약했다. 접착성도 무척이나 약했고, 무엇보다 시큼한 악취가 어린 마음을 메웠다.
그러던 와중 빈틈투성이인 손가락을 물었다. 뜨거움이 얼굴과 손에 흘러내린다. 깨진 유리조각을 품고 다니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참 잘하는 짓이다. 울보의 하루를 집필하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나의 온전한 것들이니까. 미련하지만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대두 찐빵이가 우리 중에서는 제일 착해! 훈이가 제일 순수하다는 건 인정하지?”
“맞아, 좋겠다!”
대두, 찐빵이라는 소리에 울컥하고 순수하다는 말에 싫증이 났다. 물론 겉으로는 헤헤 웃음과 고맙다는 말뿐이었지만.
모래섬처럼 앉아있는 울보를 친구들이 둘러쌌다. 만약 왕따였다면 퍽이나 무서웠을 텐데.
순진한 그들의 진지한 롤링페이퍼가 시작되었다. 무엇을 나에게 적는 걸까. 호기심과 불안감이 넘쳐났다.
어느덧 조금 더 컸다. 이제는 감정의 격류가 몰아치는 거대한 문을 열어야만 했다.
달그락하며 꺼낸 조잡한 거울에는 더 이상 울보가 비치지 않았다.
해 질 녘 크레파스로 적어준 첫 문장들이 얼굴을 가렸다. 그러고는 마음을 비췄다.
‘훈아, 너의 순수가 정말 부러워.’
온몸을 들썩대며 꽈악 안은 거울이 따뜻해졌다.
시큼한 것들의 완벽한 정화(淨化)와 함께 문고리를 잡았다.